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경제 최정우 편집인 겸 편집국장] 공인중개들의 분노가 꺾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공인중개사들의 모임인 한국공인중개사협회(한공협)가 정부를 향해 이구동성으로 “공인중개사 말살하는 정책을 반드시 저지하겠다”며 거리로 뛰쳐나온 것. 한공협은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와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중개인 없는 부동산 거래 시스템 구축에 반대한다”는 집회를 가졌다. 이에 앞서 지난달 29일에는 한공협 대전광역시지부 부동산시장종합대책위원회가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 내용의 핵심은 중개사없는 부동산거래시스템 구축 전면 철회, 공인중개사 생존권 위협 행위 즉각 중단 등이다. 한공협의 이같은 시위는 지난달 24일 시작됐다. 19일 현재 13번째다. 일종의 릴레이성 시위다.

공인중개사들이 시위를 벌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또 ‘공인중개사 없는 부동산 거래’라는 말은 어디에서 나온 것이 길래 중개사들이 이같이 반발하고 나선 것 일까. 진원지는 정부다. 지난 9월 기획재정부에서 내놓은 85쪽 분량의 ‘2021년 예산안’자료가 도화선이 됐다. 예산안 자료에 따르면 19개 분야 블록체인 활용 실증에 133억원을 투입한다고 명시돼 있다. 133억원을 ‘중개인 없는 부동산거래’ 등에 사용하겠단 것이다. 공인중개사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문구 때문이다. 공인중개사들에겐 민감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공인중개사가 없어도 부동산 거래가 가능하다’는 말로 해석되고도 남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밝힌 내용처럼 중개인 없는 부동산 거래는 가능할까. 단순하게 설명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부동산을 팔려는 매도자와 이를 사려는 매수자들이 직접 만나 거래하면 된다. 이른바 ‘직거래 방식’이다. 부동산 중개시 지불해야 할 중개수수료로 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중개인 없는 부동산 거래는 그리 쉽거나 간단하지 않다. 우선 부동산 소유자가 부동산을 내놓을 때 이를 사려는 사람을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다 설령 찾았다 해도 계약방법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주택, 토지 등 부동산을 매수하려는 자와 전·월세 등 세입자들을 만나는 일부터 매수자나 세입자들의 조건에 맞는 부동산을 찾는 일까지 중개사들의 역할이 크다. 알선이나 중개업무외에 부동산의 이용·개발, 권리분석 등도 이들의 업무 영역이다.

공인중개사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저 멀리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도 중개인이 존재했다. 당시 중개인은 집주름 또는 가쾌(家儈)로 불렸다. 이들은 가옥과 토지 매매, 주택임차 등의 중개업무를 보았다. 家儈에서 ‘儈’는 거간(居間)을 뜻한다.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사이에서 흥정을 붙인다는 의미다. 이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거간꾼’으로 불리기도 했다. 중개인 역할을 했다. 이후 생겨난 것이 복덕방(福德房)이다. 조선시대 말 정도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덕방은 생기복덕(生起福德)이라 해서 복을 중개해 복과 덕이 일어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현재 통용되고 있는 공인중개사란 정식명칭은 지난 1985년에 등장했다. 이 때 처음으로 시험을 치뤄 공인중개사가 배출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종전에 사용하던 중개인들의 단체인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전부협) 명칭도 현재의 한국공인중개사협회로 바뀌게 됐다. 한공협은 전문자격사들이 모여 만들어진 단체이다. 중개사가 되려면 부동산학 개론, 민법 외에 부동산 중개와 관련된 과목의 시험을 치뤄야 한다. 한때 과다 배출 문제가 불거지기도 했지만 부동산 중개업무는 엄연히 중개사들의 영역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다. 이렇게 지켜온 영역에 중개인없이 부동산을 거래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하니 이들의 반발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정부의 태도다. 중개인없는 부동산거래 운운했음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토교통부 국정감사장. 이날 국감장에서 국민의 힘 정동만 의원이 “공인중개사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중개사 없는 부동산 거래 시스템 구축을 발표해 중개사들이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질의했다. 답변에 나선 김현미 국토부 장관. 그는 “이 시스템은 부동산 거래할 때 주고 받는 토지 대장 등 종이 서류를 데이터로 연계해서 공유하겠다는 취지"라면서 ”중개사없는 부동산 거래문제에 대해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 장관의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중개사들의 분노는 쉽게 누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중개업계의 분위기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도 아우성이다. ‘한국판 뉴딜정책으로 ‘중개사 없이 부동산 거래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문재인대통령님 전 상서’라는 제목의 글에 19일 현재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의 뜻을 밝혔다. 지난 달 21일 청원이 시작됐다. 청원마감날짜는 오는 21일이다. 불과 하루남았다. 청와대 게시판은 30일 동안 추천 청원인이 20만명이 넘을 경우 청와대가 답하도록 돼 있다.

‘중개인 없는 부동산 거래’라는 문구로부터 촉발된 공인중개사들의 분노,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정부… 이제 청와대가 나서 나설 차례이다.

저작권자 © 일요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