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임직원 "자료삭제 인정하지만 분식회계 아냐"
검찰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 이재용 경영 승계 맞물려 불공정"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그룹의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와 관련한 증거인멸 혐의 첫 공판에서 삼성바이오와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 임직원들이 관련 자료를 삭제한 행위를 인정했다. 다만 이들은 삼성바이오가 분식회계를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이슈가 서로 맞물려, 합병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그룹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삼성바이오 회계 부정을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소병석 부장판사)는 25일 삼성전자 임원들과 삼성바이오 관계자들의 증거인멸·증거인멸교사 등 혐의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했다.

검찰은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이 맞물려 있다고 보고 있다. 합병 당시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였던 제일모직의 가치는 높게 포장하고 삼성물산의 가치는 낮게, 임의로 회계를 조작했다는 것이다. 

합병이 있었던 2015년 당시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지분을 23.2% 보유한 대주주였지만 그룹의 알짜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지분은 고작 0.6%만 보유하고 있었다.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의 지분 4.1%를 가지고 있었다. 

이 부회장이 그룹의 경영권을 완전히 승계하려면 삼성전자를 이 부회장의 지배력 아래 둬야했고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의 최대 주주인 제일모직의 가치를 띄우기 위해 삼성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삼성바이오에 대한 분식회계를 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당시 삼성바이오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의 합작사 미국계 제약회사 바이오젠이 갖고 있었던 콜옵션의 존재를 장부상에 기재하지 않은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였다는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삼성그룹 차원에서 바이오젠이 보유하고 있던 콜옵션을 대략 2조원대로 평가했지만 당시 재무제표에 삼성바이오는 이를 계상하지 않았다. 바이오젠에는 자산인 콜옵션은 반대로 삼성바이오에는 부채가 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당시 삼성바이오가 2조원대의 부채를 계상하면 삼성바이오는 자본잠식을 피할 수 없었다. 이 경우 삼성바이오의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의 가치 역시 낮아져 이는 삼성물산과의 합병에서 제일모직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삼성전자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김모 부사장과 박모 부사장, 삼성전자 재경팀 이모 부사장 등은 회계 관련 자료를 삭제했다는 사실과 이에 관여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분식회계를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의 변호인은 "삼성바이오는 분식회계를 하지 않았다"며 "검찰과 금융당국은 2012년부터 삼성바이오가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데 이 부분도 충분히 반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타인의 형사 사건에서 죄가 되지 않는 경우 증거인멸죄가 성립하는지는 법리적으로 의문이 있다"며 "설령 성립되더라도 양형에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참작 사유가 된다"고 강조했다.

양모 삼성에피스 상무는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자료가 삭제 및 변경된 것은 인정한다"며 "금감원 요청과 관련이 없는 내용과 영업 비밀을 제외하기 위해 편집했을 뿐이고, 그 정도 인식만 갖고 있었으니 고의성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자료 삭제 지시 및 관여 사실 자체는 인정한다"면서도 "에피스는 수동적인 위치에서 삼성바이오나 그룹 TF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김 부사장 등은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당국의 수사가 시작되자 관련한 내부 자료를 은폐·조작하도록 지시한 인멸인멸교사 등의 혐의 재판에 세워졌다.

검찰은 "삼성바이오의 부정한 회계처리 배경과 동기 등에는 여러 의혹이 제기되는데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 있어 불공정했다는 것이 그중 하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불공정 합병 과정에서 삼성바이오의 가치가 조작됐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 개시를 예상한 삼성이 대규모 증거 인멸을 했다는 것이 기소 요지"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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