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경제=하수은 기자] "국내 정치 불확실성으로 가장 우려되는 점은 경제 심리 위축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5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소비자 심리가 많이 위축됐고 장기화하면 기업투자 심리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불확실성 해소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빨리 진정되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가 경제의 하방 위험 증대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국내 정치 불확실성의 영향으로 하방 위험이 커졌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경제 심리 위축이다. 소비자 심리가 많이 위축됐고 이것이 장기화하면 기업투자 심리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불확실성 해소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만 외국 금융기관의 평가를 보면 정치적 불확실성이 한국 경제 미치는 영향을 제한적이라고 평가한다. 빨리 진정되면 제한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내년도 경제 전망과 관련해서는 "지난 10월 전망할 때와 비교하면 상방리스크 보다는 하방리스크가 좀 더 크다. 선진국의 경기 회복세가 조금 더 확대되고, 국제유가 상승으로 자원 수출국 경제 여건이 좋아지면서 수출여건이 좋아지는 점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미국의 금리 인상속도가 빨라지고 트럼프 정부 출범에 따른 보호무역주의 강화 우려,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은 하방 위험이다. 내년 1월에 성장률 전망을 수정할 때 새로운 전망을 제시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 "내년 성장률 2% 중반 어려울 수도…부총리 인사 시급"

이런 가운데 경제 전문가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내년 상반기까지는 불확실성이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부에선 탄핵안 가결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지만 불안감 때문에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위축되면 내년 경제는 2%대 중반 성장도 쉽지 않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불확실성이 이미 커져 있는 상태고 대외경제여건도 어려워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제정책은 정치와 분리해 독립적으로,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형태의 경제정책 당국자가 필요할 것 같다. 현재는 유일호 부총리와 임종룡 내정자가 어정쩡하게 함께 있는 상황이다. 여야가 합의하는 당국자가 아니라면 정치적으로 독립돼서 경제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성장은 2%대 중반도 쉽지 않다고 내다봤다.

성 교수는 "정책 대응이 필요한 부분이 많은데 현재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거시 경제 상황은 지금 계속해서 가라앉고 있다. 소비·투자가 위축된 상황에서 수출이 감소하기 때문에 경제 변수가 개선되는 것이 거의 없다. 여기에 더해서 주택시장도 상당히 어려워질 우려가 있다. 대응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백웅기 상명대 교수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차기 대통령 선출까지 불확실성은 지속할 것이고 불확실성이 지속하면 경제가 나아지기 어렵다. 그렇지 않아도 대외여건이 좋지 않은데 내년 상반기에는 굉장한 충격이 있을 것이다"며 "자칫하면 (내년 경제성장률이) 1%대로 내려갈 수 있지만 그건 엄청난 충격이 왔을 때다. 정말 상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다. 해외 신용평가기관이 한국에서 발행한 채권의 신용등급에 대해 최소 전망 하향에서 등급 하향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때도 경제가 좋지 않다고 했지만 그땐 대외여건은 나쁘지 않았다. 지금처럼 내수와 수출 둘 다 동시에 힘을 잃는 상황은 흔치 않다. 심지어 외환위기 때인 1997년에도 수출이 받쳐줘서 경제가 비교적 빨리 회복한 바 있다. 최근에는 대외여건 자체가 반세계화 쪽으로 가고 있어서 살아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현 경제상황을 진단했다.

국내 기업들도 현재 경제상황을 매우 어둡게 전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10곳 중 9곳은 정부나 경제연구소보다 내년 경제 상황을 더 어둡게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15일 국내 30대 그룹의 주요 계열사 32곳을 상대로 내년도 경영환경 전망 등을 설문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은 21곳(65.6%)이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2.0% 이상~2.5% 미만'으로 전망했다.

이는 기획재정부(3.0%), 국제통화기금(IMF·3.0%), 한국은행(2.8%),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6%), 현대경제연구원(2.6%), 한국금융연구원(2.5%) 등의 전망보다 낮은 수치다. 다만, 이들 기관도 최근 경기흐름을 반영해 조만간 성장률을 하향 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성장률이 '1.5% 이상~2.0% 미만'에 그칠 것으로 예상한 기업은 9곳(28.1%)이었다. 조사 대상의 93.7%가 2%대 중반 성장도 어렵다고 생각한 것이다.

반면 '2.5% 이상~3.0% 미만'이라고 답한 기업은 2곳(6.3%)에 불과했다.

주요 경제기관의 분석과 달리 현장에서 뛰는 기업들이 체감하는 경기는 더 차갑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내년 상반기까지 정치적 불확실성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대외경제 여건도 어려워지고 있다.

조사에 응한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경제기관 등의 전망은 최순실 사태와 연말 탄핵 정국을 고려하지 않은 수치로 정치 리스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내년 기업 경영의 최대 위협요인으로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고립주의 확산'(16곳·45.7%)을 가장 많이 꼽았다.

대부분이 수출로 먹고사는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두 번째로 많이 선택한 위협요인이 '최순실 게이트에 따른 국내 정치의 불확실성과 정부 공백 상황'(9곳·25.7%)이라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기업들은 국내 정치 혼란을 중국 경기의 완만한 둔화(4곳·11.4%), 내수 침체(3곳·8.6%),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정책(3곳·8.6%)보다 더 위협으로 판단했다.

기업 19곳(52.8%)은 정책 리더십의 부재가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라고 답했다. 신성장동력 발굴 등 비전 제시의 무능(6곳·16.7%), 미온적 규제 개혁(5곳·13.9%), 해운·중공업 등 위기 업종에 대한 뒤늦은 대처(4곳·11.1%), 부동산 위주의 경기 부양과 가계부채 방치(2곳·5.6%))도 문제로 지적됐다.

박문수 산업연구원 산업정책연구실장은 "내부적인 리스크로는 정치적 혼란이 있고 외부적으로는 트럼프 정부 출범과 더불어 보호무역주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하루빨리 경제사령탑이 제자리를 잡고 정치적 혼란에 따른 불안정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주력 업종과 무관하게 내년 경영환경을 대체로 어둡게 봤다.

대부분 기업이 내년 구조조정이나 투자 동결 등 방어적 경영을 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유통과 석유화학만 투자·채용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유통기업 4곳 중 2곳과 석유화학 업체 5곳 중 2곳은 내년 투자를 올해보다 확대하겠다고 답했으며, 유통기업 4곳 중 3곳과 석유화학 업체 5곳 중 2곳은 내년에 더 많은 인력을 채용할 계획이다.

기업들은 세계 경제의 회복이 2018년 이후(19곳·59.4%)에나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그다음은 2019년 이후(6곳·18.8%), 내년 하반기(6곳·18.8%), 내년 상반기(1곳·3.1%)로 집계됐다.

가장 위협적인 경쟁국으로는 중국이 23곳(71.9%)으로 가장 많았고 이는 업종별로 차이가 없었다. 미국(6곳·18.8%)이 그다음이었고 일본, 유럽, 국내 기업도 1곳씩 언급됐다.

정부에 바라는 경제 정책은 '과감한 규제 개혁'이 13곳(37.1%)으로 가장 많았는데 특히 중소기업 적합업종 등 동반성장 관련 규제가 많은 유통업에서 이런 목소리가 많이 나왔다.

KDI, 내년 성장률 2.4%…"정치적 불확실성에 더 떨어질수도"

앞서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내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7%에서 2.4%로 내려잡았다.

이는 최근 지속되고 있는 정치적 불확실성을 감안하지 않은 것으로 이로 인한 추가 성장폭 둔화 등을 감안하면 내년 2% 성장도 장담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KDI는 7일 발표한 '2016년 하반기 경제전망'에서 우리 경제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로 지난 5월 제시한 2.6%를 유지하는 대신 내년 전망치는 2.7%에서 2.4%로 0.3%포인트(p) 하향 조정했다.

이는 정부가 예상하는 올해((2.8%)와 내년(3.0%) 전망치 보다 모두 낮은 것이다.

다만 정부 전망치는 지난 6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발표한 것으로 이달 말 내놓을 내년 경제정책방향에서는 하향 조정 가능성이 크다.

KDI 전망대로라면 내년 우리 경제는 2012년(2.3%) 이후 5년 만에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면서 사상 최초로 3년 연속 2%대 성장에 머물게 된다.

KDI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한국은행(2.8%)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2.6%), 현대경제연구원(2.6%), 한국금융연구원(2.5%) 보다 낮고 LG경제연구원(2.2%), 한국경제연구원(2.2%) 보다는 소폭 높은 수준이다.

KDI의 전망치는 최근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이를 감안할 경우 내년 성장률은 더 떨어질 수 있다.

정치혼란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경우 경제주체의 소비위축과 투자지연 뿐만 아니라 생산 및 노동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이 파급되면서 내수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지난 5월 전망과 비교하면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국 대선 결과 등으로 대내외 불확실성이 높아져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4%로 낮췄다"면서 "대외여건이 급변, 모든 나라의 성장률이 떨어지면 우리 경제 성장률도 1%대로 낮아질 수 있지만 대내여건만 바뀌었을 경우에는 1%대로 떨어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KDI는 우리 경제의 대외적 위험요인으로 미국 금리 인상 및 통상마찰 심화에 따른 신흥국 경기 급락, 중국경제의 불안 등을 꼽았다. 대내적으로는 정치적 불확실성을 지목했다.

ADB, 내년 한국성장률 전망 2.8%→2.7% 하향

해외에서도 한국 경제의 내년 전망을 어둡게 내다보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7%로 0.1%포인트 낮췄다.

ADB는 지난 13일 발표한 아시아 경제전망 수정보고서에서 올해 한국 경제가 지난 9월 예상치와 같이 2.6%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면서 내년 전망치를 이처럼 하향 조정했다.

ADB는 한국 경제 성장세가 취약한 외부 환경, 기업 구조조정 여파, 정치적 불확실성 고조로 향후 몇 분기 동안 약한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정치적 불확실성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정국 불안이 경제에 미칠 파장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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