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7. 보잉사에서 개발한 점보제트기 이야기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747 공약’이다. 보잉의 747은 1969년 2월 9일 첫 비행 이래 지금까지 대형 여객기 클래스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평가받지만 MB의 747은 한국인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은 불신의 숫자다.

 


MB의 '747공약'은 7%대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을 기치로 내걸었다. 2007년 대선 당시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의 48.7%가 그 공약을 믿고 MB를 찍었다. 5년 뒤 국민들 사이에서는 747을 조롱하는 우스갯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주가를 747로 만들자는 것이었나?” “아니, 물가 상승률 7%를 말했던 거 같아” 등등.


하지만 결코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없는 것이 이후 747은 유령처럼 살아남아 국가재정에 부담을 주고 국민이 낸 세금을 축내고 있다. 747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쏟은 4대강 사업, 해외 자원개발사업의 후유증이 대표적 사례다.


박근혜 정부의 공약은 474다. 이명박 정부의 747 공약과 숫자가 달라 얼핏 차이가 있어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거의 붕어빵이다. 4% 잠재성장률, 70% 고용률, 4만불 국민소득을 공약으로 지키겠다는 것인데 성장률 4%는 그나마 진정성이 엿보이지만 현재의 저성장 기조로 봐 서 실현되기 어렵고 나머지 공약은 더더욱 불가능하다는 것이 대다수 경제전문가의 견해다.


747에 대한 우리 국민의 학습효과는 474에 대해서도 선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초 세모녀의 자살 사건 직후 등장한 촌철살인 문구가 그 예다.


4-사는 게 너무 힘들어
7-70만원 집세와 공과금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떠난
4-사각지대 세 모녀의 비극


여기서 말한 474는 가난하고 소외된 우리 이웃의 자화상이다. 어느 시인은 “가난한 사람들이 이 세상을 하직할 때 평생을 발끝에 키워온 외로운 그림자를 주고 간다”고 했는데 세 모녀가 그랬다. 세 모녀가 남기고 간 그림자는 그러나 잠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뿐이다. 3년 8개월 전에는 32세의 젊은 여성 작가가 외로운 그림자를 남겼다.


 “그동안 너무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쪽지를 본 이웃이 음식을 챙겨 들고 찾아갔을 때 그녀는 숨진 뒤였다. 그때도 사람들은 가슴 아파했다. 도대체 왜 이런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는가.
찬송가 474장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의원 되신 예수님의 크신 은총 믿사오며 예수님의 병 고치심 그 은총을 믿습니다”


이 시대의 민초들은 병 고치는 예수를 닮은 위정자를 고대한다. 하지만 현실은 늘 기대와 딴판이었다. 속기도 참 많이 속았다. 예수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유다였더라며 한숨도 많이 쉬었다.


이 땅에 더 이상 외로운 그림자를 만들지 않으려면 각성과 깨침이 필요하다. 그 깨침은 위정자가 아닌, 제도에 대한 깨침이 되어야 한다. 바로 민주주의다.

저작권자 © 일요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