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 일주일만에 3명 산재사고로 목숨 잃어…대책마련 시급

▲ 지난 18일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현대중공업의 작업 현장 <사진-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제공>

[일요경제=신관식 기자] 상대적으로 안전수칙을 잘 지킬 것으로 인식되는 대기업의 공사 현장에서 오히려 인명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이같은 잇단 사고 배경에는 '협력업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온갖 위험한 작업을 도맡는 공사도급 체계가 있기 때문이다.

근로자들에게 열악한 공사현장은 대부분 대기업으로부터 하도급을 받은 중소 업체가 맡아 작업을 하게 되는데 현장에 노출돼 있는 안전사고로 중소기업 근로자들이 숨지는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 현대중공업, 일주일만에 3명 사망 사고

현대중공업에서 이틀 연속으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일주일여 만에 3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고 올해 들어 벌써 다섯번째 사망사고다.

지난 19일 오전 11시 현대중공업 선실생산1부 A3셀타장 앞에서 지프크레인 신호수 이모(54)씨가 5톤 지게차에 치여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하루 전날인 18일에도 현대중공업 하청업체 노모(37)씨가 유압호스 정리작업을 하다 굴착기 본체와 붐(Boom·굴착기 앞쪽 작업대) 사이에 끼여 숨졌다.

앞서 11일에는 도장공장에서 사다리차를 타고 일하던 선행도장부 하청업체 송모(45)씨가 선박 블록 돌출부와 사다리차 작업대 사이에 끼여 숨졌고, 지난달 19일에도 해안 안벽에서 작업하던 근로자가 바다에 빠져 숨지는 등 현대중공업 사업장에서만 올들어 3명의 협력업체 직원이 작업중 목숨을 잃었다.

▲ 19일 "하청노동자들의 안전과 고용에 대한 책임을 강화할 것"을 촉구하며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현대중공업 원·하청 노조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안전 사망사고가 잇따르자 자체적으로 20일 하루 전면 작업을 중단하고 전 사업장에 대한 안전점검을 실시했다.

이 회사에서는 작년에 3명, 2014년에 무려 8명의 근로자가 사고로 숨졌다. 모두 협력업체 직원이었다.

또 지난해 다른 대기업 사업장에서도 각종 사고로 협력업체 근로자가 숨지는 사고가 많았다.

1월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에서 질소가스가 누출돼 3명이 숨졌고, 4월에는 경기도 이천시 SK하이닉스 공장 배기덕트를 점검하던 3명이 질식해 사망했다.

7월에는 한화케미칼 울산공장에서 폐수처리장 저장조가 폭발해 용접작업을 하던 6명이 모두 목숨을 잃었다.

대기업 사업장 생산 공정이나 각종 설비를 설치·정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산업재해가 근절되지 않고, 그 위험에 협력업체 근로자가 오롯이 노출돼 있는 것이다.

▶ 안전 사고도 함께 주는 대기업 하도급

대기업이 공정 일부를 사내외 하청업체에 맡기는 것은 국내 산업현장에서 일반적인 경향이다.

핵심 공정이 아닌 단순 생산이나 설비 설치·정비 등 모든 업무를 직접 수행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일부 전문성이 필요한 분야까지 오히려 외부에 맡기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일거리를 주는 등 협력업체와 실질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대기업이 하청을 주는 업무 대다수가 어렵고 위험한 '3D 업종'이고, 일단 하청을 주면 '남 일'처럼 사후관리를 잘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원청업체는 비용 절감에 급급해 하도급액을 터무니없이 줄이거나 '최저가 낙찰제'로 하청업체를 선정한다.

비용에 맞춰 수익을 내야 하는 하청업체는 인력을 줄이거나 공기를 단축하려고 애쓴다.

조선업 침체기를 맞은 현대중공업 하청업체들의 경우 줄어든 일감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치열하게 경쟁을 한다.

이런 환경에서 안전 규정이나 작업표준이 철저히 지켜지기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 안전사고, 피해는 결국 하청업체

아슬아슬한 작업이 이어지다 결국 사고가 터지면 원청업체는 '우리 직원이 아니다'며 책임에서 한발 물러서고, 계속 일거리가 필요한 하청업체는 원청을 상대로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형진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사무국장은 "현대중공업의 경우 전체 생산업무의 70∼80%를 하청업체가 담당하고, 그나마 원청 직원은 상대적으로 안전한 일을 맡는다"고 말했다.

이어 "일단 사고가 나면 주로 열악하게 일하는 하청업체 직원이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 사무국장은 "현재 상황은 말 그대로 '죽음의 외주화'"라면서 "대기업이 위험을 떠넘기려다가 그 부작용이 '안전불감증이 만연한 기업'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와 발등을 찍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 지난해 한화케미칼 울산공장 폭발사고 현장

▶ 원·하청 자구 노력과 정부 조치 강화 필요

협력업체 근로자 사고를 방지하려면 우선 대기업과 협력업체 스스로 구조적 부조리를 끊어야 한다.

대기업은 협력업체 직원에게도 작업장 관리 및 안전 교육을 충분히 해야 한다. 협력업체도 경영이 어렵다는 이유를 내세워 비용 절감이나 작업 속도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법에 정해진 안전·보건교육을 성실히 이행하는 등 직원 안전을 스스로 챙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고용부의 실질적인 역할은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에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는 등 사후 조치에 무게가 실려 있다.

뒤늦게 현대중공업이 20일 안전점검 실시와 함께 안전사고에 대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잇따른 사고로 이날 하루 작업을 전면 중단하고 전 사업장 안전점검에 나선 이 회사는 협력업체별 안전관리 전담자를 배치하고 안전인증 획득을 의무화하기로 했다.

또 중대 재해가 발생한 협력회사에 대해서는 계약해지 등 강도 높은 제재를 하기로 했다.

관할 노동청인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25일부터 5월4일까지 8일 동안 현대중공업에 대해 안전보건 특별감독을 실시하기로 했다. 고용노동부는 안전수칙 위반사항이 있으면 사법처리, 과태료 부과, 작업중지 명령 등을 내리기로 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관계자는 "원청업체의 안전조치 의무를 규정한 '위험장소'를 확대하고, 안전조치 의무 위반 때 처벌수준을 강화하는 내용으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노사가 함께 안전문화를 만들고 사고 예방을 위해 실질적인 노력을 해야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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