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

 

[일요경제 = 손정호 기자] 정의(Justice), ‘J이코노미’를 강조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재벌 개혁과 공정거래 강화는 일정 정도 예상됐던 프레임이다. 지난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헌법재판소에 의해 탄핵되게 만든 최순실 게이트라는 사상 초유의 대규모 정경유착, 이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원성, 그 리액션이기도 하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재벌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를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에 내정하면서 정말 재벌이 개혁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희망이라는 이중적 여론이 모두 상승되는 분위기다.

김상조 교수는 우리나라 주요 재벌들의 초법적 행위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역할을 해온 경제개혁연대의 소장이기도 하다. 특별검사팀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때 김 교수의 책과 글을 밤새 공부하고 전략을 마련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김 교수는 당시 특검의 참고인 조사를 받기도 했으며, 참고인 조사 후 ‘이번에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될 것 같다’고 예상했는데 그 예측이 실제로 이뤄져 유명세를 더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18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4대 그룹이 30대 그룹 전체 부의 3분의 2를 차지한다며 일부 상위 그룹에 공정위 정책을 집중시키는 게 맞고 대통령도 이에 공감했다고 밝혔다. 삼성, 현대자동차, SK, LG그룹 등 우리나라 4대 그룹을 정조준한 발언이다. 김 교수라는 인물의 내정, 김 교수의 이런 발언이 갖는 정치적 파급효과를 걷어내고, 김 교수가 4대 그룹을 정조준한 것의 경제적 실익 또는 기업 및 우리나라 경제, 시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김 교수는 공정위 기업집단과를 기업집단국으로 확대하고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등 대기업집단에 대한 감시와 조사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순환출자 고리 해소는 서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순환출자가 이미 금지된 상태에서, 기존 순환출자 해소 의무화로 법안이 강화될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문 대통령의 10대 공약에서는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김 교수는 5년 전에는 순환출자 고리가 14개 그룹, 9만8000개에 달했는데 현재는 7개 그룹, 90개 정도로 크게 줄었다고 설명했다. 기존 순환출자 고리 해소가 우리 경제에 아주 시급한 문제는 아니라는 것.

대기업이 없으면 일자리를 늘리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그 지적이 맞다’고 했다. 20년 동안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재벌 해체를 말을 한 적이 없다’며, 공정위 위원장이 된다고 해서 시민단체 활동 중에 하던 주장을 모두 실현시킬 수 없다고도 전했다. 

하지만 그는 우리나라 1900만 명 임금 근로자 중 10대 그룹의 직접 고용이 100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 상위 대기업의 성장이 국민소득 증대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대기업 경제만을 위해서는 대기업집단의 무한한 확대가 정답이겠지만, 국민 경제를 위해서는 대기업과 중견·중소기업이 공정한 룰 아래에서 서로 거래하는 상생경제 또는 공유경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거대한 부를 무기로 시장질서를 교란하거나, 중견·중소기업과 정당한 거래를 하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분배의 왜곡, 그리고 인해 심해지는 소득 양극화와 내수경기 침체, 소비 감소로 인한 전체 기업활동 위축이라는 악순환을 현명하게 극복할 수 있을까. 

아직 인사청문회가 남았다. 김 교수가 공정위 위원장으로 취임한다고 해서 재벌 대기업이 해체되지는 않을 것이다. 대기업 해체가 정답도 아니다. 대기업만 성장하는 기형적인 구조 또는 불공정거래로 인해 신생 대기업이 생기지 않는 폐쇄성이 문제일 것이다. 우리나라 10대 기업 중 35살 이하는 네이버 한 곳이다. 하지만 미국은 애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페이스북 등 5개다. 

손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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