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경색·환율급락 영향에 베이비 스텝 선택
내년 경제성장률 2.1%→1.7%로 대폭 하향 조정
가계 이자 부담 가중 우려...내년말 최소 17조4000억원 증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4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요경제 김사선 기자] 한국은행이 24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했다. 올해 4·5·7·8·10월에 이어 여섯 차례 연속 금리를 인상했다. 다만 빅 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보다는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을 선택했다.

물가상승률이 여전히 5%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최근 원·달러 환율 급등세가 진정된 가운데 가파른 금리인상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와 자금시장 경색위험이 커지고 있는 만큼 금통위가 속도 조절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이날 개최한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연 3.00%인 기준금리를 3.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2012년 7월 이후 10년 4개월 만에 3.25%로 올라서게 됐다. 2012년을 제외하면 2008년 12월(4.00%) 이후 약 14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금통위가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은 물가 오름세가 뚜렷하게 꺾이지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0월 소비자물가지수(109.21)는 작년 같은 달보다 5.7% 올랐다. 상승률이 7월(6.3%) 정점 이후 8월(5.7%), 9월(5.6%) 떨어지다가 석 달 만에 다시 높아졌다.

앞으로 1년의 물가 상승률 전망에 해당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일반인)은 11월 4.2%로 10월(4.3%)보다 낮아졌지만, 7월 역대 최고 기록(4.7%) 이후 다섯 달째 4%대를 유지하고 있다.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면서 미국과의 금리 격차는 0.75%포인트로 좁혀지게 됐다. 다만 다음 달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최소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만 밟아도 격차는 1.25%포인트로 다시 확대될 전망이다.

한은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2.1%에서 1.7%로 0.4%포인트나 낮췄다. 성장률을 크게 낮춘 만큼 향후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도 커졌다. 그러면서 내년 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3.7%에서 3.6%로 0.1%포인트 낮췄다. 올해 물가 전망도 5.2%에서 5.1%로 0.1%포인트 내렸다. 물가가 예상보다 빠르게 안정되고 있다고 평가한 셈이다.

한은의 잇따른 기준금리 인상으로 가계 이자 부담도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르면 연간 가계 이자 부담이 3조 3000억 원 늘어나는 것으로 추산하는데 1인당으로 나누면 연 16만 6000원 수준이다. 기준금리를 1년 3개월 동안 0.50%에서 3.25%로 2.75%포인트 올린 만큼 단순 계산하면 그동안 늘어난 연간 이자 부담은 182만 6000원에 이른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도 기준금리 인상이 계속될 경우 올해 9월 기준 연간 52조4000억원 수준인 가계의 이자 부담액은 내년 말 69조8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라 가계대출 연간 이자부담액이 올해 9월부터 내년 연말까지 최소 17조4000억원, 개별 가구 단위로 환산시, 연간 이자부담액은 약 132만원 증가하는 셈이다.

특히 취약차주(다중채무자이며 저소득상태 혹은 저신용인 차주)의 이자부담액이 가구당 약 330만원 증가하면서 부채부담 증가로 취약계층의 생활고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경연은 “가계대출 금리 상승으로 가계대출 연체율이 현재 0.56%에서 1.02%까지 높아질 것”이라면서 “최근 지속 중인 금리인상으로 ‘영끌, 빚투’족이 한계상황으로 내몰리고, 가계대출 연체율이 높아져 가계는 물론 금융기관 건전성까지 악화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요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최고 금리가 지난해 6월 중순만 해도 3% 후반 수준이었지만 1년 반 만에 은행권에서 5%대 변동형 주담대를 이용하기 어려워지는 등 서민가계의 이자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은행권의 변동형 주담대 금리가 연내 8%, 신용대출은 9%대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되면서 대출자들의 이자 부담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는 16일 기준 연 5.26~7.17%로 집계됐다. 전세자금대출(신규 코픽스)은 5.20~7.33%, 신용대출(금융채 6개월)은 6.12~7.46%로 조사됐다. 대출금리 상단이 모두 7%를 넘는다. 하단도 5%를 웃돈다.

변동형 주택담보대출 지표로 활용되는 코픽스는 기준금리 인상과 은행 자금 조달 경쟁으로 급등하면서 치솟았다. 은행연합회가 공시한 10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3.98%로 전월 대비 0.58%p 상승했다. 이는 신규 코픽스 공시가 시작된 2010년 1월(3.88%)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에 따라 은행권의 대출금리도 상당폭 오를 것으로 관측된다. 현재는 5~7%대에 머물고 있지만 곧 6~8%대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내년 10%대까지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한경연 이승석 부연구위원은 “가계부채가 부동산시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한국경제의 특성 상 향후 차입가계의 부채가 자산시장 변동성을 키우고 금융시스템 전체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금리인상으로 인한 잠재 리스크의 현실화를 막기 위해서는 고정금리 대출비중 확대 등 부채구조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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