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우 편집인 겸 편집국장]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진선미 국회의원이 한 말이다. 진 의원의 이같은 발언이 걷잡을 수 없는 형국으로 치닫고 있다. 더구나 진 의원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위원장이자 더불어 민주당 미래주거추진단 단장까지 맡고 있는 상황이어서 아파트 환상 발언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체 진 의원이 어떤 발언을 했기에 논란의 중심에 서 있을까. 얼마전 진 의원은 서울 동대문구 공공임대주택을 방문했다. 진 의원은 이 자리에서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면 임대주택에서도 주거의 질을 마련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이 같은 발언이후 언론사들이 수많은 기사를 쏟아냈고 기사 댓글엔 진 의원을 조롱하거나 비난하는 식의 표현이 난무했다. “서민들은 아파트 환상을 가지고 살면 안되느냐”는 말부터 “자기는 아파트에서 살면서 서민에겐 ‘너희는 아파트에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냐”, “본인이 들어가서 살아라”, “국민을 조롱하느냐” 등에 이르기까지 네티즌들의 항의성 글들이 도미노 식으로 퍼지고 있다.

심지어 진 의원을 지칭하는 ‘마리 진투아네트’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마리 진투아네트’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빗댄 표현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다. 백성들이 기근에 시달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게 하라”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 같은 말을 했는지의 진위여부는 설왕설래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이 말속에 ‘세상물정을 모르고 있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는 점이다.

진 의원의 아파트 환상 발언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급기야 정치권으로까지 비화됐다. 진 의원이 아파트 환상을 발언한 날로부터 며칠 뒤, 국민의힘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일동 명의의 성명서가 발표됐다. 성명서는 “더 좋고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국민의 염원을 환상으로 폄하하고 그 환상마저도 접으라는 문재인 정부의 인사들을 보며 국민은 실낱같은 희망마저 절망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호텔방 전셋집 부동산 정책에 ‘반응이 굉장히 좋다’는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과 실거주하지도 않은 세종시 공무원 특별공급 아파트로 두 배 이상의 시세차익을 거둔 국토교통부 윤성원 제1차관을 경질하고 막말과 위선적 행태로 국민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한 진선미 국회 국토위원장은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논란이 일자 진 의원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주거의 질을 고민하고 있고 질 좋은 임대주택을 살펴보면서 당장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취지였다”고 말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은 아니다. 후하게 평가 하자면 듣는 사람에 따라 덕담(德,談)으로 들릴 수도 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취지였다는 데 말이다. 그러나 덕담도 덕담 나름이다. 예를 들어 결혼 적령기를 놓치거나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언제 시집(장가) 갈거냐”라든가 “살을 빼면 더 예뻐진다”는 등의 말은 상대방에겐 실언이 될 수도 있다. 상대방을 염려해 듣기 좋으라고 한 말인데도 듣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처한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던지는 말이 상처가 될 수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란 사자성어가 있다. 맹자(孟子)의 ‘이루편(離婁編)’ 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한다는 뜻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리라는 말을 하기 전 한번쯤은 성이 날대로 나있는 부동산 민심을 헤아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저작권자 © 일요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