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경제=박지민 기자] 1970~80년대에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입학시험을 치러야 했고, 상위 그룹에 속하지 않고서는 인문계에 진학할 수가 없었다. 과거 인문계 고등학교를 대신한다고 할 수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는 요즘 따로 시험을 치르지 않고 중학교 내신 성적만 가지고 진학하게 된다.(일부 지방 제외)

외국어고, 과학고, 자립/공립형 사립고의 입학 정원이 크게 늘어나고 특성화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원하는 학생, 학부모가 늘어남에 따라 일반계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기피하는 현상이 크게 늘고 있다.

특히, 중간 성적의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미리 결정하고 특성화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됨에 따라 일반계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 중에는 성적이 크게 떨어지고 공부에 관심 없는 학생들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반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는 경우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따른 일반계 고등학교와 여기에 몸담고 있는 선생님들의 수업 및 학생지도는 과거 2~30년 전 인문계 고등학교에서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선 한 학급을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 자체가 너무도 다양한 학생들로 이루어져 있다.

중학교 때 전교 1,2등을 다투던 학생들부터 기본적인 사칙연산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학생까지 모두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현실이다.(현재 서울 소재의 모든 고등학교는 수준별 반 편성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음) 일부 수준별 이동수업을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절반 이상의 학생이 수업을 제대로 소화하기란 애초부터 쉽지 않은 것이 오늘날 일반계 고등학교의 현실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교육의 현장에서는 그저 이런 현실에 비관만 하면서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다양한 구성원에, 다양한 생각들과, 다양한 진로를 생각하고 있는 그야말로 다양한 학생들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이제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실제 그런 맞춤형 교육을 이미 시행하여 많은 학생과 학부모들의 호응을 얻고 있는 학교가 있어 찾아가 보았다. 은평구 갈현동에 위치한 선정고등학교가 바로 그곳이다.

우선 선정고등학교는 교육부에서 지정하여 전국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과학중점학교 중 하나이다.

과학중점학교는 일찍이 2010년 교육부에서 전국적으로 100개 학교를 지정하여 미래의 과학도를 육성하고자 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로, 교육부가 지정한 다양한 자율학교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 받는다.

이에 선정고등학교는 변화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발 빠르게 준비하고 대비하여 서울시 서부 지역(마포, 서대문, 은평구)에서 유일하게 과학중점학교 지정을 받아 교육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과학고등학교에 준하는 시설을 갖추고 수학, 과학 수업을 45% 이상 편성하는 과감한 교육과정, 그리고 심도 있는 수업과 다양한 동아리 활동 등을 지원함으로써 미래의 과학도로서의 자질을 키워나가고 이를 통해 대학 입학 성적도 인근 일반계 고등학교와 비교하여 탁월한 실적을 거두고 있다.

특히, 첨단 기자재를 이용하여 일반 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실험을 할 수 있고 유명 과학자들을 초청해 특별 강연을 듣는 기회(드림 싸이언스 프로그램)를 부여하기도 하고, 동아리별로 과제연구를 하고 이를 다른 일반 학생들과 공유하는 과학수학체험전을 매년 시행하고 있다. 올해에도 과학수학체험전은 인근 중고등학교 학생들까지 초청하여 성황리에 치러졌다. 이처럼 다양한 프로그램과 활동 등을 통해 미래의 과학자들이 선정고등학교에서 하루하루 꿈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선정고등학교는 예체능반을(미술,음악,체육) 2.3학년 한반씩 운영하며 주당 전공심화과정을 8시간 정규 수업시간에 실시하고 있다. 또한, 선정고등학교는 미술거점학교이기도 하다. 거점학교란 과학, 음악, 미술, 체육, 제2외국어 등 특정 분야의 집중적인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지역별로 지정한 학교를 말한다. 선정고등학교는 2014년부터 미술거점학교를 운영하면서 예술고등학교나 대학에 출강하는 우수한 강사들을 초빙하여 선정고등학교 학생 뿐 아니라 주변에 미술에 관심있는 학생들을 모아 방과후에 집중적으로 미술(디자인, 소묘 등)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선정고등학교는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2013년 서울시교육감배 리그대회에 축구와 배드민턴, 농구, 댄스 종목에 처음 참가하였고, 축구팀은 첫 출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전체 준우승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이 때 전교생이 효창운동장에서 펼쳐진 결승전 응원에 참가하여 선생님과 학생, 그리고 운동장에서 뛰는 모든 학생들이 한마음이 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후 여학생들도 축구, 배드민턴, 농구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고 작년에는 야구, 배구팀도 만들어져 대회에 참가하는 등 스포츠 활동이 크게 활성화되었고, 올해 댄스부가 전국 3위, 여자축구부가 서울시 3위의 성적을 거두는 성과에 힘입어 선정고등학교는 스포츠 활동 활성화 모범학교로 평가받고 있다.

선정고등학교 학생들 중에 매우 눈에 띄는 학생이 하나 있다. 2학년 학생으로, 아프리카 콩고 출신으로 흑인 여학생이다. 이 학생(관선은고바프레셔스)을 중심으로 많은 학생들이 같이 어울려 수다도 떨고 매점에 가 아이스크림을 같이 사먹기도 한다. 또, 일주일에 2~3번씩 점심시간에 모여 이 학생이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영어회화를 가르친다. 작년부터 이 활동을 해온 학생들은 이제 제법 서로 간에 대화가 통할 정도로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 또한 선정고등학교에는 기숙사가 하나 있다. 그런데, 이 기숙사에는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아닌 바다 건너 일본에서 유학 온 유학생들이 생활하고 있다. 이 학생들 역시 한국 학생들과 같이 어울려 운동도 하고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받으며 같은 동아리에서 활동을 하기도 한다. 때론 축제 때 같은 무대에서 공연을 하기도 한다. 이처럼 선정고등학교는 어느 대학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 마치 외국에 있는 국제학교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또한 선정고등학교에는 30여개의 상설동아리와 100여개의 자율동아리가 운영되고 있다. 과학, 수학 관련 동아리가 40여개 있고 연극이나 힙합, 댄스 등 다양한 동아리를 운영하여 학생들이 누구나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의 동아리를 찾아 많이는 4~5개의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 중에는 “쌤(Science & Mathematics)”이라는 동아리가 있는데, 미래의 수학, 과학 선생님을 꿈꾸는 학생들이 바로 같은 울타리 안에 있는 선정중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직접 수학, 과학을 가르치면서 후배들을 지도하는 동아리로, 가르치는 선정고등학교 학생이나 배우는 중학교 학생들 뿐만 아니라 학부모님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처음에는 중학생을 가르친다는 게 겁도 나고 두려웠지만, 해보니까 재미있고 정말 보람있는 일인거 같아요. 나중에 선생님이 되는데 큰 도움이 될거 같아요. 이런 기회를 주신 선생님과 학교에 감사드립니다.” 엄기환(선정고 1학년)

또 선정고등학교는 중소기업청 지원의 “비즈쿨(Business School)” 운영 학교이다. 비즈쿨은 경상계열 진로를 꿈꾸는 학생들이나 공부에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나중에 사업을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기업가정신 및 창업실무 교육을 시키는 학교로, 서울시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유일하게 선정고등학교에서만 지정, 운영되고 있다. 비즈쿨 학생들은 쇼핑몰을 직접 만들어 운영하여 수익금을 장학금으로 기부하였고, 지난 9월에는 3박 4일로 중국 출장을 가 시장조사를 하고 오는 등 미래의 CEO를 꿈꾸고 있다.

또한, 대학 진학보다는 일찌감치 취업으로 진로를 생각하는 학생들은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후에는 진로체험 MOU를 맺은 은평청소년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에 가서 바리스타나 특수분장사와 같은 다양한 진로직업을 체험하는 대안교실 프로그램도 운영 중에 있다.

선정고등학교의 또 하나의 자랑이 ‘청운재’라는 자율학습실이다. 이곳은 학생들의 공부를 위해 거의 연중무휴 쉬지 않고 운영되고 있으며 매일 밤 12시까지 자유롭게 남아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늦은 밤에는 학부모님들이 직접 남아 학생들이 공부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도우면서 같이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은 여느 학교에서 보기 힘든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 많은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학교와 선생님들의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 선정고등학교는 다양한 학생들이 재학중에 있습니다. 미래의 과학도, 예술가, 체육인, 사업가 등 각양각색의 꿈을 꾸는 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 다양한 학생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는 많은 프로그램을 필요로 하고, 이는 우리 선생님들의 많은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꿈을 위해서는 기꺼이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교장 유대규)

이러한 학교의 배려와 선생님들의 희생을 통해 선정고등학교의 학생들은 정말 밝고 행복한 모습으로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으며, 이는 앞으로 일반계 고등학교의 모범적인 사례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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