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수원, 경제성·해외사례 제시 연장운전 추진

▲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에 위치한 고리 원자력발전소. 맨 앞쪽이 고리 1호기.

[일요경제=임준혁 기자]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고리 1호기의 운영허가 재연장 신청 시한이 20여일 남은 가운데 고리 1호기가 경제성 및 해외사례와 안전이란 두 명제하에 이해당사자 간 갈등으로 재점화되고 있다.

원전 운영 주체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면 운영허가 재연장 신청을 다음달까지 마무리 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고리1호기 설계수명 재연장을 놓고 부산·울산 지역주민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최종 결정까지 상당한 진통이 발생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1977년에 만들어져 2007년 6월 18일 설계수명 30년이 끝난 고리 1호기의 운영허가 기간을 2017년까지 10년 연장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고리 1호기는 설계수명을 넘어 38년째 가동하고 있다.

원자력안전법에 따르면 원전의 운영허가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운영종료 2년전에 연장신청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해야 한다. 즉 오는 6월 18일까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이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연장신청서를 제출해야만 운영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한수원은 "고리 1호기의 안전성이 확보되고 경제성이 있으면 계속 운전을 추진한다는 것이 회사의 기본 방향이다"라고 밝혔다.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면 원전을 계속 운전하는 것이 국가경제적으로 이익이라며 주민 수용성을 포함해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2차 계속운전 신청을 결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수원에 따르면 고리 1호기와 유사한 원전의 가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건설시점을 근거로 운영종료를 결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이다.

한수원 관계자는 "설계수명은 원전 설계 때 설정한 기간으로 원전의 안전성과 성능기준을 만족하면서 운전 가능한 최소한의 운영허가 기간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생물에 사용하는 '수명'이라는 용어를 기계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게 한수원의 논리다.

한수원은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전 435기 가운데 절반에 육박하는 46.9%(204기)가 30년 이상 운전되고 있으며, 51기(11.7%)가 40년 이상 운전 중이라고 밝혔다.

151기는 계속운전 승인을 받았고, 이 가운데 83기(미국 27기, 러시아 18기, 캐나다, 9기, 영국 5기, 인도 4기 등)가 계속 운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전 세계에서 설계수명이 만료된 122기 가운데 7기(6%)만 폐로했고, 나머지는 계속운전을 선택했다고 한수원은 강조했다.

논란의 중심이 되는 경제성 측면에서도 고리 1호기는 계속 연장돼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고리1호기를 2027년까지 가동하는 것이 2017년까지만 가동하고 폐로하는 것보다 2505억원(이용률 80%)에서 최고 3267억원(이용률 85%)의 경제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한수원은 "1차 연장을 할 때 원전장비 교체와 안전시설 보강에 큰 비용이 투입되기 때문에 1차보다 2차에서 경제성이 높게 나온다"며 "이는 원전을 가동하는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리 1호기가 생산하는 전기는 부산시 전체 가정용 전력을 모두 공급하고도 남는다"며 "고리 1호기를 폐쇄하고 화력발전으로 대체하면 연간 890억원이 더 소요된다"고 연장운전이 경제성이 있음을 재차 강조했다.

▲ 고리1호기 폐쇄를 외치며 지난 4월 부산시민단체가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7차 전력수급계획안의 국회 보고 때 고리1호기 가동 재연장안 상정을 막기 위해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그러나 시민환경단체와 주민 등은 "수명 재연장 문제는 경제성으로 따질 게 아니다"며 "시민안전을 위협하는 노후 원전은 이번 기회에 반드시 폐로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환경단체와 고리원전 주변 주민들은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 설계수명이 지나 노후한 고리 1호기는 반드시 폐쇄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부산지역 59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반핵부산시민대책위원회(반핵대책위)는 재연장 신청 마감일인 6월 18일을 '고리 1호기 폐쇄 D-데이'로 정했다.

울산지역 시민단체와 공동으로 6월 13일 해운대에서 대규모 거리행진을 계획하는 등 시민을 상대로 대대적인 수명연장 반대운동을 벌이면서 한수원이 추가 운영 신청서를 제출하지 못하도록 전방위로 압박하고 있다.

최수영 반핵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는 "현재 가장 오래되고 낡은 핵발전소인 고리 1호기를 폐쇄하는 방법은 정부의 '7차 전력수급계획'에서 배제하거나 6월 한수원이 수명 재연장 신청을 하지 않는 두가지"라며 "두가지 모두 실현될 수 있도록 시민의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지자체 주민 ‘안전’ 내세우며 연장 중지 운동 전개
환경단체에 따르면 고리 1호기는 1977년 이후 최근까지 사고, 고장 건수가 130건으로 국내 원전 중 가장 많았던 데다 가동정지 일수가 늘어 경제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고리 1호기의 운영연장을 반대하는 목소리 중엔 지방자치단체와 정치권도 동참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 2월 말 국회에서 열린 부산시당·부산시 당정협의에서 “고리 1호기는 부산시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갈 것 같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울산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도 총력저지에 나선 상황이다. 현재 서병수 부산시장의 경우 고리 1호기 폐로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다. 부산시가 고리 1회 폐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이유다. 서 시장은 지난 21일 부산의 120개 시민사회단체가 연대하고 있는 고리 1호기 폐쇄범시민운동본부와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울산시장과 협의해 보겠다”고 밝힌 뒤 “고리 1호기가 반드시 폐쇄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시민단체들과 호흡을 맞춰 가겠다”고 말했다.

이렇게 경제성·해외사례와 주민안전이란 두 가지 명분하에 논란이 뜨거워 지고 있는 가운데 원자로 폐기와 해체에 필요한 인프라를 갖추지 못한 점도 이번 사태를 통해 수면위로 부상했다.

한수원은 지난해 말 국회가 통과시킨 원자력 안전법 개정안에 원전 해체와 관련한 규정이 담겨 있지만 운영 주체인 자신들은 물론이고 원전당국도 한번도 원전을 폐로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기술 연구·개발(R&D) 등 기초작업부터 닦아야 하는 실정이다.

한수원은 고리 1호기 2차 계속운전을 위해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할 안전성평가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한수원 관계자는 “이번 주 내에 고리 1호기의 안전성 평가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라며 “안전성 평가보고서에서 이상이 없는 것으로 나오면 6월 18일까지 계속운전 연장신청서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이 순간도 고리 1호기 인근 주민들과 정치권, 지자체장들의 연장운전 저지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고리 1호기 터빈이 다시 돌아갈지, 폐로돼 역사속으로 사라질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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