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10년간 40여개 노선 반납 조건
조 회장 “글로벌 항공업계 리더로 거듭날 것”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한진그룹)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사진-한진그룹)

[일요경제 민다예 기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의 ‘조건부 승인’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글로벌 항공업계 리더로 거듭나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조 회장은 2일 사내 게시판에 올린 '대한항공 53주년 창립기념사'에서 "대한항공은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고사할 위기에서 아시아나항공을 새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결단을 내렸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조 회장은 "지난주 공정거래위원회는 우리 회사와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을 조건부로 승인했다"며 "국내 최초로 이뤄진 항공사간 기업결합심사라 예상보다 다소 시일이 소요됐지만, 이제 결과를 수용하고 해외 경쟁당국의 기업결합심사에 최선을 다 할 때"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 회장은 "이제 우리의 과제는 성공적으로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해 글로벌 항공업계의 품격 있는 리더로 거듭나는 것"이라면서 "물론 남은 과제가 쉽지 않지만 지금까지 해 온 것과 같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힘과 지혜를 모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달 22일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M&A를 조건부 승인했다. 이번 M&A로 인해 독과점이 발생하는 노선의 슬롯(slot·공항 이착륙 시간)이나 운수권을 타사에 넘기라는 것 등이 조건이다. 10년간 국제선 26개 노선, 국내선 14개 노선 등이 해당된다.

공정위 측은 "통합 항공사를 견제할 마땅한 경쟁사가 없다는 점, 양사 통합으로 인해 서로 가장 강력한 경쟁사가 사라져 운임 인상 가능성이 높다는 점 등을 이유로 시정 조치를 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M&A가 최종 마무리되려면 미국, EU, 중국, 일본, 영국, 호주 등 6개국 경쟁당국의 승인까지 받아야 한다. 국내외 공항을 이용하는 항공업의 특성상 어느 한 경쟁당국이라도 불허 결정을 내리면 M&A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이 있다.

양사 간 M&A에 대해 경쟁당국의 심사가 필요한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총 14개국이고 이 가운데 싱가포르, 베트남, 대만, 터키,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등 7개국이 우리나라보다 앞서 승인 취지로 심사를 마쳤다.

남은 해외 경쟁당국들이 결정을 내릴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조성욱 공정위 위원장은 "향후 동일한 노선에 대해 공정위와 조치와 일부 상이한 외국 경쟁당국의 조치가 있을 수 있다"며 "외국 경쟁당국의 심사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한편 추후 전원회의를 다시 개최해 의결을 통해 외국의 심사결과를 반영한 시정조치 내용을 최종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약 40여개 주요 노선 반납이라는 공정위의 방침을 고민 끝에 수용했다. 아시아나항공을 품고 덩치를 키워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던 꿈은 운수권과 슬롯 제한으로 어려워 질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역사상 최악의 위기 속에서도 대한항공이 매출 8조 7534억원, 영업이익 1조 4644억원의 성과를 거둔 것에 대해 임직원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러나 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만큼 들뜬 마음을 다시 차분히 가라앉히고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대비해야 생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회장은 "여객 수요를 유치해 정상화의 길로 들어서야 하는 우리는 언택트라는 보이지 않는 상대와 경쟁해야 한다"며 "급격히 변화하는 비즈니스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운 정보에 관심을 기울이고, 고객들의 요구를 기민하게 파악하고 변화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와 함께 조 회장은 "우리가 늘 해왔던, 지금도 게을리 하지 않는 안전을 위한 기본에도 충실해야 한다"며 "고객들의 한층 높아진 안전과 방역에 대한 기대도 충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 2019년 대한항공이 창립 50주년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대한항공이 청년처럼 늘 꿈꾸는 기업, 꿈을 위해 묵묵히 나아가는 기업, 늘 새로운 기업이 되길 소망한다고 말한 바 있다”며 “그 소망과 함께 꿈꾸며 나아가자는 초대장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이어 “처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함에 잠식당하지 말자”며 “상황이 저절로 나아질 것이라는 안일한 마음도 버리자”고 독려했다. 그는 “다시 비상할 대한항공을 위해 2022년은 우리 모두의 의지를 재점화하는 한 해로 만들자”고 강조했다.

노선 반납 ‘경쟁력 약화' vs'영향 미미’ 

공정위가 두 항공사의 기업결합 승인을 위해 내건 조건을 두고 업계에서는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합병으로 대한항공이 받을 불이익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과 공정위 조건이 통합항공사 시너지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강성진 KB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공정위가 제시한 합병 조건이 대한항공에 미칠 부정적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강 연구원은 "국내 경쟁사가 운수권과 슬롯을 가져갈 가능성은 낮다"며 "국내 경쟁사인 저비용항공사(LCC) 항공기 중 장거리 노선에 취항할 수 있는 항공기는 극히 제한적이거나 아예 없다"고 설명했다.

해외 항공사가 운수권과 슬롯을 가져갈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분석이다.

방민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 역시 “네트워크 강화와 규모의 경제 실현이라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시너지를 일부 훼손할 수 있는 내용처럼 보이지만 실효성은 제한적 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통합항공사가 시너지를 창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건으로 효과가 약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나민식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대한항공은 점유율이 높았던 노선을 타 항공사에 배분하는 만큼 인수·합병(M&A) 시너지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수익성이 높은 노선을 경쟁사에 반납하면 가격결정권이 약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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