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경제 이현주 기자] ‘꿈의 신도시’. 지난 1989년 노태우 정부가 분당·평촌·산본·일산·중동 등 1기 신도시 추진을 발표하면서 내건 구호다.

2000년대 중후반까진 이 구호는 과장이 아니었다. 주거환경이 좋았고 집값도 서울 강남을 위협할 만큼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일산과 분당은 각각 천하제일 일산, 천당 아래 분당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그 후 1기 신도시는 시중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져갔다. 지은 지 20년이 넘어가면서 노후 아파트라는 이미지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실제 녹물, 누수, 층산소음, 주차부족 등 다양한 주거 불편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1기 신도시는 더 이상 신도시라는 말이 무색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다 최근 1기 신도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재정비 가능성을 둘러싼 논란 때문이다. 1기 신도시 재정비는 윤석열 대통령의 후보 시절 주요 공약으로 '1기 신도시 특별법'을 제정해 이들 지역을 재정비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지난 4월 인수위원회 부동산 태스크포스(TF)가 이 문제를 "중장기 국정 과제로 검토 중"이라고 밝혀 여론이 들썩이면서 '공약 후퇴' 논란이 일었다. 

안철수 당시 인수위원장이 "1기 신도시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진화에 나선 뒤 부동산 TF가 다시 "올해 말이나 내년부터 마스터플랜을 통해 그 지역이 종합적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구상될 것"이라고 밝힌 뒤 논란은 일단락됐다.

그런데 정부가 지난 16일 ‘국민주거 안정 실현방안(8·16 부동산 대책)’을 통해 이 마스터플랜을 오는 2024년까지 마련하겠다고 하자 다시 공약 파기 목소리가 커졌다.

실제 8·16 대책에 1기 신도시 재정비 내용이 담기지 않으면서 재건축 기대감에 대선 직후 상승하던 1기 신도시 아파트 가격도 하락세로 돌아섰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1기 신도시 아파트값은 지난 12일 보합(0.0%)에서 19일 0.02% 하락 전환했다. 특히 성남 분당의 아파트값 하락 폭이 0.04%로 가장 컸다. 

공약 파기 논란이 거세지자 원희룡 국토부 장관과 윤 대통령이 조속한 재정비를 약속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주민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 분당·일산·평촌·산본 등 1기 신도시 5곳 중 4개 지역의 재건축연합회 회장단은 지난 29일 오후 회의를 열고 범재건축연합회를 공식 발족했다. 

이들은 다음달 1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청사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토교통부 세종청사를 차례로 방문해 8400명의 서명서를 전달하고 성명서를 낭독할 예정이다. 성명서에는 △마스터플랜 기간 단축 △안전진단 전면 폐지 △신속한 인·허가 △분양가상한제·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등의 요구를 담을 계획이다. 또 오는 10월에는 1기 신도시 재건축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1기 신도시 재정비에 대한 오락가락 정책은 시장에 혼란을 주고, 주민들에겐 고통을 주고 있다.   

정부는 오락가락 부동산 정책 행보가 정책 신뢰성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일관되고 신속하게 1기 신도시 재정비를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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