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하는 편의점 산업, 버려진 알바 노동자’

'경산 CU 편의점 알바 노동자 살해사건 해결 및 안전한 일터 만들기 시민대책위원회' 측은 지난 4월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BGF리테일 본사 앞에서 관계자들이 홍석조 회장의 공개적인 사과와 합당한 보상 등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일요경제=김민선 기자] 지난해 12월에 발생한 CU 편의점 아르바이트 근로자 살해 사건이 일어난 지 5개월여가 지났지만 편의점을 운영하는 BGF 리테일과 편의점주가 알바생 죽음의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는 주장이 노동 관련 시민단체들에 의해 제기 됐다.

성급히 사건을 덮으려는 회사의 무성의한 태도에 성난 시민단체와 일선 국회의원들이 유가족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이를 사회적 문제로 공론화시키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지난 24일 경산CU편의점알바노동자살해사건해결및안전한일터만들기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와 알바노조, 노동건강연대 등 시민단체와 김종훈, 윤종오, 이정미 국회의원은 국회 의원회관 3간담회실에서 ‘성장하는 편의점 산업, 버려진 알바 노동자’ 토론회를 개최해 현장 증언을 토대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모색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편의점 근로자들은 편의점, 샌드위치 가게 등 프랜차이즈 가맹점의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24시간 운영체제의 편의점에서 일하는 야간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물류 이동 등 강도 높은 업무 탓에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심하면 생명의 위협까지도 감내해야 한다. 여성 알바 노동자가 만취한 손님으로부터 성희롱에 가까운 언행을 듣고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창고에 숨는 것뿐이었다. 

지난해 12월 13일 경북 경산시 진량읍의 한 CU 편의점에서 야간 근무를 하던 아르바이트 근로자가 새벽 시간 방문한 손님의 칼에 찔려 숨졌다. 숙취해소 음료를 사러 왔다가 직원이 봉투 값 20원을 요구하자 범행을 저지른 것.

현재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김광석 씨는 “경산 (CU) 편의점 야간 노동자의 죽음은 예견된 일이다. 또 앞으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이라며 “언론을 통해서도 심심찮게 편의점의 사건사고가 보도되는 등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우리 사회가 이를 외면한 결과”라고 말했다.

사고 직후부터 지금까지 알바노조는 BGF 리테일 측에 유가족과의 지속적인 연락 및 조속한 안전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으나 회사는 유족에게 처음 문자메시지 외에 다른 연락을 취하지 않고 있다. 또한 교섭권을 위임받은 대책위가 보낸 공문에 한 번도 응답하지 않았다.

◇편의점 “폭행, 취객 난동, 성희롱에도 무방비”

2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성장하는 편의점 산업, 버려진 알바노동자' 토론회에서 알바노조 신민주 조합원이 편의점 알바 노동자 실태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편의점 알바 노동자는 폭언과 폭행의 위험에 늘 노출돼 있다. 돈을 주고 사야하는 비닐 봉투, 종이컵을 공짜로 달라는 시비가 나중엔 심각한 폭행 상황으로 이어지고, 취객의 난동과 괴한 침입도 무시할 수 없는 위험 요소라는 게 편의점 근로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특히 여성 편의점 근로자가 겪는 수모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2015년 초 GS25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신민주 씨는 "야간에 일할 때는 만취한 손님의 난동으로 하루에 네 차례씩 경찰차가 출동했다"며 "술에 취해 울고 있거나 토를 한 손님 때문에 애를 먹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신 씨는 "한 번은 실수로 위급 상황 때 누르는 벨을 건드렸는데 경찰이 오지 않고 사설경비업체 직원들이 출동했었다"며 "당시 사설경비업체 작원들이 ‘우리가 보고 경찰이 올 상황인지 판단한다’고 말했다”며 “편의점 알바가 편하다고 하지만 알바하다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 느꼈던 두려움을 털어놨다.

◇노동자 건강을 해치는 야간 근무

김광석 씨는 최근 130원을 더 못 받아도 야간 근무를 그만 두는 편이 낫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그는 야간 시급 6600원을 받고 하루 10시간 씩 일했다. 법정 최저임금인 6470원에서 130원을 더 받는 수준이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편의점 근로자도 야간 수당을 적용해 평상 임금에 1.5배의 시급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5인 미만의 사업장이라면 다르다. 자영업자의 재량으로 야간수당을 100원, 200원에 쳐주는 실정이다. 과거 법원에 적절한 야간 수당을 책정하도록 하는 헌법소원도 제기됐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반려된 바 있다.

야간 근로자의 경우 식대도 제공되지 않았다. 현행법에 따르면 야간 근로자에 대한 식대 지급은 의무가 아니다. 10시간 일을 할 경우 두 끼 정도 식사를 해야 하나 야간 근로자의 경우 홀로 근무해 자리를 비울 수 없을뿐더러 야간에 영업하는 식당도 찾기 힘들다. 이렇다 보니 편의점 야근 근로자들의 상당수는 어쩔 수 없이 '폐기'(유통기한이 임박하거나 지난 식품)로 끼니를 떼우기 일쑤라고 한다.

김 씨는 이같은 상황이 편의점 가맹본부가 가맹점주를 착취하고 있는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점주 입장에선 두 명보다 한 명만 고용하는 편이 훨씬 비용절감에 유리하다”며 “대기업 가맹본부가 점주와의 가맹계약 시 24시간 영업을 하지 않을 경우 이익분배율에 차등을 둠으로써 야간영업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편의점 야간 근로자의 노동 강도는 주간 근무 때보다 높다. 주로 물량이 새벽 시간에 점포에 들어와 야간 근로자는 물이나 음료수 같은 물류를 무더기로 날라야 하고, 손님이 붐비지 않는 시간을 틈타 넓은 매장 청소도 해야 한다는 것.

김 씨는 "근로기준법 상 8시간 근로 후 1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쓸 수 있지만 이마저도 유명무실했다"며 "주로 야간 근무에 노동자 1명만 서게 돼 휴게시간을 가질 수 없다. 휴게실은커녕 의자도 배치되지 않은 곳에서 일을 한다"고 고충을 털어뇠다.

이어 "무엇보다 밤사이 격한 노동으로 신체리듬이 깨지고 결국 건강을 해치는 점이 가장 괴롭다"며 "야간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편의점 내 조명을 환하게 켜놓는 것도 힘들게 한다. 야간에 일하는 입장에서는 강한 조명은 낮의 태양과 같다. 매장이 너무 밝아 낮에는 잠을 잘 수 없는 장애를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야간 근로자의 건강이 나빠지면 결국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주간과 야간 노동 강도의 분배에 대해서 꼭 논의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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