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경제=손정호 기자] 국내 대기업 계열의 A사 임원이 화장실에서 장애인 1명을 폭행한 사건의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이 사건은 최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는데, 최순실 게이트로 재벌 대기업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진 가운데 새해에도 여전히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강자의 갑질이 여전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지체장애 4급으로 49살인 B씨는 작년 11월 9일 서울시 상암동 DDMC(동아디지털미디어센터) 건물 화장실에서 대기업 상무와 팀장 등 2명에게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C상무, D팀장과 합의하는 방안도 고려했지만 이를 거부하고 검찰 수사 진행과 더불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까지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가 합의를 거부하고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것은 C상무와 D팀장이 경찰 조사 과정에서 먼저 맞았다는 주장을 하며 B씨 지인에 의한 폭행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후 C상무 등은 사건이 커질 조짐을 보이자 B씨에게 여러 경로를 통해 사과하고 합의를 요구하며 쌍방폭행을 이룬 고발을 취하하고 서울중앙지검에 B씨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처벌불원서를 제출했지만, B씨는 억울함을 느껴 합의보다는 법적인 처벌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회사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B씨는 자신의 회사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고, B씨의 지인이 화장실로 오자 C상무는 자리를 뜨고 D팀장과 B씨의 지인이 화장실 앞에서 다툼을 하는 과정에서 A사의 다른 직원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사 C상무와 D팀장은 작년 11월 회식을 하고 술에 취한 상태로 대리기사를 기다리다가 화장실에 가서 B씨를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B씨가 눈을 마주쳐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내가 누군 줄 아느냐’ ‘이 XXX’ 등의 욕설을 했으며, D팀장이 A씨의 신체 일부를 잡은 상태에서 C상무가 B씨의 얼굴 등을 수차례 가격했다는 게 B씨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A사 관계자는 <일요경제>와의 전화통화에서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내용이 맞다”며 “피해자 분이 폭행을 당했지만 임직원이 폭행을 당한 것도 나와 검찰 조사로 사건이 넘어갔다”고 말했다. 당사자들이 만나서 원만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회사 일로 인한 사건이 아니라 개인 일로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현재 단계에서 해당 임직원에 대한 처벌을 내린 상태는 아니지만, 검찰 조사 결과 등을 보고 합리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사건에서 눈여겨볼 점은 대기업 계열사 임직원의 눈높이다. ‘내가 누군 줄 아느냐’는 발언에는 평범한 지체장애 4급의 중년에 대해 자신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상대라는 우월적 인식이 담겨 있다. 비록 술에 취한 상태였으며, C상무와 D팀장이 한국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볼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목발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에 대한 우발적 욕설과 폭행으로 분출되는 것은 기형적이다. 경찰은 이 사건을 B씨에 대한 공소권 없음, C상무와 D팀장은 B씨가 제출한 진단서와 CCTV 화면 등을 토대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과 재벌 회장의 아들 보복폭행 매 값 사건 등으로 이미 재벌 등 사회 고위층의 갑질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논의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연말과 새해에도 비슷한 갑질 사건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조카이며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인 정몽훈 성우전자 회장은 작년 9월 서울 청담동 음식점에서 20대 여직원을 성추행한 혐의로 이달 초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됐다. 정일선 현대BNG스틸 사장과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은 지난달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한 혐의로 검찰에서 벌금을 부과 받았다. 

시민들이 이런 갑질에 크게 분노하는 이유는 폭언과 폭행 자체에도 윤리적, 법적 문제가 있지만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에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평범한 시민들의 살 길이 더 묘연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순실 게이트로 수십만 명의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청와대까지 행진했을 것이다. 이미 소외된 자에 대한 이중, 삼중의 차별을 견딜 수 없으며, 그것을 견뎌야 할 이유가 더 이상 없다는 것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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