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지주사 한국조선해양에 시정명령·고발 조치
원가보다 낮은 수준 대금 삭감…공정위 조사 과정 증거 은닉 혐의도
현대 重 "공정위, 조선업의 특수성 및 환경 고려하지 않아…법적 대응"

하도급 업체에 지급해야 할 대금을 부당하게 낮추고 '선시공 후계약'을 강요하며 갑질을 일삼은 현대중공업이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역대 최대 과징금이 부과됐다. 공정위 조사과정에서 현장조사를 고의적으로 방해한 혐의도 추가됐다.

지난해 8월 구 현대중공업(현 한국조선해양) 직원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 조사에 앞서 주요 자료가 담긴 컴퓨터와 하드디스크를 교체한 뒤 회사 엘리베이터로 반출하는 모습.(사진-공정거래위원회 제공)
지난해 8월 구 현대중공업(현 한국조선해양) 직원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의 현장 조사에 앞서 주요 자료가 담긴 컴퓨터와 하드디스크를 교체한 뒤 회사 엘리베이터로 반출하는 모습.(사진-공정거래위원회 제공)

공정거래위원회는 하도급업체에 선박·해양플랜트·엔진 제조를 위탁하면서 하도급대금을 부당하게 삭감하는 등 현대중공업의 하도급법 위반 행위에 20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또한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에 시정명령과 고발조치를 내리고 조사방해 혐의를 물어 과태료(법인 1억원, 임직원2500만원)처분을 내렸다.

공정위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은 지난 2016년~2018년까지 사내하도급업체에 1785건의 추가공사 작업을 위탁하고 공사가 시작된 이후에 제조원가보다 낮은 수준으로 하도급대금을 책정했다.

한국조선해양은 사내하도급업체의 거래 특성상 제조원가의 대부분이 인건비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감안해 공수를 임의로 적게 인정해 하도급 대금을 삭감했다. 그 결과 1785건의 추가공사 하도급대금이 최소한의 제조원가 수준보다도 낮게 책정돼 계약이 체결됐다.

한국조선해양은 이같은 하도급대금 결정 과정에서 사내하도급업체와 어떠한 협의도 진행하지 않았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또한 한국조선해양은 선박 엔진 부품을 납품하는 하도급업체에 하도급 단가를 인하할 것을 강요하는 갑질을 벌였다. 공정위 조사결과 한국조선해양은 2015년 12월 선박 엔진 관련 부품을 납품하는 하도급업체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어 2016년 상반기에 일률적으로 단가 10%를 깎아줄 것을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단가 인하에 협조하지 않을 경우 강제적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압박하며 이듬해 48개 하도급 업체를 대상으로 51억원의 하도급대금을 인하한 사실이 알려졌다.

한국조선해양은 공정위 조사와 관련해 조직적으로 증거자료를 은닉한 혐의도 받고 있다. 2018년 10월 진행된 공정위 현장 조사와 관련해 273개 저장장치(HDD) 및 101대 컴퓨터(PC)를 교체했으며 중요자료를 사내망의 공유폴더와 외부 저장장치에 숨기며 조사를 방해했다.

이같은 사실은 공정위가 한국조선해양 소속 직원들이 사내 메신저를 통해 나눈 대화록을 확보하며 밝혀졌다. 직원들은 사내 메신저를 통해 '공정위가 다음 주쯤 조사를 나올지도 모르니 빨리 컴퓨터를 교체해야 한다', '아직 교체가 안 돼 윗분들이 매우 쪼고 있다' 등의 대화를 나눈 점이 발견돼 조사방해 행위가 인정됐다.

윤수현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국장은 "이번 조치는 작년 4월 시행한 '다수 신고가 제기된 사업자에 대한 사건 처리 효율화·신속화 방안'에 맞춰 신고 내용을 포함한 3년간의 하도급 거래 내역을 정밀히 조사한 사례"라며 "조선업계의 관행적인 불공정 행위에 제동을 걸었다는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공정위로부터 과징금을 부과받은 데 대해 행정소송 등 법적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현대중공업 측은 "조선업의 특수성 및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법적 절차를 준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대중공업 측은 조사 방해에 대해서도 "조사 2개월 전 성능개선을 위해 노후 PC를 교체한 것뿐 조사방해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이후 조사과정에서도 필요한 협력을 다했다"고 반박해 법정 대응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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