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감시체계도 밀입국 눈치 못채 43시간 후 파악

▲ 인천국제공항 1층 로비

[일요경제=신관식 기자] 대한민국의 관문이자 가장 중요한 보안시설 가운데 하나인 인천국제공항에서 환승 대기 중이던 중국인 관광객 두 명이 보안검색장을 뚫고 밀입국하는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0일 저녁 일본 나리타공항에서 인천공항에 도착해 다음 날 저녁 중국 베이징으로 가는 항공기로 갈아탈 예정이었던 중국인 남녀 관광객은 심야 시간에 폐쇄된 출국장의 출국심사대와 보안검색대를 거쳐 국내로 잠입했다.

이들이 머물 수 있는 환승객 체류공간에서 출국장을 거쳐 공항을 빠져나가려면 여러 개의 출입문과 차단장치를 거쳐야 하지만 일부 출입문은 자동으로 열렸고 잠겨진 문은 잠금장치를 파손해 강제로 열었다고 한다.

밀입국한 중국인 2명은 대한항공 여객기로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일본 나리타공항을 경유, 지난 20일 오후 7시31분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들은 다음 날인 지난 21일 오후 8시17분 출발 예정인 비행기를 타고 중국 베이징으로 갈 일정이었지만 20일 밤 환승 보안 검색창을 거쳐 여객터미널 3층 면세구역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어떤 감시체계도 이들의 밀입국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물론, 문제의 출국장에서 근무하던 보안경비 요원조차 이 사실을 몰랐다.

이들이 밀입국한 것은 21일 오전 1시 25분께였지만 당국은 두 사람이 예정된 항공기에 타지 않았다는 항공사의 통보를 받고 부랴부랴 CCTV 등을 확인한 끝에 무려 43시간 가량이 지난 22일 오후 8시께 밀입국 사실을 파악했다.

국토교통부는 26일 면세구역과 출국심사장 사이에 있는 문은 운영 종료 후에는 잠가 출입증 소지자 이외에는 출입을 통제하고 보안검색대에서 일반구역으로 통하는 문은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자물쇠를 걸어 이중으로 잠그기로 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이런 당연한 조치를 지금까지는 시행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밀입국자들은 25일 오후 충남 천안에서 다행히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들에게 붙잡혔다.

구체적인 밀입국 경위와 동기는 향후 조사를 통해 더 자세히 밝혀지겠지만, 최고등급의 보안시설인 인천공항이 이렇게 허술하게 뚫렸다는 것은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또 지난 6일에는 미얀마로 출국한 중학교 2학년 학생이 다른 사람의 여권을 들고 인천국제공항 출국심사대를 통과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번 중국인 무단 밀입국 사건과 함께 인천공항 출입국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더 한심한 것은 보안 담당자들은 이 사실을 확인하고도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인천공항공사 보안요원은 한군이 가지고 있던 동생 여권을 다시 출국장 밖으로 가지고 나가 동생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리고 법무부 출입국 재심 창구에 양해를 구해 출국심사 잘못을 없던 일로 처리했다는 것이다.

인천공항은 한해 30만 회 이상 항공기가 뜨고 내리는 세계적인 규모의 공항이다. 한국도 테러 공격 대상으로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는 터에 언제 테러리스트가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을 시도할지도 모르거니와 공항이나 항공기 자체가 테러리스트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인천공항의 허술한 보안은 심히 우려스럽다.

정부는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테러방지법의 국회 통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공항의 보안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토대에 구멍이 뚫린다면 아무리 법체계가 잘 정비돼 있다 해도 의미 없는 일이 된다.

여기서 짚어봐야 할 점은 인천공항의 허술한 보안시스템이 공항의 관리와 운영을 책임진 인천국제공항공사 경영진의 낙하산 인사와 관련성 문제다.

최근까지 인천공항공사의 경영을 맡았던 박완수 전 사장은 공무원과 선출직 지방자치단체장 출신이다.

2014년 사장에 임명될 당시부터 '낙하산' 논란이 일었으나 그나마 진득하게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지난해 12월 총선에 출마하겠다면서 사퇴하고 말았다. 박 전 사장의 전임자인 국토부 공무원 출신의 정창수 전 사장 역시 지난 2014년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임기 중 물러났다.

인천공항공사의 사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인천공항에서는 지난 3일 수하물처리 시스템이 장애를 일으키면서 수하물을 제때 싣지 못한 항공기 160여 대의 출발이 지연되는 소동이 빚어졌다.

여기에다 불과 며칠 사이에 밀입국 사건까지 터지고 보니 전문적인 식견과 열정을 가진 경영인이 꼼꼼히 업무를 챙겼더라도 이런 일이 빚어졌을지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인천공항의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사람'의 문제다. 다른 분야도 낙하산 인사는 곤란하지만, 인천공항과 같이 중요한 국가기반시설의 운영을 전문성이 없을뿐더러 재직 중에도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인물에게 맡기는 것은 너무 위험한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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