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공급 측면의 요인에서 상당 부분 비롯된 것"
전문가들 "재정, 통화 정책 등 수요 끌어올려야"

이두원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이 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8월 소비자 물가 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해 한국 경제가 디플레이션(경기침체) 국면에 접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마이너스 물가가 공급 측면에서의 일시적 요인에 기인한다며 수요 둔화로 물가수준이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상황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수요의 후퇴로 인한 저물가 장기화가 우려된다며 소비 진작을 위한 재정과 통화 정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8월 소비자 물가지수는 104.81로 지난해 같은 달(104.85)보다 0.0% 상승률을 보였다. 올해 들어 소비자물가는 1월 0.8%를 기록한 이후 계속 1%를 밑돌았다.

정부가 발표한 공식적인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0%이지만 소수점 세자릿수까지 따지면 0.038% 하락해 사실상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1965년 통계집계 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셈이다.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규제 등 대외적인 불확실성이 커져 경기 하강이 예상되는 가운데 이날 나온 소비자물가 지표는 디플레이션(경기 침체)의 신호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우려다.

디플레이션은 경제 전반에서 상품과 서비스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물가상승률이 2년 이상 마이너스를 보이는 경우를 디플레이션으로 규정한다.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총체적인 수요의 감소가 물가의 하락을 가져오고 지속적인 물가 하락은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진다.

정부와 한은은 이번 저물가 상황이 수요측 요인보다는 공급측 요인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며 디플레이션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이런 우려를 일축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거시정책협의회 모두발언에서 "우리나라의 저물가 상황은 수요측 요인보다는 공급측 요인에 상당 부분 기인한 것으로 물가수준이 장기간에 걸쳐 광범위하게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통계청은 최근 국제유가 하락, 유류세 인하와 교육복지 확대 등 정부 정책 영향으로 물가흐름이 상당히 낮아진 상황에서 이번달 농·축·수산물 가격이 크게 하락하면서 소비자물가가 사실상 마이너스를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상황이 사실상 디플레이션 진행의 신호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가 계속 마이너스였고 상당히 악화해 사실상 디플레이션이 진행 중이라고 봐야 한다"면서 "경기가 나쁘면서 물가가 떨어진 거라 디플레이션 영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포괄적으로 경기에 대해 대응을 해야 한다"면서 "재정과 통화정책 대응이 필요하고 기업 비용이 올라간 것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디플레이션으로 추세가 갈 것 같지는 않지만, 근본적인 수요 약화에 따른 가격 상승 둔화 문제는 계속 남아있다"면서 "가장 급한 것은 소비를 어떻게든 늘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수요가 보여야 기업이 투자한다. 투자가 먼저가 아니라 소비가 먼저다"라면서 "40∼50대 일자리가 감소하거나 증가세가 줄어드는데, 이들이 타격받으면 소비감소나 사회적 영향이 크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활성화도 생각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공식적 지표 물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하게 되면 디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공급 측면 요인이 주된 요인이라도 폭이 크거나 지속한다면 디플레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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