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이 중국 외교부장

[일요경제=문유덕 기자]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17일 베이징에서 줄리 비숍 호주 외교장관과의 회담 후 기자회견을 통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안에 대화재개 논의가 포함돼야 하고, 한반도(북한)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병행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대북제재 마무리 이후 일정 시점에 6자회담 재개를 통해 비핵화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는 협상을 동시에 추진하자는 의미로 풀이된다.

중국이 그동안 북핵 해법과 관련해 대화를 통한 해결은 물론 북한체제의 안전에 대한 우려 사항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점에 비춰 전혀 새로운 주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에 대한 중국식의 '균형 잡기'를 시도하는 한편, 이를 통한 대북 레버리지 확보를 위한 중국 측의 포석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체제위협을 느낄 정도의 고강도 제재를 통해 북한이 스스로 비핵화 협상에 나오도록 하려는 우리 정부와 미국의 입장과는 간극이 너무나 크다는 지적이다.

한미는 북한의 4차 핵실험은 비핵화 의사가 없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와 함께 강력하고 실효적인 유엔 안보리 결의는 물론 양자차원의 추가제재를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압박을 가하겠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국회 연설에서 대화는 한 번도 거론하지 않은 채 "기존의 방식과 선의로는 북한 정권의 핵개발 의지를 결코 꺾을 수 없다"면서 "북한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근본적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이 대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한미일 등은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북한이 비핵화의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오고 있다.

평화협정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북핵 문제의 진전 없이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고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부장관도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인 지난달 20일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했다.

중국의 비핵화·평화협정 병행추진은 북한과도 입장차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4차 핵실험 이전부터 미국과의 평화협정, 평화체제 논의를 지속적으로 촉구해왔다. 그러면서도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은 거부해왔다.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2일 논평에서 "이런 심각한 사태를 막기 위한 근본적이며 최우선적인 방도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근원적으로 끝장내고 조선반도에서의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보장체계를 수립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8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북한은 더이상 비핵화를 얘기하지 않는 상황이고, 사실상 선(先) 평화협정을 주장하고 있다"면서 "평화협정 주장도 과거와 같은 비핵화를 위한 평화협정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근 행태로 볼 때 "북한은 핵동결 정도의 '미끼'로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과 관계정상화를 이뤄낸 후 사실상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셈법을 하고 있다"며 많은 전문가들이 이런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같이 유엔 안보리 결의와 이어질 양자차원의 대북제재 이후 북핵 접근법을 놓고 북한은 물론 한미일과 중국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어 해법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에 따라 북한에 대한 제재국면이 지속되면서 제재의 실질적 효과가 발휘될 때까지 북핵 문제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표류할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북한의 추가 도발과 주한미군 사드 배치 문제를 둘러싼 갈등으로 '한미일 대 북중러'의 냉전적 대립구도가 뚜렷해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기본적으로 북한이 바뀌어야 대화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북한의 태도변화를 위한 제재국면 속에서 대화와 평화협정을 얘기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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