인명 피해 발생 이후 8년만…환경부 서기관, 기업과 유착 확인
1차 수사 피했던 관련자 대거 포함…조직적 증거인멸도 이뤄져

그래픽-연합뉴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일으킨 에스케이(SK)케미칼·애경산업의 책임자와 관련자 34명이 8년만에 재판에 세워진다.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재수사를 통해 지난 2016년 첫 수사 당시 사정 칼날을 피해갔던 관련자들이 무더기 기소됐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 주무부처인 환경부 직원과 가습기 살균제 기업과의 유착, 조직적으로 이뤄진 증거인멸 혐의도 새롭게 밝혀졌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권순정)는 23일 유해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한 에스케이케미칼 홍지호(68) 전 대표 등 8명을 구속기소하고, 정부 내부 정보를 누설한 환경부 서기관 최모(44) 씨 등 26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먼저 에스케이케미칼 홍 전 대표 등 4명, 애경산업 안용찬(60) 전 대표 등 5명, 필러물산 김모(57) 전 대표 등 2명, 이마트 전직 임원 2명, GS리테일 전 팀장 1명, 퓨엔코 전직 임원 2명 등 총 16명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세워진다.

이들은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을 원료로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 '가습기 메이트' 등의 안정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과실로 인명 피해를 낸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다만 이들은 2016년 첫 수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당시 정부의 독성실험 결과에서 CMIT·MIT 원료물질과 피해의 인과관계가 확정되지 않았다.

이번 검찰 수사는 CMIT·MIT 원료의 유해성에 대한 학계 역학조사 자료가 쌓이고, 환경부가 지난해 11월 관련 연구자료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재개됐다.

검찰은 "첫 번째 수사 당시 CMIT·MIT 원료를 제조·판매한 기업의 과실이 제대로 확인되지 않은 측면이 있었지만, 이번 수사를 통해 이들 기업의 과실이 규명됐다"고 의의를 밝혔다.

검찰은 "1994년 최초 가습기살균제에 개발 당시 자료인 서울대 흡입독성 시험 보고서, 연구노트 등을 압수해 최초 개발 단계부터 안전성 검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채 부실하게 개발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압수한 서울대 보고서에 따르면 '가습기 메이트'에 노출된 실험용 쥐들에 병변이 발생하고 백혈구 수치가 감소해 해당 제품은 안정성 검증을 위해 추가 시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습기 메이트'는 이 보고서가 회신되기도 전에 시중에 판매됐다.

옥시가 만든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등의 원료물질로 쓰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원료로 공급한 SK케미칼 전 직원 최모 씨 등 4명도 기소됐다.

에스케이케미칼 측은 PHMG가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사용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검찰 수사를 통해 PHMG를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소개하고 관련 실험도 진행한 사실 등이 드러났다.

심각한 점은 환경부 서기관이 내부 정보를 가습기 살균제 기업에 누설한 정황이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환경부 서기관 최씨는 2017~2019년 애경산업으로부터 수백만원 상당의 금품 등을 제공받은 대가로 환경부 국정감사 자료와 가습기 살균제 건강영향 평가 결과보고서 등 각종 내부 자료를 제공한 혐의(수뢰후부정처사·공무상비밀누설)를 받고 있다.

또 2018년 11월 애경산업 직원에게 검찰 수사가 개시될 것으로 보이니 수사에 대비해 가습기 살균제 관련 자료들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혐의(증거인멸교사)도 받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 기업들이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한 정황도 확인됐다.

에스케이케미칼은 안정성 부실 검증 사실이 확인되는 핵심 자료인 서울대 흡입독성 시험 보고서를 숨겼으며, 애경산업과 이마트 등은 직원들의 PC나 노트북을 은닉한 혐의 등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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