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경제 민다예 기자] 올해 사망한 전국 택배노동자는 벌써 10명에 달한다.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가 권고하고, 대통령까지 지시했지만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를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지난 8일 CJ대한통운 택배기사로 일해온 40대 노동자가 배송 업무를 하다가 호흡곤란으로 숨졌다. 이어 12일 경북 칠곡 쿠팡 물류센터에서 분류작업을 하던 20대 일용직 노동자가 근무 뒤 사망했으며 지난 18일 한진택배 소속 30대 택배기사가 목숨을 잃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과로사"라고 밝혔다.

택배노동자 과로는 예견된 문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가 확산된 지난 2월 이후 택배 물동량은 줄곧 증가했다.

국토부 택배물동량 자료에 따르면 올해 1∼8월 물동량은 21억 6034만여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 2억 1500여개와 비교해 20% 증가했다. 특히 집단감염으로 확진자가 다시 늘면서 택배 이용이 폭증한 6월 물동량은 2억 9341만여개로 지난해와 비교해 약 36.3% 급증했다.

택배사 영업이익도 치솟았다. 빅3 택배사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을 보면, 전년동기대비 CJ대한통운은 21.3% 증가한 1420억 원, 한진택배는 34.7% 증가한 534억 원, 롯데글로벌로지스는 30% 증가한 130억 원이다.

택배업계 호황은 자연스레 택배노동자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졌고 노동시간이 늘면서 결국 과로사를 야기시켰다. 증가한 물량에 대한 인력충원은 없었기 때문이다. 택배기사는 법적으로 노동자가 아니라 건당 수수료를 받는 개인사업자다. 이 때문에 '주 52시간' 노동시간 규제가 없는 택배기사의 노동시간은 끝없이 늘어났다.

택배기사가 개인사업자라고 해서 자기 뜻대로 배달물량을 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택배기사는 택배사로부터 구역을 배정받고 당일배송 등 정해진 규정에 따라 업무를 수행한다. 이를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소속 대리점과 계약 연장이 쉽지 않다.

일은 많아졌지만 업무환경은 오히려 열악해졌다. 지난달 10일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택배과로사대책위)는 택배기사의 주 평균 노동시간이 71.3시간이라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법정근로시간 40시간은 물론 최대연장 시간 52시간도 훌쩍 넘어서는 수준이다. 토요일 근무시간도 평균 10시간이 넘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과로사 인정 기준은 '직전 3개월 주 60시간 이상 노동' 혹은 '직전 1개월 주 64시간 이상 노동'이다.

2016년 1명, 2017년 4명, 2018년 3명, 2019년 2명이었던 택배노동자 산업재해 사망자는 올해 10월 19일까지 현재 10명으로 늘었다.

견디다 못한 택배기사들은 지난달 17일 택배사와 정부에 추석 연휴 기간 '분류 작업'에 추가 인원을 투입해줄 것을 요구하며 파업을 선언했다. 다음날인 18일 정부와 택배사는 택배노동자가 일하는 서브터미널에 2067명의 분류작업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택배노동자들도 파업 선언을 일단 철회했다.

하지만 택배사와 정부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택배과로사대책위에 따르면, 분류작업에 추가 투입된 인력은 애초 발표의 20%도 되지 않는 362명에 그쳤다.

정부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말만 요란할 뿐 택배노동자 과로사에 대한 대책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무임금으로 이뤄지는 분류작업이 택배노동자의 장시간 노동을 야기하는 핵심으로 본다. 하지만 분류작업에 대한 인력투입 결단은 추석 명절 단발성에 그쳤다.

대책위는 재벌택배사와 정부에 진정성 있는 사과와 보상, 택배 노동자 과로사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택배사들은 사과나 보상은커녕 입장표면도 없이 기사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두고 대필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택배기사를 포함한 특수고용직 종사자는 산재보험 당연 적용 대상이지만 적용제외 신청을 할 경우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해당 신청서는 반드시 본인이 자필로 작성토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사업주가 보험료 부담 등을 이유로 사실상 적용 제외 신청을 강요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냈다.

고용노동부는 21일부터 3주간 긴급 현장 점검을 하기로 했다. 택배 노동자 사망사고가 일어난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 등의 택배가 모이는 주요 서브터미널과 대리점이 대상이다.

이번 조사가 현장의 정확한 실태를 파악해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택배노동자에게 과로사를 부르는 과중한 업무가 주어지진 않는지, 산재보험 적용 또는 제외 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철저히 파악해야 할 일이다. 또다시 택배노동자가 과로사로 목숨을 잃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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