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자 10%, 일주일에 20%씩 붙어 5주면 원금만큼 이자 '눈덩이'

▲ 경마장 주변에 돈을 잃은 경마꾼을 상대로 불법 고리 대부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과천 서울경마장에서 한 남성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일요경제=신관식 기자] 카지노 등 합법을 내세운 도박장 인근에는 빈털터리가 된 사람들을 상대로 불법 고리대부업이 성행해 당국이 골머리를 썩고 있다. 경마꾼을 상대로 불법 고리대부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과천 서울 경마장과 경기도 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장외 발매소 등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판 '베니스의 상인'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선이자에 주당 20%에 달하는 살인적인 이자율인데도 특별한 담보나 신용등급 상관없이 대출이 가능하다보니 급전이 필요한 경마꾼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검은 유혹에 손을 벌리는 실정이다.

▶ 빈털터리 경마꾼 고리대금 유혹 

경기 과천시 서울경마장 화장실. 벽면 곳곳에서 '신분증 하나면 즉시 대출 경마장 항시대기'라고 쓰인 광고 스티커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업자에게 전화를 걸면 첫거래는 대출상한이 30만원으로 제한된다고 하면서 선이자로 10%를 떼고, 이후 이자는 일주일마다 20%씩 붙는 고리대출이지만, 이를 알면서도 돈을 잃은 경마꾼들은 유혹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현행법상 대출 이자율 상한은 27.9%이므로 명백한 불법이다.

예컨대 30만원을 대출키로 한 경마꾼은 27만원만 빌려가고, 일주일 뒤에는 36만원을 갚아야 하는 것이다. 5주만 지나면 원금과 이자가 같아진다.

이들에게 신분증을 보여주고 일종의 차용증을 작성하면 대출이 가능한데, 담보물로는 스마트폰을 맡겨둬야 한다.

▲ 과천 서울경마장과 경기도내 장외발매소 곳곳에 붙어 있는 불법 고리대출 광고 스티커.

대부업자는 "유심칩을 빼 다른 휴대전화(대포폰)에 꽂아줄 테니 일주일간 사용하라"며 "다음주에 빌린 돈을 가져오면 휴대전화를 다시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이어 가족들의 연락처도 함께 물어보면서 담보할 만한 개인정보를 차곡차곡 챙긴다.

빈털터리 경마꾼을 노린 고리대출은 장외발매소에서도 극성이다.

성남 분당 경마 장외발매소 앞에는 '소액대출'이라고 쓰인 입간판을은 쉽게 눈에 띈다.

전화 문의를 하는 경마꾼을 상대로 정문에 대기 중인 차량에서 똑같은 방식의 고리대출 영업을 벌인다.

도내 또다른 장외발매소가 입점한 건물 상가에는 대부업체가 입점해 급전을 필요로 하는 경마꾼을 상대로 아예 돈놀이를 일삼고 있었다.

시에 등록된 업체지만, 선이자 20%, 이자율은 주 20%로 이것 역시 불법 영업이다.

▶ "나도 이렇게 했다. 해봐라"

# 지난해 7월 수원에서 방충망 시공업을 하는 김선명(가명) 씨는 지인 L씨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과천 경마장 근처에서 경마꾼들을 상대로 한 불법 대부업을 하면 적은 돈으로도 금세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였다.

김 씨는 그달 25일 경마가 있던 주말에 종자돈 300만원을 가지고 대부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L씨가 자신의 노하우라며 알려주는대로 김 씨는 아르바이트생을 고용, 경마장 화장실에 대출 스티커를 붙였고, 전화를 걸어오는 고객들에게 선이자 10%를 뗀 뒤 주 20%의 고리로 불법 대출을 해줬다.

김 씨는 같은해 8월 1일 한 고객에게 선이자 6만원을 뗀 24만원을 빌려준 뒤 1주에 6만원씩 4주에 걸쳐 24만원을 이자로 벌었다.

▲ 김 씨가 공개한 고리대부업 장부

이런 방식으로 8월 한달만 10여명에게 적게는 24만원에서 많게는 180만원까지 빌려준 뒤 이자로 번 돈은 380만원에 달했다.

대부업을 시작한 지 50여일 만에 L씨가 잠적하면서 김 씨는 불법 대부업으로 번 돈은 커녕 종자돈까지 총 500여만원을 잃었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돈을 보며 고리대부업의 무서움을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도박장 주변 불법 고리 근절 못하나

대부업체는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된 등록 업체와 무허가로 영업하는 무등록 업체로 나뉜다.

등록 업체의 경우 관할 지자체에서 적정한 이자율을 적용하는지 등을 정기적으로 점검하지만, 무등록 업체는 사실상 관리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다만 경찰이 단속권한을 갖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무등록 업체에 대해선 사금융 피해자가 발생하기 전까진 적극적인 수사나 단속이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과천경찰서 관계자는 "경마가 있는 주말이면 꾸준히 현장에 가서 둘러보는데 영세한 고리대부업자들이 많다보니 단속을 해도 암암리에 영업을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에도 대부업 2곳을 적발한 바 있다"고 말했다.

지자체가 관리하는 등록 업체 또한 단속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도내 한 장외발매소 건물에선 등록 업체가 불법 고리대출을 하고 있는데도 해당 지자체에서는 이 같은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이자율 위반 시 1차례 적발되면 영업정지 6개월과 형사 고발, 2차례 적발 시 등록 취소 처분과 형사 고발되지만 이 업체는 상가까지 마련해놓고 여전히 경마꾼을 상대로 불법 영업을 하고 있다.

이자율 위반 시 현행법상 형사처벌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형으로 정해져 있다.

해당 지자체 관계자는 "관내 등록 업체는 200여곳인데 상·하반기 각각 10∼20곳씩 골라 정기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한구 수원대 경제금융학과 교수는 "경마장 고리대부업은 사실상 개인 간 소규모로 이뤄지는 음성적 금융거래로, 단속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당국이 힘들게 이들을 찾아냈다고 해도 채권·채무자 모두 '지인 간 돈거래였다'고 주장하면 혐의를 밝혀낼 수 없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리대부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왔다.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고리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대출기준을 완화하고, 저소득층 대출을 위한 마이크로크레딧(미소금융)을 활성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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