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치료중 환자 앞에 서류 들이밀며 '서명하면 보험금 전부 지급'"
직원 말만 믿고 서명한 서류, 보험금 절반으로 깍는데 합의하는 '화해신청서'
변호사 자격 없는 자가 금전 지급 관련한 화해 신청하면 불법

팔꿈치에 상해를 입은 60대 여성 ㄱ씨는 병원에서 후유장애진단서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하며 상해 보험금을 청구했다. 청구 이후 병원으로 손해사정사가 나타났다. 링거주사와 진통제로 인해 정신이 혼미한 상태의 피보험자에게 손해사정사는 '화해계약서'를 들이밀었다. '서명하면 장애급여금 전액을 지급하겠다'는 말도 함께 했다. 이 말을 믿고 서류에 서명을 한 피보험자는 결국 청구한 보험금의 절반만 받았다.

치료중인 환자 앞에 나타난 손해사정사는 누구이며, 화해계약서는 무슨 내용이 담겼고, 약관에 따라 전액 지급돼야 할 보험금이 왜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걸까.

서울시 종로구 소재 교보생명보험주식회사 본사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처럼 주장하는 내용이 담긴 청원글이 올라왔다. 논란이 된 보험사는 교보생명이었다.

청원인은 '**생명보험회사에 날개를 달아준 금감원의 진실성에 대하여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교보생명이 부당하게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60대 여성인 청원인 ㄱ씨에 따르면, 지난 2017년 5월 ㄱ씨는  길에서 넘어지면서 좌측부 인대파열로 상해를 입었고 그해 8월 대학병원에서 내측부 인대 복원수술을 받았다. 병원에서 후유장애진단서(6급2호, 내측부 신경손상)를 발급받아 다음해인 3월 중순께 교보생명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ㄱ씨는 지난 1995년 3월 교보생명의 '21C골드연금보험'에 가입해 놓은 상황이었다. ㄱ씨에 따르면 이 상품은 상해로 인해 6급 장애가 발생할 경우 피보험자에 1200만원의 보험금을 지급하도록 돼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ㄱ씨는 약관에 따른 보험금의 절반인 600만원만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ㄱ씨는 "(보험금을 청구한 이후인) 지난해 3월 말께 병원에서 링거주사와 진통제로 인해서 정신이 혼미한 상황인데 손해사정사가 방문해서 화해계약서를 내놓았다"고 말했다. 이어 "'서명을 하면 장해급여금 전부를 지급하겠다'고 해서 서명을 했다"며 "그 당시 듣고 목격한 동료 입원환자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후 4월 초 ㄱ씨는 청구한 보험금 지급총액 1200만원 중 절반인 600만원만 보험금으로 지급받았다.

이에 ㄱ씨는 교보생명을 상대로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최근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된 금감원 민원 처리 결과 회신 문서에 따르면 이 화해계약서의 성격은 ㄱ씨가 청구한 보험금의 절반만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합의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결국 이 '화해계약서'를 근거로 교보생명이 ㄱ씨가 지급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험금액의 절반만 지급한 것이 합당하다고 결론내리고 이 민원 건을 종결했다. 

금감원은 이 일련의 과정을 정당하다고 봤지만 의구심은 여전히 남는다. 치료 약물로 인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닌 환자를 병원으로 직접 찾아와 결과적으로 보험금을 절반으로 깎은 '화해계약서'를 들이민 손해사정사는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손해사정인은 보험가입자에게 사고로 인하여 손해가 발생했을 때 그 손해액을 결정하고 보험금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산정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다만 손해사정인의 역할은 보험금의 산정까지로 한정된다. 사정인은 보험금액에 대한 협상과 조정을 할 수는 없다. 

청원인 ㄱ씨가 주장한대로 손해사정인이 '서명하면 보험금 전액을 지급하겠다'고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 행위는 '보험업법' 위반의 소지가 높다. 보험업법 189조는 손해사정인이 보험금 지급을 요건으로 합의서를 작성하거나 합의를 요구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손해사정인의 이러한 행위를 규제할 처벌 규정이 없다는 점이다. 보험업법에서는 손해사정인의 이같은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처벌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그저 '이같은 행위를 하면 아니 된다'라고만 명시하고 있을 뿐이다. 

금감원 보험제도팀 관계자는 "과징금, 과태료 등 벌칙 제재는 없지만 위반 혐의가 있으면 검사를 해, 정도에 따라 기관이나 인적 제재를 할 수 있다"면서 "이에는 기관 및 손해사정인의 등록 취소 등의 조치가 포함된다"고 덧붙였다.

금감원 전자공시를 보면 교보생명은 (주)케이씨에이손해사정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케이씨에이손해사정은 보험심사업무를 주된 목적으로 2002년에 설립됐으며 교보생명으로부터 손해사업서비스를 하도급 받아 교보생명의 해당 사무 전부를 담당하고 있다.

케이씨에이손해사정 관계자는 "자세한 사항은 교보생명 본사에 문의하라"며 답변하지 않았다.

서울시 종로구 소재 교보생명보험주식회사 본사

'교보생명 자회사의 손해사정인이 보험금의 지급을 요건으로 피보험자에 합의서를 작성하게 한 것이 보험업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에 교보생명 관계자는 "회사는 보험업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화해계약서' 등 합의서를 작성할때, 케이씨에이손해사정 소속 손해사정인이 아닌 교보생명 소속 합의전담사원을 보내 업무를 처리한다"고 말했다.

이어 "병원에서 고객에 '화해계약서'를 내민 사람을 고객이 손해사정인으로 오해한 것"이라면서 "회사는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변호사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은 남아있다. '합의전담사원의 자격'을 묻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변호사법에서는 손해사정인 외에도 교보생명 측이 주장하는 존재인 '합의전담사원' 등, '화해' 신청의 주체가 변호사가 아니라면 보험금액에 대해 협상과 조정을 할 수 없다. 이를 어기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보험회사는 법 위반을 한 것이 없다고 해명하며 당당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왜 보험소비자는 보험금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한걸까.

금융당국이 그렇게 부르짖던 서민을 위한 금융은 어디에 있는가. 거창한 정책도 좋지만 그보다 먼저 서민 보험 소비자가 보험금을 약관에 따라 제대로 지급받고 있는지 따져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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