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단 작성·관리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 문제 없다"

 

[일요경제=신관식 기자] 유통업체나 인터넷 기반 업체들이 개인정보를 수집 불법적 활용이 문제가 돼 논란을 일으킨 바 있었지만 건설업체에서 일용직 근무자의 개인정보를 리스트화해 취업을 제한해 온 것으로 알려져 또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현대건설이 일용직 노동자 수천명의 명단을 작성 관리해 개인정보 수집 문제와 취업제한에 활용해온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회사측은 안전수칙 위반자를 공사 현장에서 걸러내는데 이 명단을 참고했을 뿐이라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 노동계는 근로기준법 등을 위반한 정황이 뚜렷한 일종의 '블랙리스트'라고 반박한다.

14일 건설노동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2011년 현장 안전문화를 혁신하고자 '안전수칙위반자 현장퇴출제도'(아웃시스템)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경중을 기준으로 '원아웃', '투아웃', '스리아웃' 등으로 안전수칙 위반 행위를 구분했다.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노동자를 현장에서 퇴출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졌다. 고공 작업 안전벨트나 안전모 미착용이 걸리면 '원아웃'에 해당해 곧바로 현장에서 쫓겨난다.

현대건설은 이 제도로 퇴출당한 근로자의 신상 정보를 전국 건설현장에서 수집해 전산화한 '안전수칙위반 퇴출자 명단'을 만들어 관리했다.

이 명단에는 퇴출일자, 퇴출 현장, 협력업체명, 이름, 생년월일, 직종, 위반 사실 등이 적혔다. 해당 노동자는 다른 현대건설 현장에서도 일할 수 없다. 전산검색을 통해 현장 출입증 발급이 원천 차단되기 때문이다. 일용직 노동자에게 '주홍글씨'를 새기는 셈이다.

하도급 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은 근로자도 현대건설 현장에 들어갈 수 없다.

명단에는 안전수칙 위반뿐 아니라 산업재해 등과 관련해 권리 의식이 강한 노동자도 상당수 포함됐다. 회사와 법률분쟁이 생겼을 때 '골칫거리'가 되거나 공공입찰에서 불리한 요인을 미리 제거하려고 이들을 특별히 관리했을 개연성이 크다고 노동계는 주장한다.

2011∼2014년 퇴출자 명단에는 3천여명이 올랐다. 여기에는 '산재처리', '산재요구 상습자', '산재악용', '산재상습자'(필 퇴출바람), '과거 산재 경력' 등 50여 명의 이름도 발견됐다.

산재율이 높으면 건설사는 공공입찰에서 감점을 받기 때문에 이들의 명단을 관리했을 것으로 노동계는 의심한다. '타 현장 산재 경력자(D건설)'라는 퇴출 사유는 건설사끼리 노동자의 산재 경력을 공유했을 것으로 의심하게 한다.

▲ 현대건설이 안전수칙 위반자 퇴출을 목적으로 작성한 일용직 노동자 명단. 안전수칙 위반 외에 다른 사유가 상당수 포함됐다.

현대건설이 안전수칙 위반자 퇴출을 목적으로 작성한 일용직 노동자 명단. 안전수칙 위반 외에 다른 사유가 상당수 포함됐다.

이러한 명단 관리는 실정법을 위반한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법조계에서 나온다.

근로기준법 제40조는 '누구든지 근로자의 취업을 방해할 목적으로 명부를 작성해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명부 작성을 근로자 본인에게 알리고 동의를 구해도 위법이다.

개인정보 보호법 24조는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을 때만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현대건설은 하도급업체 노동자의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수집했다.

산재 경력자 명단을 근거로 현장 출입을 막았다면 기업의 산재 은폐를 엄격히 금지하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될 수도 있다.

이영록 전국플랜트건설노조 정책실장은 "현장에서 풍문으로만 떠돈 '블랙리스트'가 사실로 확인됐다"며 "지방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노동자에는 전국 공사 현장 구직을 원천봉쇄한 것이나 마찬가지다"고 지적했다. 취업제한에서 벗어나려면 상경해서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비용과 시간 부담으로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현대건설은 명단 작성·관리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법적으로 문제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이 회사 관계자는 "건설현장에서는 근로자의 안전문제가 매우 중요한 만큼 안전규정 위반자에 대해 강력히 대응해 왔다"면서 "이 명단도 현장의 안전을 강화하려는 취지에서 작성된 것으로, 회사내 다른 현장 등에는 참고 자료로 활용했지만 다른 회사로의 취업을 막는 등의 조치는 하지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전산 등록한 4500여명의 개인정보 사용 동의를 받지 못했으나 사전 안전교육 때 퇴출 가능성은 충분히 알리고 동의도 받았다"며 "제도 시행 전인 2011년 자체 검토에서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했다"고 해명했다.

다만 산업재해 등 안전수칙 위반 이외의 퇴출 사유를 적은 대목에는 "건설현장에서 사유를 직접 입력할 때 부정확한 정보가 포함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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