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경제 민다예 기자] "외부에서 볼 때만 좋아 보이는 겉과 속이 다른 빛 좋은 개살구..."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올라온 한 IT 회사 직원의 평가다. 블라인드는 익명성 덕분에 직장인들이 회사 비판을 하는 용도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또 다른 직원은 "대외적 이미지는 자유롭고 수평적인 조직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독재군부"라고 지적했다.

고액 연봉과 높은 복지 수준으로 젊은 세대 사이에서 ‘신의 직장’ 으로 불리는 IT업계가 조직문화를 두고 연일 안팎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기업 문화를 강조해온 이들의 어두운 이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 네이버·카카오·넥슨 등이 잇따른 사건·사고로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IT 기업들이 단기간 고속 성장 한데 반해 조직 관리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네이버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 등 업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메모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데 이어 최근 카카오가 주 52시간 이상 근무와 임산부에 시간 외 근무 지시 등 근로기준법을 무더기로 위반해 적발된 사실이 드러났다. 올 초 인사평가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카카오는 최근 고성과자에게만 고급 호텔 숙박권을 지급하는 선별복지를 추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빚어졌다.

게임업계 맏형 격인 넥슨도 노사 갈등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넥슨은 기존 프로젝트가 사라져 업무 재배치를 기다리는 직원들 임금 25%를 삭감하고 3개월의 대기발령 조치를 내리면서 노조가 반발하고 있다.

IT업계의 노동 문제가 어제오늘 갑자기 생겨난 일은 아니다. 업계 안팎에서는 그동안 곪아 왔던게 터진게 아니냐는 분위기다. 내부에서는 더 이상 IT기업 특유의 수평적이고 유연한 조직 문화는 찾아볼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함께 성장하자"며 끝없는 성과를 압박하면서 정작 인사 평가 기준이나 시스템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로 꼽힌다.

겉으로 보기에는 파격적으로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갖고 있는 듯하다. 국내 대표 IT 기업답게 창사 초기부터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조직 문화를 추구했다. 부장·과장 등 기존의 회사 직급 체계를 없애고 임원급 외에는 직원끼리 ‘님’으로 부르도록 한 것이 단적인 예다.

업계 특성상 수평적 조직문화를 강조하기 때문에 다수의 의견이 반영될 것 같지만 여전히 소수의 경영진이 의사결정 권한을 독점하고 있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소수가 권한을 독점하니 자연히 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내부 경쟁을 하게 된다. 내부 경쟁을 통해 성과를 내려고 하다 보니 직원들을 쥐어짜게 되고, 공정하고 객관적인 평가가 아닌 충성하는 직원끼리 뭉치는 '끼리끼리' 문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IT 기업들은 기존 대기업과 달리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갖고 있다. 때문에 내부 문제가 여과 없이 대외로 공개되고 있기도 하다. IT 기업들은 기존 대기업에 비해 MZ세대 직원의 비율이 높은 편이다. 이런 젊은 직원들은 과거 기성세대와 비교해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불합리한 회사 내부의 문제에 더 큰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전통적인 제조업들과 비교해 내부 문제가 더 도드라져 보이는 측면 역시 있다는 것이다.

기존 제조업과 달리 창의성과 혁신성을 강조하며 디지털 시대의 흐름에 따라 외형적으로 몸집을 키워온 IT업계는 제대로 된 내부 시스템을 갖추기 전에 조직규모가 비대해졌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IT 공룡들은 이제 외형 성장에만 초점을 맞출게 아니라 기업 문화를 다져야 할 때다. 겉보기에만 수평적인 모양새가 아닌 자유롭고 유연한 구조가 자리 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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