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비자금 의혹 조사 중 롯데케미칼-일본 롯데물산 자료 확보도 어려워

롯데그룹 비리 의혹 수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검찰이 롯데그룹을 향해 더 큰 칼을 뽑아 들었다. 롯데케미칼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해 일본 사법당국과 공조까지 불사하겠다고 나섰다. 

롯데케미칼이 “일본 주주들의 반대로 일본롯데물산의 금융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검찰에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검찰은 롯데케미칼 비자금 조성 실태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와 한국과 일본 양국에 걸쳐 불투명하게 얽힌 롯데 지배구조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해 롯데케미칼에 일본 롯데물산과의 거래 내역 등이 포함된 자료를 요청했다.

그러나 롯데케미칼은 지난 28일 일본 롯데물산 주주들의 반대를 이유로 검찰의 요구를 거부했다.

▶ 롯데 겨눈 칼날…檢, 일본 공조 요청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특수4부·첨담범죄수사1부)은“신 회장이 주총에서 의결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지만 있으면 제출할 수 있다”며 “롯데케미칼이 국내에서 주로 영업을 하는데 일본 주주 소수 때문에 자료를 받을 수 없는 것은 부당하다”며 자료 확보를 위해 일본 정부에 사법 공조를 요청하기로 했다.

검찰은 일본 롯데물산이 그룹 비자금 조성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2011년부터 해외에서 석유화학 원료를 수입하면서 중간 업체로 일본 롯데물산을 끼워넣어 수수료 명목으로 자금을 일본으로 빼돌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 돈이 롯데 총수일가의 비자금으로 조성된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이 주장하는 정상적인 거래라면 자료제출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며 "수수료 명목의 돈은 근거가 없다. 대행 업무는 다른 업체가 하고 있고 롯데케미칼의 당시 자금 사정으로는 굳이 일본 계열사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특정 계열사를 끼워넣고 이익을 남기는 방식은 기업비리 사건에서 주로 비자금 통로로 이용된다"고 덧붙였다. 

▶ 미로같은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검찰도 미로처럼 돼 있는 롯데그룹의 지배구조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다. 롯데 총수 일가의 비자금 조성을 비롯한 그룹내 의혹투성이인 자금 흐름을 밝혀내기 어려운 이유가 한일 양국에 걸쳐있는 불투명하게 얽힌 롯데 지배구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형제

실제로 한국 롯데는 작년 말 현재 67개 순환출자 고리로 엮여있고, 계열사간 순환출자로 국내 재벌 전체 순환출자 고리 94개 가운데 롯데가 71.3%에 차지할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36개 일본 계열사와 한국 계열사 86곳 중에 상장사는 8곳에 불과해 외부 감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 내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호텔롯데 역시 비상장사이며, 이는 총수가 있는 상위 10대 민간 기업 중 비상장사가 지주회사로 있는 유일한 사례다. 

그런데 한국 롯데의 지주회사격인 호텔롯데는 일본에 있는 투자회사 LSI(롯데스트레티지인베스트먼트)의 지배력 아래 있다. LSI가 보유한 호텔롯데 지분은 73%에 이른다.

L1에서부터 L12까지 12개의 L투자회사를 자회사로 거느린 LSI의 지분 60%는 일본 롯데의 지주회사 롯데홀딩스가 갖고 있다. 

롯데홀딩스의 지분은 광윤사(고준샤·光潤社) 28.1%, 종업원지주회 27.8%, 관계사 20.1%, 임원 지주회 6%, 투자회사 LSI(롯데스트레티지인베스트먼트) 10.7%, 가족 7.1%,  롯데재단 0.2% 등으로 나뉜다.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의 경우 지분의 99%를 신격호 총괄회장, 부인 시게미쓰 하쓰코(重光初子), 신동주 전 부회장, 신동빈 회장 등 네 명이 보유하고 있다. 

총수일가가 롯데홀딩스를 중심으로 한 복잡한 상호출자와 순환출자 속에 일본 계열사를 지배하고 이들 일본 계열사들이 다시 호텔롯데 등 한국 롯데의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는 셈이다. 

▶ '롯데 왕국'에서 무엇 건질까

일각에서는 검찰이 기세등등하게 40여개 계열사를 압수수색하고도 더딘 수사 진전으로 소강상태를 보였던 것도 롯데의 이런 복잡한 지배구조의 '덫'에 빠졌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검찰은 "국내 롯데그룹 계열사의 지주회사인 일본 롯데홀딩스나 L투자회사 등은 주주 구성이 공개된 적이 없어 지배구조 파악이 어렵다"며 "사법공조를 통해 관련 자료를 받아 볼 계획"이라고 했다. 

검찰이 일본 사법당국에 공조를 요청하면 한두 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일본 롯데 계열사의 주주 구성 내역과 관련한 자료도 제공받을 계획이다. 

작년 7월 시작된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 경영권을 둘러싼 '형제의 난' 때 처음으로 거미줄처럼 얽히 대단한 지배구조를 건설한 '롯데 왕국'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재벌기업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수사 중인 검찰이 총수 일가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지배구조 문제를 상세히 언급한 것은 이례적이다.

검찰이 이번 기회에 정면돌파 의지로 불투명한 지배구조의 실체를 파헤치며 비자금 의혹과 함께 총수 일가 비리를 밝힐 것인지 혹은 티끌을 건져 올릴 것인지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