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간 갈등으로 빚어진 ‘KB사태가 금융위원회에 이어 안방인 KB금융지주 이사회까지 나서 사퇴 압박을 종용하며 최악의 사태로 점철되고 있다.

 

임 회장이 명예회복을 위해 행정소송 등 법적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노조와 정치권에 이어 이사회까지 사퇴 압박에 나서면서 자진사퇴 외에는 명예로운 퇴장이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임 회장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데는 이 전 행장과의 이른바 파워싸움에서 비롯됐다.

 

먼저 국민은행의 주 전산시스템을 교체하는 것과 관련해 IBM 메인프레임을 유닉스 기반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안건을 놓고 이 전 행장과 정병기 감사위원이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전 행장이 다시 이사회에 직권으로 부의했지만 재차 거부당했다. 이 때부터 사외이사를 장악한 KB지주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설이 흘러나왔다.

 

이에 이 전 행장은 정 감사를 통해 금융감독원에 검사를 요청했다. 이 전 행장과 임 회장과의 갈등이 외부로 드러나게 되는 순간이었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 전 행장이 강수를 둔 것을 사실상 이사회를 통해 은행을 제어하려는 임 회장에게 반기를 든 것으로 받아들였다.

 

금감원에 올라온 검사 요청을 최수현 금감원장은 2주간의 특별검사를 통해 임 회장과 이 전 행장에 대해 중징계 방침을 시사했다.

 

하지만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중징계를 받을 것이란 예상을 깨고 경징계 결정이 나왔다. 당시 금융권에서는 이 같은 결정이 임 회장 측의구명 로비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봤다.

 

제재심에서의 경징계 결정 직후 임 회장과 이 전 행장은 템플스테이에 동석하면서 화해의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나 임 회장이 이 전 행장을 비롯한 임원들과 따로 잠자리를 정하는 등 의전문제로 다시 갈등이 표출됐고, 12일로 예정된 템플스테이 행사에서 이 전 행장이 참석 당일 자리를 뜨는 헤프닝이 발생했다.

 

금융계는 물론 전 국민 앞에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인 당사자들에게 최 원장은 제재심의 경징계 결정을 번복해 금융위원회에 중징계를 상정했다.

 

이에 이 전 행장은 곧바로 사퇴를 표명한 반면 임 회장은 주 전산시스템 전환은 확정되지 않은 사안에 징계 처분을 내린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논리로 중징계에 불복 의사를 비치기 시작했다. 금융위의 징계 심사를 앞두고 벌인 전략적인 행보였다.

 

결국 금융위는 지난 12일 전체회의에서 임 회장에게 금감원장이 건의한 문책경고에서 한 단계 상향해 직무정지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제재조치안 의결 직후 이번 KB금융사태는 당연히 지켜져야 할 내부통제가 조직문화로 자리잡지 못할 경우 금융에서 생명과도 같은 신뢰가 크게 훼손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관련된 위법행위에 대해 금감원장이 검찰고발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 달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임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고, 15KB금융지주 이사회도 임 회장에게 자진사퇴를 권고했다.

 

친정 이사회까지 등을 돌리자 임 회장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에 빠졌다. 당초 행정소송까지 불사해 나홀로 마이웨이를 선언했던 임 회장은 전방위적 압박에서 벗어날 히든 카드는 17일 예정된 이사회 전 자진사퇴라는 배수진외에 묘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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