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주도' 내세운 2·4 대책 법안 처리 지연
변창흠 장관 사의 표명...3기 신도시 추진도 ‘난감’
업계 "민간 재개발·재건축 추진을 활성화해야"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일요경제 이현주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 땅 투기 의혹 사건으로 정부가 추진 중인 주택공급대책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연일 주택 공급대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에서 부동산 공급 대책이 동력을 상실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16일 건설부동산업계에 따르면 2·4 대책 중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과 ‘공공기관 직접시행 정비사업’, ‘주거재생 혁신지구 사업’ 등을 추진하기 위한 후속 입법 작업에 차질을 빚고 있다.

당정은 당초 3월 중에 후속 법안을 통과시키고 시행령 개정 등 준비를 거쳐 6월 전에는 시행한다는 방침이었다. 하지만 해당 법안들은 지난 1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상정도 되지 못했다. 현재 남아 있는 국토위 일정을 고려하면 이달 중 법안 상정조차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본격적인 입법 추진이 공직자 신도시 투기 의혹 사건 결과가 발표되고 LH의 조직 개편 및 재발 방지 대책이 마련되고 나서야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2·4 대책의 핵심은 공공기관의 주도로 도시계획 규제를 풀어주는 등 인센티브를 제공해 주택공급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번 LH투기 의혹사태로 인해 공공에 대한 국민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져 공공이 주도하는 개발 방식을 설득할 명분이 적어졌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LH 사태의 책임을 지고 2·4대책의 후속 입법 기초작업까지만 수행하고 물러나기로 하면서 사업 진행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 장담하기도 어렵다. 주택·도시 전문가로 불리며 이번 대책을 진두지휘해온 변 장관이 없는 상황에서 전국에 83만 6000가구 공급을 골자로 한 대규모 공급대책은 근간부터 흔들릴 수 있다. 

여기에 실무작업을 지휘해야 할 LH 수장 자리 공백까지 현실화되면서 정책 동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현재 LH 사장자리는 변 장관의 국토부 장관 지명 이후 석 달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공석이다.

국토부가 LH 사장 후보자에 대해 재추천을 요구하겠다고 밝히면서 기존에 진행하던 인선 작업도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LH 투기 의혹이 국가적인 논란으로 커져 사장 추천을 신중히 해야 하는 만큼 공백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2·4 대책의 한 축인 3기 신도시 조성 사업 역시 차질이 불가피하다. 3신도시 개발 기초 작업인 토지 보상이 삐걱거리면서 주택공급 일정 역시 늦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2·4 대책에 포함된 광명·시흥 3기 신도시에서는 LH 직원들의 투기로 인해 백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실제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12일 만 18세 이상 500명에게 조사한 결과 '광명 시흥의 3기 신도시 추가 지정을 철회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응답은 57.9%로 집계됐다.

하지만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지만 정부는 여전히 주택 공급대책을 흔들림 없이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LH 투기 의혹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한 국토교통부 변창흠 장관에게 사실상 사의를 수용하면서도, "2·4 대책의 차질 없는 추진이 매우 중요하다"며 관련 기초 작업을 마쳐달라고 주문했다.

전날 정세균 국무총리도 정부 합동조사단의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 당초 계획했던 공공주택 공급은 차질 없이 이행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LH투기 파문 확산으로 공공 분야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 변함없이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공 분야의 도덕성과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면서 정부의 부동산정책 전반에 대한 불신이 확대되고 있다"면서 "공급정책을 계속 밀어부치기에는 임기 말 문재인 정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2·4 대책과 3기 신도시가 삐걱거려 일정이 늦춰지면 집값 폭등이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2·4대책과 3기 신도시 등 공급계획이 차질을 빚게 되면 서울의 매수 수요가 몰려 서울의 집값 상승을 유도할 수 있다”고 전했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현재는 관망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공급정책이 일부 취소되거나 일정이 미루어진다면 매수세로 유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공공부문이 주도하는 공급대책 방향을 전면 수정해 민간 재개발·재건축 추진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건설부동산업계 관계자는 “LH 투기 의혹 파문이 확산되면서 정부의 주택공급 대책은 명분을 잃어 좌초할 가능성이 크다”라면서 “정부는 공공부문만 고집할 게 아니라 민간 분야의 재개발·재건축 추진에 대해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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