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난 소액주주 "기업가치 훼손 안돼"
주주 반발·대선후보들 규제 뜻에 상장 연기

지난달 27일 한국거래소 서울사옥 로비에서 열린 '㈜LG에너지솔루션 유가증권시장 신규상장 기념식'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7일 한국거래소 서울사옥 로비에서 열린 '㈜LG에너지솔루션 유가증권시장 신규상장 기념식' (사진-연합뉴스) 

[일요경제 민다예 기자] 최근 주요 기업들이 핵심 사업부를 분할, 자회사로 쪼갠 뒤 상장하는 '물적 분할 후 재상장'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쪼개기 상장’으로 자회사 상장 후 모회사의 지분 가치가 희석돼 주주들의 피해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론이 들끓자 기업들은 물적분할 계획을 재검토하거나 자회사 상장 절차를 늦추는 등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CJ ENM은 "제2스튜디오 설립은 추진 중"이나 "주주들의 물적분할에 대한 우려가 크고, 시장 규제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에 제2스튜디오 설립방식에 대해서는 수정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CJ ENM은 지난해 11월 글로벌 콘텐츠 제작 역량 강화를 위한 효율적 멀티 스튜디오 시스템 구축 및 글로벌향 K-콘텐츠 제작 확대 및 지식재산권(IP) 유통 등 수익사업 극대화를 목표로 물적 분할을 통한 신설법인 설립을 추진한다고 공시했다.

분할 대상 사업부분은 CJ ENM 내 예능·드라마·영화·애니메이션 사업 등의 주요 제작부분이다. CJ ENM가 영위하고 있는 커머스·미디어·영화·음악 등 사업 부분에서 제작 기능 사업부만 떼내 새로 '제2의 스튜디오드래곤'을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그러나 유력 사업부를 자회사 분할할때 발생하는 '모회사 디스카운트'를 우려한 주주 반발이 커지자 제2스튜디오 설립 방식에 추가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정치권의 규제 움직임도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기업들의 알짜 사업부분 물적 분할로 모기업 디스카운트가 이어지자, 소액주주 보호를 위해 대선후보들과 정치권에서 물적 분할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슈가 커지면서 금융당국도 물적분할 관련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밝혔다.

정은보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켄싱턴 호텔에서 열린 '기관전용 사모펀드 운용사 최고경영자(CEO) 간담회' 종료 후 물적분할 관련 입장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소액 투자자 보호 문제는 자본시장법뿐 아니라 상법도 개정될 수 있어 금융위원회, 관련 부처와 소통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기업공개(IPO) 시 수요예측에서 기관투자가 역할 설정 관련해서도 금융위와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기업들이 물적분할을 통해기업의 핵심사업을 떼어내 자회사를 상장시키면서 기존주주들의 불만이 쌓여왔다. 핵심사업을 분할해 상장하면 모기업의 주가 하락은 불 보듯 뻔한 수순이기 때문에서다.

앞서 LG화학 역시 배터리 사업부를 물적 분할해 LG에너지솔루션을 상장한다고 발표한 이후 LG화학 주주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카카오와 SK그룹도 ‘쪼개기 상장’에 대한 시장 반발이 확산되자 기업공개(IPO) 재검토에 나섰다.

실제로 카카오가 지난해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를 각각 분할시켜 상장한 뒤 주가가 1년 새 반 토막이 났다. SK케미칼도 핵심 자회사인 SK바이오사이언스의 물적 분할 및 상장 이후 1년새 주가가 50% 넘게 떨어졌다.

문제가 커지자 당초 올해 상장이 유력했던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자회사인 SK온의 상장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28일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을 통해 SK온 기업공개(IPO)에 대해선 현재 전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SK온은 지난해 10월 1일부로 물적분할해 출범했는데, 이같은 분할 의사결정은 특정 시점의 IPO를 염두에 두고 한 것이 아니며, 현 시점에서 IPO는 전혀 검토 되지 않고 있다는 점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SK온의 성장성과 수익 개선 속도에 따라 서두르지 않고 신중하게 결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자회사 상장과 지주사 디스카운트 논란 등으로 인해 정부·정치권에서 제도 개선 논의가 이뤄지는 데 대해선 “다양한 의견이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그런 의견들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제도화될지 예측이 어렵다”고 전했다.

카카오모빌리티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상장 계획 역시 안갯속에 빠졌다. 카카오의 컨트롤타워인 공동체얼라인먼트센터(CAC)는 직접 나서 "올해 예정했던 카카오모빌리티·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의 상장을 전면 재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만 카카오는 자회사의 '쪼개기' 상장 논란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일축했다.

배재현 카카오 수석부사장은 지난 11일 진행된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카카오는 잘되는 사업을 나중에 분사한 것이 아니라 사업초기에 별도법인을 설립하거나 인수해 현재 수준으로 성장시켰다"며 "이런 카카오 공동체의 성장과 동반해 카카오 주주가치가 증대됐기 때문에 최근의 쪼개기 상장 이슈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밝혔다.

배 부사장은 또 "카카오는 메신저로 시작해서 모바일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과정중에 다양한 영역에서 신규사업 시작하거나 인수했다"며 "카카오 공동체 중 일부 상장한 뱅크와 페이, 모빌리티는 매출이 없던 신규 설립해서 사업을 키워냈고 게임즈와 엔터는 인수한 기업을 성장시킨 사례"라고 설명했다.

배 부사장은 이와함께 "현재 카카오 본사는 톡비즈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수익 증가하고 있고, 안정적인 수익 창출되고 있는 만큼 본사에서 잘 운영하고 있는 주요사업 물적분할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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