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3세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양호 회장의 막내 딸 조현민 전무가 핵심 역할을 하는 두 항공 계열사간 중복노선 문제 등으로 '밥그릇 싸움'문제가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한진그룹은 ‘수익성 악화’보다는 검증된 기존 노선들에 대해 저비용항공사(LCC)인 진에어 진입을 허용하는 ‘일감 몰아주기’ 방식으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로 인해 한 기업의 신제품이 기존 주력제품의 시장을 잠식하는 ‘카니발리제이션’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대한항공 안팎으로부터 터져 나오고 있다. 

조양호 회장의 외아들 조원태 부사장은 대한항공의 화물과 여객수송 등 핵심부분을 맡고 있다. 반면, 진에어는 조현민 전무가 사내이사를 겸임하며 마케팅을 총괄한다. 

조현민 전무가 한진그룹 지배구조 정점인 정석기업 대표를 맡게 되면서 그룹 지주사 한진칼홀딩스 대표를 겸임하는 조원태 부사장과 후계구도 경쟁도 본격화 됐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지난해 5월 전후 원정출산 논란으로 사회적으로 거센 비난을 받았던 조양호 회장 첫째 자녀인 조현아 부사장은 현 시점에서 볼 때 두 동생에 비해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양상이다.  

◆ ‘카니발리제이션’될까, ‘윈-윈’될까

진에어는 대한항공과 별도로 저비용항공사(LCC)를 육성해야 한다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작품이다. 이러한 총수의 의중을 반영해 한진그룹은 진에어의 공격 경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진에어는 2008년 7월 첫 취항 이후 한동안 대한항공 노선과 겹치지 않게 상대적으로 저가 운임의 관광노선 위주로 운항해 왔다. 하지만 진에어는 대한항공 운항 노선 중 수요층이 검증된 인천~방콕, 인천~삿포로, 인천~홍콩, 인천~세부, 인천~괌 등에 잇달아 뛰어 들었다. 

진에어는 12월부터 저비용항공사(LCC) 최초로 중대형항공기를 도입해 운항한다. 모두 355석 규모의 중대형항공기를 다음 달 12일부터 인천∼괌 노선에 투입한다. 대한항공과 진에어는 동시에 인천~괌 노선에 취항하면서 각각 야간과 주간으로 나눠 항공편을 운항해 왔다. 하지만 진에어가 다음 달부터 이 노선에 야간편을 추가 운영하게 되면서 대한항공과 진에어는 시간대마저 겹치게 됐다. 

진에어는 오는 12월 22일부터 인천~코타키나발루 노선에 취항한다. 현재 이 노선은 대한항공이 주 2회 운항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진에어는 최근 국토교통부에 부산∼제주 노선 운항 허가를 신청했다. 현재 대한항공도 이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신규 노선까지도 진에어에 양보하고 있다. 인천~오키나와 노선은 아시아나항공이 독점하고 있었는데 2012년부터 대한항공을 대신해 진에어가 취항하고 있다. 

대한항공 안팎에선 기존 주력시장의 진에어 잠식으로 인해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조원태 부사장을 비롯한 대한항공 경영진이 진에어 장거리노선을 6개 이내로 제한하는 안건을 조양호 회장에게 보고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회사 내부에서 중복노선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는 방증이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홍보실 관계자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없다"면서도 "그룹 차원에서 진에어를 지원하는 것은 항공시장 전체 파이를 성장시키기 위한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두 항공사가 당분간 상호보완 관계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인천~괌 노선의 경우 대한항공과 진에어는 상호 차별화되고 보완하는 전략을 통해 ‘윈-윈'에성공한 케이스라는 설명이다. 2009년 이 노선에서 18만명이었던 탑승객 숫자가 5년 사이 두 배로 늘었고 탑승률도 80% 상회한다는 것. 

대한항공 노선을 잠식하는 사이 진에어는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진에어는 2009년 적자가 심화되며 한때 자본잠식상태에 빠졌으나 대한항공 자금 지원으로 회생한 후 2010년 1160억원 매출에 26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이후 4년 연속 흑자 경영을 이어오면서 올해도 매출 3600억 원 영업익 120억 원을 달성할 전망이다. 

반면 대한항공은 지난해 매출액 11조8504억원, 176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하면서 5년 만에 적자전환 했다. 진에어와 확연하게 대비되는 양상이다.  

대한항공이 중복노선 문제에도 진에어를 지원하는 양상은 경쟁사인 아시아나항공과 노선 경쟁 때와 전혀 다르다. 

아시아나가 장거리 노선 취항을 인정받은 1994년 이후부터 두 항공사간 싸움이 격해졌다. 상하이, 타이베이, 파리, 하와이 등 황금노선에서 두 항공사는 법정다툼도 불사했다.

타이베이 노선을 두고는 대한항공이, 상하이노선에 대해서는 아시아나항공이 각각 당국을 상대로 '운수권 배분 취소소송'을 걸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분 46%를 보유한 저비용항공사 에어부산과 중복노선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 에어부산은 아시아나 지원을 받으며 부산과 김해에서 취항하는 국제선 및 국내선 노선을 물려받는 방식을 통해 운영됐다. 현재 아시아나항공이 수도권 중심 제2 저가항공을 설립을 추진하고 있지만 답보상태라 당분간 중복노선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전망이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홍보실 관계자는 "대한항공은 프리미엄 서비스를 원하는 소비자, 진에어는 저가 요금을 원하는 소비자를 주된 마케팅 대상으로 하는 ‘투 트랙’ 전략을 적용하고 있다"며 "진에어는 그룹의 계열사다. 아시아나는 대한항공이 취항하는 노선에 유사한 요금전략을 펼쳐 진입했기 때문에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 조양호 총애(?) 조현민…정석기업 대표로

진에어가 약진하면서 조현민 전무가 오빠인 조원태 부사장과 본격적인 후계 경쟁구도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2월 조현민 전무는 정석기업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조 전무는 현재 아버지 조양호 회장, 원종승 대표와 함께 정석기업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정석기업은 한진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선 곳이다.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 조중훈 회장의 호를 따서 설립된 정석기업은 한진그룹 순환출자 고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한진 지분 19.41%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이를 통해 조양호 회장은 정석기업→㈜한진→대한항공→정석기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통해 그룹을 지배해 왔다.  

지난 2005년 한진그룹 창업주 차남인 조남호 한진중공업 부회장과 4남인 조정호 메리츠증권 부회장이 장남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상대로 소송을 벌인 대상도 바로 정석기업이었다. 

정석기업은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홀딩스가 48.28%를 보유하고 있다. 조 회장이 27.21%를 보유하면서 두 번째로 지분이 많다. 이러한 가운데 조현민 전무가 한진그룹에서 커다란 상징성을 가진 정석기업 대표가 됐다는 점에서 후계구도에 새로운 변수가 생긴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지난 해 말 조양호 회장 외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부사장이 지주사인 한진칼 대표를 겸직하면서 한진그룹 3세 후계구도 각본이 완성된 것으로 봐왔다. 

조원태 부사장이 아버지로부터 한진그룹을 승계하고 누나인 조현아 부사장이 호텔과 기내식, 동생인 조현민 전무가 진에어를 담당하는 구도로 굳어지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한진그룹은 지난해 8월 한진칼홀딩스를 중심으로 한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선언했다. 하지만 1년이 훨씬 넘은 현재까지도 큰 틀에서 정석기업→한진→한진칼·대한항공→정석기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고리는 그대로 형성돼 있다. 

한진그룹은 내년 7월말까지 순환출자 고리를 끊고 자회사 등에 대한 지주회사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제재와 함께 상당기간 지주사 체제 전환이 유보될 수도 있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한진그룹 지주사 체제 완성을 위해 한진칼과 정석기업이 합병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이럴 경우 두 회사에서 각각 대표를 맡고 있는 조원태, 조현민 남매에게 조양호 회장이 어떻게 후계구도를 완성하느냐가 관심사"라고 말했다.

조양호 회장 3남매는 각각 그룹 내 보유지분이 거의 유사하다. 한진칼의 경우 조원태, 조현아 부사장이 2.48%를 갖고 있고 조현민 전무는 이보다 단 0.1% 적은 2.47%를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조 회장 3남매는 온라인면세점인 싸이버스카이 지분을 33.3%씩 똑같이 나눠 갖고 있다. 조현민 전무는 이 회사 사내이사직도 겸임중이다. IT서비스업체인 유니컨버스는 조원태 부사장(35.04%)이 최대주주이자 대표를 겸직하고 있다. 조현아, 조현민 자매는 24.98%를 보유하고 있다. 

순환출자고리 해소와 관련해 대한항공 홍보실 관계자는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작업을 그룹차원에서 진행하고 있다"며 "기한 내 완료한다는 것이 그룹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3세 후계구도와 관련해서 이 관계자는 "조양호 회장(66세)이 아직 정정하고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어 3남매가 경영수업을 착실히 진행하고 있어 후계를 논하기는 이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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