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수요 둔화에 수익성 하락 재고는 상승
슈퍼사이클 지나고 혹독한 메모리 한파…실적 '암울'

전자업계는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3년차에 접어들면서 ‘펜트업’(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하는 현상) 효과 감소와 고물가·고금리, 인플레이션 등 악재로 수요가 둔화됐다. 글로벌 경기침체 심화로 제조사들 창고에는 재고가 쌓이고 수익성이 감소하는 상황이 지속됐다. 이에 업계는 프리미엄 제품으로 돌파구 마련에 나서는 등 수익성 개선에 주력했다.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비상경영에 돌입했던 올해 전자업계의 흐름을 되짚어 본다. <편집자 주>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일요경제 민다예 기자] 올해 전자업계는 연초부터 금리 인상, 글로벌 인플레이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럽 소비의 감소 등 거시경제 위기가 한꺼번에 겹치며 위기에 봉착했다. 소비심리가 둔화되면서 수익성에도 비상이 걸렸다.

20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2020년 상반기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는 코로나19로 해외여행 및 외부 활동이 제한되며 대신 가전제품을 구매하는 ‘보복소비(펜트업)’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하지만 실적을 지탱하던 펜트업 효과가 끝나고 매출이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실적부진이 더욱 두드러졌다.

제품이 팔리지 않자 재고 확대 고충도 깊어졌다.

삼성전자의 올해 3분기 재고자산은 57조3198억원으로 전년동기보다 51.6% 급증했고 같은 기간 LG전자 재고자산도 11조2071억원으로 12% 증가했다. 재고 증가는 재고회전일수 감소로 이어졌다. 재고회전일수는 회전율이 높을수록 재고자산이 빠르게 매출로 이어지는 것을 의미하고 낮을수록 반대를 뜻한다. 삼성전자의 3분기 말 기준 3.8회로 지난해 말 4.5회보다 0.7회 감소했으며 LG전자는 6.5회에서 6.1회로 줄었다.

하지만 전반적인 업황 악화에서도 둔화된 가전 수요 등을 극복하기 새로운 돌파구 마련에 나섰다. 특히 상대적으로 경기에 영향을 덜 받는 프리미엄 가전 라인업을 강화해 수익성 개선에 주력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올 3분기 누적 글로벌 TV 시장 규모는 723억9000만달러로 전년동기(829억3000만달러)에 비해 12.7% 감소했다. 소비 둔화로 전체 TV 판매가 줄었기 때문이다. 누적 출하량도 1억4300만대로 4.4% 줄었다.

이같은 흐름에도 국내 기업들의 경우 프리미엄 TV제품을 중심으로 선두자리를 공고히 했다. 삼성전자는 올 3분기 누계(1~9월)로 금액 기준 30.2%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전 세계 TV 시장에서 1위를 수성했다. 프리미엄·초대형 제품을 중심으로 수익성을 방어한 것이 주효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수요 둔화 심화 속에서도 프리미엄·초대형 제품 중심으로 판매를 강화해 리더십을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LG전자도 3분기 17%의 점유율로 세계 2위 자리를 지켰다.

삼성전자는 2500달러 이상 프리미엄 시장에서 네오 QLED와 라이프스타일 TV 등을 앞세워 금액 기준 전체 시장의 절반이 넘는 51.1%의 누적 점유율을 차지했다. 같은 시장에서 LG전자도 21.2%의 점유율을 기록, 프리미엄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의 점유율은 72.3%에 달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내년에도 북미 및 유럽 시장을 중심으로 프리미엄 및 초대형 TV 제품군 확대를 이어갈 전망이다.

반도체 슈퍼사이클 저물고 혹한기 진입 ‘빨간불’

반도체 부문 역시 전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시장이 무너졌다. 지난해 이어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공급 부족 사태가 이어졌으나 하반기 들어 ‘반도체 한파’로 분위기가 급반전 됐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분기까지만 해도 슈퍼사이클(초호황기)로 불리며 역대급 실적으로 정점을 찍었으나 상반기 말부터 글로벌 인플레이션 징조가 나타나면서 순식간에 상황이 달라졌다.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 여파로 하반기 들어 PC와 스마트폰 등 IT제품의 세트 수요가 급감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주문량이 줄어든 탓이다. 수요 감소에 따른 재고 증가, 가격 하락이 공급망 불균형으로 이어지면서 불균형이 지속됐다.

시장조사업체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11월 말 PC용 D램 범용제품(DDR4 1Gb*8)의 고정거래가격은 2.21달러로 지난 6월 말(3.35달러)에 비해 5개월 새 34.1%가량 떨어졌다. 고정거래가격은 삼성전자 등 메모리반도체 제조사가 애플, 아마존, 구글, 레노버 등 글로벌 수요처와 체결하는 대규모 공급계약 가격이다. D램 고정거래가격은 지난해 7월 4.10달러로 정점을 찍은 이후 점차 하락하다가 올 하반기부터 하락 폭이 커지는 추세다.

메모리카드·USB용 범용제품(128Gb 16G*8 MLC)의 고정거래 가격은 이달 평균 4.14달러로 6월 말보다 11.2% 빠졌다. 낸드 제품은 지난 6월부터 꾸준히 하락하고 있다. 고객사들의 높은 재고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과 고객사 재고 조정에 가격 하락까지 더해지며 '반도체 혹한기'에 본격적으로 접어든 모습이다.

시장 둔화 여파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도 크게 줄었다.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은 올 3분기 매출 23조200억원, 영업이익 5조1200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각각 12.8%, 49.1% 감소했다. SK하이닉스도 같은 기간 각각 7.0%, 60.3% 줄어든 매출 10조9829억원, 영업이익 1조6556억원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시장 불황은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서승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강도 높은 재고 조정을 경험하고 있는 가운데 고객사들의 주문 강도는 높지 않은 상황"이라며 "23년 하반기 중 계절적 성수기에 따른 재고 재축적 수요와 공급 제한 효과가 발현되면서 반도체 업황이 완연하게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다만 낸드플래시의 경우 선두업체의 점유율 확대 기조로 D램 대비 업황 개선은 다소 지연될 전망"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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