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경제 민다예 기자] 최근 국내외 기업을 중심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전세계 굴지의 기업들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겠다"며 앞다퉈 친환경 전략을 발표하고 나섰다. 이런 움직임은 미 바이든 대통령을 중심으로 세계 주요국 정부가 ‘친환경’을 정책 기조로 내세우면서 가속도가 붙고 있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순배출(배출량-흡수량)을 '0'으로 하겠다는 목표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전략이 바로 신에너지 활성화다. 태양광, 풍력, 수력, 바이오에너지 등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하면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에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세’ ‘탄소국경세’,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만큼 비용을 지불하도록 규정하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등도 등장했다.

미국, 유럽연합(EU), 일본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상태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10월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한 바 있다. SK 주요 계열사와 LG화학, LG에너지솔루션, 아모레퍼시픽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2050년 100% 재생에너지 사용을 약속하는 ‘RE100’을 선언하기도 했다.

산업부문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민관협력의 컨트롤타워인 '탄소중립 산업전환 추진위원회'도 지난 16일 출범했다. 

산업부문은 2018년 기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7억2700만t의 35.8%(2억6100만t)를 차지하는 다(多) 배출 2위 업종이다.

특히 철강,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 등 4대 업종이 산업부문 배출량의 75.8%(1억9800만t)를 차지한다. 산업부문의 탄소중립 없이는 국가 전체적인 탄소중립 달성이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에게 '2050 탄소중립' 추진은 위기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야 할 길이라는 것은 알지만 비용 부담과 감축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는 점을 우려하는 상황이다.

1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에 참여 중인 기업 684곳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403곳) 중 57.3%가 2050 탄소중립을 ‘어렵지만 가야 할 길’로 평가했다. 이에 비해 ‘현실적으로 탄소중립은 어렵다’는 기업도 42.7%나 됐다.

기업 현장에서는 응답 기업 4곳 중 3곳 가량이 탄소중립을 위기 요인으로 보고 있었다. ‘경쟁력 약화 위기’(59.3%) 또는 ‘업종 존속 위기’(14.9%)라고 응답한 기업이 74.2%를 차지했다.

기업들을 대응에 나서게 한 주된 요인은 ‘규제’다. 현재의 규제 또는 규제가 강화될 것을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 60.7%를 차지했다. 반면 기후위기 대응 동참(2.9%) 등 자발적 이유로 대응한다는 기업은 매우 적었다.

기업들은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다양한 연구개발(R&D) 과제가 필요하며, 정책과제로는 감축투자(36.7%)·탈탄소 혁신기술 개발(31.0%) 부문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말 문재인 대통령이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선언한 이후 중앙정부는 물론 지자체, 공기업 등을 중심으로 ‘탄소중립’ 바람은 거의 광풍 수준이다. 정부는 이에 따른 정책 목표 및 전략을 짜내느라 여념이 없고, 기업들 역시 정부입맛에 맞는 사업 및 투자 계획을 쏟아내느라 정신이 없다.

하지만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추진전략은 아직 산업계에게 너무 가파르고 급진적인 모습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탄소중립’을 당장 그만두자는 얘기가 아니다. '탄소중립'을 왜 해야만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며 규제를 피하기 위한 속도를 낼 것이 아니라 무엇을 위해 그 목표를 향해가야 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탄소중립,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적이 먼저다.

저작권자 © 일요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