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의 이익 소각 통해 오너 2세의 지분율 올려
전문 경영인 체제 선택한 한샘과 극명한 대비

손동창 퍼스시그룹 회장
손동창 퍼스시그룹 회장

 국내 사무용 가구업체 1위인 퍼스시 그룹의 오너 손동창(71) 회장이 임기를 2년 앞두고 스스로 사내이사직을 사임한 것을 두고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반면 오너 2세로의 '꼼수 승계' 의혹도 불거져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올해 3월 퍼시스 그룹의 오너 손 회장이 사내 이사직을 사임했다. 같은 달 23일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손 회장의 사임이 의결됐다고 퍼시스는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손 회장이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선 것으로 보고 있다. 임기가 2년 남은 손 회장이 스스로 경영권을 내려 놓은 것을 두고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퇴장'은 '꼼수 승계' 의혹을 받고 있다.

◇ 자수성가형 기업가

가구업계에 따르면 손 회장은 입지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손 회장은 1948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경기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일푼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갖은 고생을 한 끝에 1983년 한샘공업주식회사(현 퍼시스)를 설립했다. 1990년대 초 사무환경 개선 트렌드 호재를 맞아 승승장구를 이어갔고 2017년 기준 퍼시스그룹의 전체 매출은 6400억원에 달한다.

손 회장의 퍼시스 그룹은 ‘무(無)차입 경영 원칙’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투자업계에서도 무차입경영을 투자 매력으로 꼽을 정도였다.

한편 손 회장의 ‘대리점 우선’의 경영철학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퍼시스는 공식 인터넷 온라인 쇼핑몰을 고집하지 않고 230여개의 대리점을 뒀다. 가구업계 특성상 대량 납품이 이뤄지기에 대리점과 고객의 상담이 필요해 온라인몰을 두지 않는다는 이유다.

이렇듯 손 회장은 고졸 출신이라는 사회적 편견을 딛고 무일푼으로 시작해 퍼시스를 국내 사무용 가구업계 1위 회사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손 회장도 그룹의 경영권을 자녀들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꼼수 승계’ 논란을 피해갈 수 없었다.

◇ 퍼시스 그룹 지배의 두가지 축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손 회장은 경영일선에서는 물러났지만 지주사 퍼시스홀딩스의 지분 80.51%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또 퍼시스홀딩스는 퍼시스 지분 30.90%, 손 회장은 퍼시스 지분 16.73%를 가지고 있다. 손동창 회장 퍼시스홀딩스퍼시스로 이어지는 출자구조다.

한편 손 회장의 장남인 손태희 퍼시스 부사장은 일룸 지분 29.11%를 보유하고 있으며 장녀인 손희령씨는 일룸의 지분 9.6%를 가지고 있다. 일룸은 코스피 상장사인 시디즈의 지분 40.58%를 갖고 있다. 일룸은 손 부사장과 손희령씨가 가진 주식 이외의 모든 주식을 일룸의 자기주식(61.29%)의 형태로 가지고 있어 사실상 손 부사장이 일룸을 소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손태희 부사장 일룸시디즈 구조다.

◇ ‘일룸’으로의 지주사 전환과 경영권 승계 과정서 꼼수?

손 회장은 맨주먹으로 어렵게 회사를 성장시켰지만 반면 손 회장의 자녀들은 그 업적을 손쉽게 승계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15년 기준 퍼시스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은 시디즈(현 퍼시스홀딩스)였다. 최대주주는 80.51%의 지분을 보유한 손 회장이었다. 손 회장이 시디즈를 통해 일룸과 팀스, 퍼시스 등 계열사를 두고 있었다.

그러던 2015년 중 손 회장은 일룸 지분을 모두 처분한다. 반면 손 부사장과 손희령씨의 일룸 지분이 각각 15.77%와 5.20%로 증가한다. 손 회장이 자녀들에게 증여했다.

한편 2016년 돌연 시디즈는 일룸의 지분 45.84%를 이익 소각한다. 절반에 가까운 지분이 소각돼 당초 15.77%와 5.20%였던 손 부사장과 손희령씨의 지분율이 각각 29.11%와 9.60%로 늘어났다.

또 지난 2017년에는 시디즈가 팀스의 지분 전량(40.58%)을 또 다시 일룸에 매각한다. 또한 그 다음해에는 시디즈의 주력 사업인 의자 제조 및 유통부문을 325억원에 팀스로 넘겼다.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일룸이 퍼시스 그룹의 지배구조의 정점에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일룸의 대주주는 손태희 부사장이다. 장녀인 손희령씨도 9.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일룸은 법인이 스스로 보유하는 자기주식이 61.29%인 만큼 결국 오너 2세들 특히 손 부사장이 일룸을 통해 알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이익소각과 주식의 내부거래, 그리고 사업의 내부 양·수도 거래 등 길고 복잡한 과정을 통해 사실상 오너 2세가 매출 6000억원대의 그룹의 경영권을 승계했다는 점에서 꼼수 승계라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 경영 승계를 위한 빅픽쳐?

금융업계에서는 오너 2세로의 경영권 승계를 완성하기 위한 큰 그림에서 마지막 단계가 남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투자전문가들은 일룸이 시디즈를 통해 우회 상장할 가능성을 보고 있다. 일룸이 상장사인 시디즈와 지분스왑(주식 맞교환)을 통해 코스피로 우회 상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시디즈는 유통주식비율과 부채비율이 낮아 지분스왑을 거치면 별다른 제반작업 없이 우회 상장하기 수월한 구조라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또 일각에서는 이후 우회 상장한 일룸이 퍼시스그룹 지배의 또다른 축인 퍼시스홀딩스와 합병하거나 손 회장이 지분을 증여해 결국 오너 2세의 경영 승계를 마무리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 경영승계와 시세차익, 일석이조?

오너 2세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조직개편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일룸의 매출이 크게 뛰었다. 일룸의 매출은 지난 2014년 995억원 수준이었다. 손 회장이 2세들에게 지분을 넘겼던 2015년 일룸 매출은 131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2% 증가한다.

시디즈가 이익을 소각한 2016년에는 1555억원(18.3%), 지난해에는 1923억원(23.7%)으로 매출이 꾸준히 증가해왔다.

이를 두고 그룹 지배구조 조정으로 2세들은 경영권 승계 뿐만 아니라 주식 가치 변동에 따른 시세차익까지 챙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법조계에서는 손 회장 일가가 일룸 등의 계열사의 내부정보를 알고 있는 만큼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2세를 지원했다면 이는 손 회장의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 퍼시스 “조직 개편…각 법인별 책임경영 강화 목적”

이와 관련 퍼시스는 “사업 조직 개편 과정 중 경영승계 목적의 특별한 내용은 없다”며 “현재 퍼시스그룹은 각 법인별 대표이사 체제로 책임경영 강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지분의 이익 소각으로 오너 2세의 지분율이 올라간 것과 관련해 퍼시스 관계자는 “이익 소각에 따른 지분 가치의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분율’에 대한 질의에 ‘지분가치’로 답변해, 지분의 이익 소각 이후 오너 2세의 지분율이 크게 올라 사실상 그룹 지배의 정점에 올라선 것을 두고 제기된 '꼼수 승계' 논란에 대해서는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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