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지원단 "근본 원인 밝히면 여파를 감당 못해 은폐" 의혹
리콜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 안돼

리콜대상 BMW차량 집단소송을 진행중인 한국소비자협회 소송지원단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BMW 차량 화재 원인은 배출가스의 감소를 위해 주행중에도 바이패스 밸브를 열리게하는 위험한 전자제어장치(ECU) 세팅이 원인으로 지목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성지 대전보건대 교수가 취재진을 향해 결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리콜대상 BMW차량 집단소송을 진행중인 한국소비자협회 소송지원단이 2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BMW 차량 화재 원인은 배출가스의 감소를 위해 주행중에도 바이패스 밸브를 열리게하는 위험한 전자제어장치(ECU) 세팅이 원인으로 지목된다고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성지 대전보건대 교수가 취재진을 향해 결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차량의 연이은 주행 중 화재 사건과 관련 BMW의 은폐 의혹이 짙어지고 있는 가운데 화재의 원인에 대해 그간 BMW 측에서 줄곧 주장해 왔던 것과는 다른 분석이 나와 파장이 일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BMW측은 화재 원인을 배출가스 재순환장치(EGR)인 하드웨어의 결함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BMW 주장과는 달리 배출가스를 줄이기 위해 주행 중에도 바이패스 밸브가 열리도록 설계된 ECU(전자제어장치), 즉 소프트웨어 문제라는 주장이 나왔다.

리콜 대상 BMW 차량 집단소송을 진행 중인 한국소비자협회 소송지원단은 2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런 내용의 자체 실험 결과를 발표하고 정부 차원의 조사와 BMW의 해명을 요구했다.

소송지원단에 소속된 자동차 전문가들은 리콜 대상이 아닌 BMW 차량 2대와 리콜 대상인 BMW 차량 4대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소송지원단은 리콜 대상이 아닌 차량은 주행 중 바이패스 밸브가 닫혀있는 반면, 리콜 대상인 차량은 주행 중 바이패스 밸브가 열리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 같은 현상은 고속주행 시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는 탄력주행이나 시내 감속운전 시 지속적으로 발생했으며, 강화된 배기가스 규제인 유로6를 충족한 모델(2015∼2016년)에서 특히 많이 일어났다.

바이패스 밸브는 EGR(배기가스 재순환장치)을 통과한 배기가스를 쿨러를 거치지 않고 직접 엔진으로 보내는 우회로로, 냉각수 온도가 낮을 때 주로 사용한다.

소송지원단장을 맡은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원칙적으로 배기매니폴드(배기 다기관)로부터 최대 500∼600도의 배기가스가 유입되는 것을 막으려면 평상시엔 바이패스 밸브가 닫혀야 하는데, 리콜 대상 차량에서는 주행 중에도 열리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여러 전문가와 논의한 결과, 여기에서 나온 뜨거운 배기온도가 EGR과 쿨러 등에 손상을 주고 화재로 이어진다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말했다.

박성지 대전보건대 과학수사과 교수는 "바이패스 밸브는 ECU가 전환밸브를 동작하는 방식으로 제어가 이뤄진다"며 "결국 BMW가 주행 중 바이패스 밸브를 열 경우 화재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도 ECU를 이처럼 위험하게 세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BMW가 ECU를 무리하게 설계한 것은 배기가스를 저감하기 위해서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박 교수는 "바이패스 밸브를 주행 중 열면 탄력주행 거리가 증가하고 연소실의 온도유지 및 배기가스 온도가 높게 유지돼 산화질소가 저감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BMW는 지난 6일 독일 본사 책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내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EGR 쿨러의 냉각수 누수가 화재의 근본 원인이지만, 차량의 주행거리가 굉장히 길고, 장시간 주행했고, 바이패스 밸브가 열린 상태일 때에만 화재로 이어진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BMW 측은 소송지원단의 주장과 달리 바이패스 밸브가 특정 조건에서 열리는 것(오작동)을 복합적인 화재 원인의 하나로 지목했을 뿐 직접적인 문제라고는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서 소송지원단은 BMW가 앞서 주장한 특정조건에서 '바이패스가 열려 있는' 이유가 배기가스 저감을 목적으로 일부러 바이패스 밸브가 위험한 수준까지 열리도록 소프트웨어를 설계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즉, BMW 측이 바이패스가 열려 있는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고 이를 은폐해왔다는 것이다.

최웅철 국민대 자동차공학과 교수는 "BMW는 바이패스 밸브가 이렇게 작동할 때 화재로 이어질 것이란 생각을 미처 못했던 것 같다"며 "배기가스 저감을 위해 기술적인 부분을 임계치에 가깝게 올렸다가 국내에서 폭염 등의 영향으로 임계치를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BMW가 제조사로 바이패스 밸브의 문제점을 모를 리가 없다"며 "바이패스 밸브 작동법을 바꾸게 되면 배기가스 기준을 맞추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그 여파를 감당할 수 없어 제대로 밝히지 않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송지원단 전문가들은 BMW의 리콜이 근본적인 화재 원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바이패스 밸브 작동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EGR 모듈을 교체하고 파이프를 청소해도 나중에 또다시 침전물이 쌓이면 화재가 재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영석 선문대 스마트자동차 공학부 교수는 "BMW가 바이패스 밸브의 문제를 인정하고 바이패스 밸브가 아예 동작하지 않도록 작동 커넥터를 빼버려야 화재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집단소송 법률지원을 맡은 법무법인 해온의 구본승 변호사는 "지난 13일부터 집단소송 참가자 모집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1784명이 차량등록증을 접수했고, 그 중 1359명과 계약을 했다"고 밝혔다.

구 변호사는 "30일까지 개별 계약이 체결된 참가자를 원고로 해서 31일 1인당 15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1차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접수할 예정"이라며 "참가자가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2차 소송 참여단 모집을 9월 1일부터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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