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약속 미이행, 재무적 투자자 "투자지분 되사라" 통보
"상장 위한 주관사 최종보고서 안나와 FI 설득 중"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가 주도하는 재무적 투자자(FI)들이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을 상대로 ‘풋옵션’(지분을 되팔 권리)을 전격 행사했다. 1조원어치가 넘는 투자지분을 되사가라고 요구하고 나서면서 교보생명의 상장(IPO)을 둘러싼 갈등이 수면위로 불거졌다. 교보생명과 FI 간 대타협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경영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 IMM프라이빗에쿼티(PE), 베어링PEA, 싱가포르투자청(GIC) 등으로 구성된 교보생명 FI들은 풋옵션 행사를 의결하고 이를 신 회장에게 공식 통보했다.

어피너티가 주도하는 FI 컨소시엄은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과 캠코가 보유하던 교보생명 지분 24.01%를 1조2054억원에 사들이면서 2015년 말까지 상장(IPO)이 이뤄지지 않으면 신 회장 개인에게 지분을 되팔 수 있는 풋옵션을 받았다. 어피니티(9.05%), 베어링PE(5.23%), IMM PE(5.23%), 싱가포르 투자청(4.50%) 등이 우호적 투자자로 참여하면서 3년 이내(2015년9월) 상장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2012년 당시 신 회장은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24%가 다른 곳에 넘어가 경영권을 위협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2015년까지 교보생명을 상장시키지 못하면 직접 투자지분을 되사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FI들은 투자한 지 6년이 지났고 약속시한도 이미 3년이 지나면서 투자 원리금 상환 압박에 자금 회수를 위한 조처로, 지난달 교보생명의 이사회에서 상장 결의가 무산되자 최후 통첩의 성격으로 이같은 요구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FI들도 연기금 공제회 등 출자자(LP)들에 투자금을 돌려줘야 하는 입장에서 계속 끌려다니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신 회장은 FI의 풋옵션 행사로 교보생명 경영권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있다. 신 회장이 FI 지분을 되사려면 그가 보유한 지분(특수관계인 지분 포함 36.91%) 중 상당 부분을 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 회장의 지분율은 특수관계인을 합쳐 36.91%(6월말 기준)에 불과하다. 풋옵션을 행사할 경우 신 회장은 이 지분의 상당부분을 팔아 1조3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마련해야한다. 

한편 교보생명 기업가치는 2012년 평가된 5조2000억원에 비해 지금은 2조원 가량 웃도는 7조원 안팎의 수준으로 예상되고 있다.

교보생명은 올초 신지급여력제도(K-ICS·킥스)와 2021년부터 적용될 새 보험 국제회계기준(IFRS17)에 따라 적게는 2조원에서 많게는 5조원의 자본확충을 위한 상장이 절실하다.

이에 따라 지난 7월27일 이사회에서 상장과 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을 통한 자본확충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이어 8월 말 NH투자증권과 크레디트스위스(CS)를 대표주관사로 선정하는 등 상장 작업이 속도를 내는 듯 했다.

그러나 교보생명은 지난달 이사회에서 상장 결정을 "주식시장 분위기가 좋지 않은 데다 IFRS17의 불확실성이 아직 제거되지 않은 만큼 상장주관사 보고서가 나올 때 다시 이사회를 열어 안건을 다루자"며 또다시 미뤄졌다. 

교보생명은 이번 FI들의 풋옵션 행사 통보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며, FI들과 협의 후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는 계획이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풋옵션 행사까지 이뤄지면 양 측 모두 일정 부분의 손실을 감내해야 한다”며 "풋옵션을 공동으로 행사하면 담합행위(Act in consent)등 법적인 이슈가 있고, 상장을 고의적으로 회피했다는 걸 입증해야하는 만큼 풋옵션을 실질적으로 행사할지는 (재무적 투자자들과) 논의가 더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보생명의 상장(IPO)이 시장 상황에 따라 미뤄졌다고는 하지만, 시장이 평가하는 교보생명의 가치와 신 회장의 눈높이 간 간극이 적잖은 것도 기업공개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다.  

더욱이 기업공개 뒤 신 회장의 경영권이 흔들릴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재무적 투자자들의 구주 매출로만 기업공개를 할 경우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는 힘들다. 기업공개가 재무적 투자자들의 차익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될 경우 시장에서 흥행을 보장하기 힘들다. 

금융투자업계에선 교보생명이 상장시 주주들에게 메리트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내고 있다. 낮은 배당성향, 높은 고금리 계약에서 오는 금리 역마진에 대한 우려, RBC 비율 하락 우려 등을 불안 요소로 꼽는다. 

결국 재무적 투자자들의 차익 실현뿐 아니라 자본 확충 효과까지 얻으려면 신주 발행도 염두에 둬야 한다. 30%대 중후반에 불과한 신 회장의 현 지분율로는 신주 발행에 따른 지분율 희석 효과와 2대 주주 지분의 매각 향방 등이 거슬릴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 헤지펀드의 공격이나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수도 있다. 

교보증권 관계자는 "IFRS17 기준과 K-ICS·킥스 적용에 따라 상장 노력 중에 있다"며 "자본확충 규모나 시기에 대한 주관사들의 최종보고서가 나오지 않은 만큼 FI에게 기다려달라고 설득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 회장이 경영권을 위협받지 않으면서 재무적 투자자들의 불만해소나 주주 구성에 어떤 묘수를 찾아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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