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경제 민다예 기자]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갑자기 재계 ‘투자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달 국내 유수 대기업들은 약속한 듯 5년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대규모 투자와 고용 창출 소식에 고무된 분위기지만 실제 실행 여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 SK, 현대차, LG, 롯데 등 국내 10대 그룹이 발표한 투자 계획 총액은 1055조6000억원에 이른다. 국내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한 금액만 따로 추리면 928조원으로 집계됐다. 이들이 직접 고용하겠다고 명시한 인원은 38만7000여 명이다. 윤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투자·일자리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10대 그룹은 일제히 ‘통 큰 투자’를 약속했다. 특히 이틀 사이에 대규모 투자를 쏟아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투자계획에서 규모만큼이나 눈에 띄는 점은 국내 투자 비중이 단연 높다는 점이다. 실제 이번 주요 그룹이 밝힌 국내 투자 규모는 전체 투자액의 80%를 넘는다. 이와 함께 38만여명 이상 일자리 창출 계획을 밝히면서, 국내 고용 문제 역시 함께 해결하겠다는 의지도 담았다.

문제는 이들 기업들이 약속을 어떻게 지키는 지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현재 투자가 진행 중인 사업도 이번 계획에 상당수 포함됐고, 향후 계획도 대외적 변수가 많아 예정대로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또한 투자 시점 역시 대내외 경영 환경에 따라 바뀔 수 있는 만큼, 투자 압박을 가하는 것은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앞다퉈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투자계획을 내놓고 있음에도 구체적인 내용과 금액은 확인할 수 없다. 대기업 대규모 투자계획과 관련해 한국거래소가 조회공시를 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경제개혁연대(경개연)는 “대기업집단의 투자 발표는 향후 4∼5년 간 그룹의 전략적 투자계획을 담고 있지만 어떤 계열사를 통해서 어느 수준의 금액을 투자할지 등 정작 투자자들에게 중요한 정보는 어디에서도 확인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경개연은 또 “한국거래소가 11개 대기업집단의 투자계획 중 해당 법인과 관련한 사항을 상세히 밝히도록 조회공시를 요구할 것을 촉구한다”며 “조회공시 요구를 받은 상장회사들은 장래의 투자계획을 구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속력이 없고 실제 집행 여부도 검증할 수 없는 대규모 투자 계획이지만 주요 기업이 공언한 수준의 투자가 실제 단행된다면, 이번 계획이 향후 국내 경제 회생의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향후 5년간 대규모 투자가 허울뿐인 계획이 되지 않으려면 중소기업인 대회에서 다짐한 ‘공정과 상생’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지길 기대한다. 속 빈 강정이 되지 않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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