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경제 민다예 기자]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분쟁 협상이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글로벌 배터리 시장에서 'K-배터리'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최근 글로벌 완성자동차 업체들이 앞다퉈 전기차 '배터리 독립'을 선언하고 있다. 자체 개발 배터리를 활용해 전기차 생산 비용을 낮춰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폭스바겐은 물론 테슬라·GM·토요타까지 자체 배터리 개발에 뛰어들었다.

독일 폭스바겐 그룹은 2023년부터 각형배터리를 적용해 2030년 생산 전기차 80%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내친김에 배터리 독자개발도 선언했다.

파우치형 배터리를 주로 생산하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직격탄을 맞았다. 폭스바겐이 기존 파우치형 배터리를 각형 통합 배터리로 전환하고 장기적으로는 전고체 배터리로 전환을 목표로 둔 만큼 한국 기업의 공급량을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LG·SK가 배터리 생산공정을 각형 배터리 양산체제로 바꾸기는 어렵다.

LG와 SK가 다투는 사이 자칫 완성차들의 배터리 자체 생산으로 K배터리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어제의 고객이 내일의 경쟁자로 돌변하면서 배터리에 쏟아부은 수조 원의 투자비용을 회수하기도 전에 완성차 업체가 기술력을 따라잡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반면 각형 배터리가 주력품인 중국 CATL은 최대 수혜자가 될 전망이다. 폭스바겐의 중장기적 로드맵은 K-배터리 물량을 줄이고 중국과 자체 개발물량을 늘리겠다는 의도다.

에너지전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월 세계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은 CATL(31.1%)이 세계 1위다. 이어 LG에너지솔루션(18.5%)은 2위, SK이노베이션(3.9%)은 7위다. 앞으로 이 격차는 점차 벌어질 수 있다.

글로벌 완성차업계에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에 대한 반감이 형성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과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폭스바겐에 배터리 공급을 2년밖에 하지 못하게 됐다.

폭스바겐도 그렇지만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끝날 기미도 없이 분쟁을 벌이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폭스바겐 후폭풍으로 지난주 LG화학 등 K배터리 3사 시가총액은 약 12조원이 빠졌다.

더 안타까운 건 영업비밀·특허침해 소송전을 벌이는 LG와 SK의 다툼이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폭스바겐이 K배터리에 등 돌린 것도 알고 보면 양사 간 다툼이 큰 원인이다. 이러다 자칫 중국과 유럽 시장만 좋은 일 시키는 꼴이 될 수 있다.

K배터리는 먼저 시장을 선도하는 기술 개발 및 투자로 보다 확고한 지위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우선적으로 시간·비용 소모가 큰 법적 다툼을 매듭짓고, 공동 연구개발(R&D) 등으로 미래 배터리 산업 변화에 대한 대응이 시급하다.

결국 'LG-SK 소송' 해결이 K배터리의 불확실성을 걷어내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집안싸움에 날 새는 줄 모르다가는 큰 그림을 놓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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