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호 기자

최근 정치권과 경제계, 시민사회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대기업들의 지배구조 투명화와 합법적인 경영권 승계 문제일 것이다. 신규 순환출자가 금지된 상태에서 지배구조 투명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으며, 여소야대 정국에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당들은 지주사 전환과 관련된 경제민주화법안들을 입법 발의하고 본회의 통과를 위해 분주하고 움직이고 있다. 

논의 중인 대표적인 경제민주화법안 중에 지주사로 전환할 경우 자사주에 분할사의 신주가 배정돼 의결권이 부활하는 상황을 견제하기 위해, 지주사 전환 전에 자사주를 의무적으로 소각할 것을 하는 게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집단소송제 등과 더불어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경제민주화법안 중 하나인데, 지주사로 전환하면 현행 제도상 자사주의 의결권이 부활해 총수일가가 추가적인 비용 없이 지배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는 것. 

이런 지적의 근간에는 지금까지 대기업 총수일가가 제도적으로 합리적인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전제된 것으로 보인다. 상속제를 전제로 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100만원을 부모님에게 상속받을 때 양도소득세 등을 정해진 비율만큼 납부해야 하지만, 주식 헐값 발행과 비자금 조성 등 우회적 방법으로 세금을 납부하지 않고 부모 세대가 유지했던 지배력을 자식 세대도 동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일 것으로 풀이된다.

금수저, 흙수저 문제도 있다. 누군가는 부모를 잘 만나서 10대 시절에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의 주식과 부동산 등을 보유하고, 누군가는 부모를 잘 못나서 대학 학비도 걱정을 해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 논란 자체는 현재 우리나라와 미국, 유럽 등 서방국가 대부분이 유지하고 있는 자본주의-민주주의 틀에서라면 어디서나 발생할 수 있는 문제로 보인다. 상속제를 유지하는 경우 금수저, 흙수저 논란은 계속 발생할 것이다. 

상속제의 윤리적 문제는 유전의 문제와 결부될 수도 있다.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는 사람은 신체가 건강하고 머리가 좋은 사람에 비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할 가능성이 적을 수 있는데, 건강과 지능에 대한 DNA 차이가 한 개인의 미래 소득과 삶의 질에 차이를 발생시키는 문제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개인 차, 부모의 부 정도나 나의 신체적 건강함 또는 지능 등에 따른 요소들을 고려하면서 합리적인 사회, 전체 생산가능한 부의 규모를 최대로 하는 사회는 어떤 것일까에 대한 논의와 고민이 계속 필요해 보인다.

대기업 총수일가나 중견기업 대표 3세의 10대 주식 보유 문제는 한두 건이 아니지만, 최근 이를 취재하면서 한 주식투자 게시판에 읽은 글이 기억에 남는다. 어린 경영진 3세 또는 4세의 주식 보유가 윤리적 논란을 낳을 수는 있지만 불법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식이나 재산 등을 상속하는 과정에서 합법적이고 투명한 경로로 절차를 거쳐 관련 세금 등을 모두 납부했다면 법률적 문제도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회사일수록 배당 성향이 높아서 투자자들이 투자하기에 유리하다는 면도 있다고 조언했다. 이 역시 틀린 말은 아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에도 대주주 지분율이 높은 계열사의 배당성향이 더 높다는 경제연구소와 증권사 보고서들이 나온 적이 있다. 이 부분에서 드는 생각은 만약 주식회사의 철학에 부합해서 주주들이 자신들이 보유한 지분율에 따라 회사 경영 의사 결정에 민주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면,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높든 적든 배당성향이 거의 동일한 수준으로 진행돼야 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다.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높은 회사는 배당을 많이 하고,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적은 회사는 배당을 적게 한다면 최대주주의의 의지와 관심에 따라 회사가 경영되는 문화가 전반적으로 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한국 사회가 소득 3만 달러 이상, 투명도 20위권 이상의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 고민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넥스트 패러다임’ 또는 ‘넥스트 제너레이션’에 대한 고민은 조금 위험하기는 하지만 지속가능한 성장과 활력을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대기업이 나쁘다는 게 아니고 상속제가 틀렸다는 게 아니다. 중소기업만 선하고 모든 비판이 모두 옳다는 게 아니다. 윤리적 문제와 법적 문제가 있을 것이고, 유지와 안전성, 진화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해답은 바람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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