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8월 자본시장법 개정…특정 성별로 이사회 구성 불가
2조원 이상 147개 기업 중 101곳 여성 임원 0명

(사진-각 사)
(사진-각 사)

[일요경제 민다예 기자] 삼성 등 국내 4대 그룹을 비롯해 그간 남성 중심이던 대기업 이사회에 최근 '여성이사 모시기'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내년 8월부터 특정 성별로만 이사회를 구성해서는 안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올해부터 서둘러 여성 이사를 선임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8일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기준으로 자산 2조원 이상 147개(2019년 결산 기준) 기업의 등기임원(사내·사외이사) 가운데 여성 이사의 비중은 5.1%로 집계됐다. 전체 1086명의 등기임원중 여성 이사가 55명에 그친 것이다.

이들 기업중 여성 이사가 1명 이상인 기업은 46개로 전체의 31.3%였으며, 68.7%에 달하는 101개 기업은 여성 이사가 한 명도 없었다.

이 가운데 내년 8월부터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법인은 이사회 전원을 특정 성(性)의 이사로 구성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담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기업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여성 이사가 1명도 없는 100여개 기업들은 올해 또는 내년 3월 주주총회까지 여성 이사를 새로 선임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실제 올해 주총을 앞두고 기업들의 여성 이사 선임이 줄을 잇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등 현대차그룹 주요 상장 계열사들이 처음으로 올해 주총에서 여성 이사 선임안을 결의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현대차그룹 내에서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한 곳은 금융 계열사인 현대캐피탈과 비교적 규모가 작은 현대트랜시스 정도였다. 이번 선임으로 기아와 현대모비스 등 주력 계열사에도 여성 사외이사들이 포진하게 됐다.

LG그룹도 지주사인 ㈜LG를 비롯해 LG전자, LG유플러스, LG하우시스 등 5개 상장 계열사가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한다.

LG그룹은 내년에는 LG화학, LG생활건강,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자산 2조원 이상 LG 상장사들이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화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한화그룹 계열 역시 여성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한 주총 안건을 공개했다. 포스코도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에 이명박 정부 시절 유영숙 환경부 장관을, 현대건설기계는 박순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를 각각 사외이사로 선임한다. 

이미 여성 이사가 있는 기업들은 기존 인사들을 연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당장 삼성전자는 여성 사외이사 가운데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되는 김선욱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오는 주총에서 재선임할 예정이다.

올해 2명의 사외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SK㈜는 이번주 이사회를 열고 주총 안건을 결의할 예정이다. SK하이닉스, SK이노베이션 등은 여성을 포함한 기존 이사들을 올해 주총에서 재선임할 예정이며, 이 외 다른 SK계열사들도 여성 사외이사 선임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SK하이닉스는 한애라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난해 3월 사외이사로 영입한 바 있다.

CEO스코어 박주근 대표는 "아무래도 현재 기업 사내이사를 여성이 맡는 경우가 드물다보니 개정법 시행 전까지 상당수 기업이 사외이사를 통해 성비를 맞출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5.1%인 여성 등기임원 비중이 올해까지 10% 선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일찌감치 여성이사를 두고 있는 기업들 역시 사외이사를 재선임(6년)까지만 가능하게 한 현행법 때문에 끊임없이 또 다른 새 인물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그간 남성 중심으로 구성됐던 대다수의 대기업 이사회가 한꺼번에 여성 사외이사를 영입하려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며 "내년 법 시행을 앞두고 여성 인력 확보 경쟁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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