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전문가들 "피해자 구제 등 긍정적...제도개선 미뤄진 점은 아쉬워"
시민사회 “불법적인 전세사기에 한정...미흡한 점 적지 않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전세사기 대책 관련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전세사기 대책 관련 합동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일요경제 이현주 기자] 정부가 전세사기를 방지키 위해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대책의 뼈대는 무자본 갭투자를 막고 임차인에게 신축 빌라 시세까지 제공, 전세 사기를 예방하겠다는 것이다. 또 피해자 지원을 늘리고 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와 감정평가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제도개선이 미뤄진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반면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불법적인 전세사기에 한정돼 있고 미흡한 점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2일 국토교통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세사기 예방 및 피해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집값 급등기 조직적인 전세 사기가 성행하고 있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 보증 사고액은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어난 1조2000억원에 달한다. 전세 사기 검거 건수도 2021년 187건에서 지난해 618건으로 3배 이상 늘었다. 공인중개사가 사기에 가담한 사례도 다수 적발됐다.

이에 정부는 악성 임대인 퇴출을 위한 전세금 반환보증 개선, 위험 계약체결 방지를 위한 전방위 정보제공 확대 등 다각적 사기 예방조치와 저리의 전세자금 대출 지원, 원스톱 법률 서비스 지원, 단속·처벌 강화 등의 대응책을 마련했다.

우선 정부는 전세사기의 전형적인 수법인 무자본 갭 투기를 막기 위해 전세금 보증 한도를 90%까지 낮추기로 했다. 기존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금 반환보증을 해줄 때, 매매가의 100%까지 인정해줬다. 대신 더 많은 임차인에게 보증을 공급할 수 있도록 자본금 출자, 보증 배수 상향 등 보증 기반은 확충을 검토할 예정이다.

감정평가사가 시세를 부풀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공시가격과 실거래가격이 없는 경우에만 감정평가를 적용한다. 협회에서 추천한 법인의 감정가만 인정한다. 임대사업자가 보증의무를 악용하지 못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한다.

세입자들에게는 사전 정보를 제공한다. 정부는 신축빌라 등의 시세, 악성 임대인 정보, 세금체납 정보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안심 전세 앱’을 출시한다. 안심 전세 앱에서는 연립・다세대, 소형 아파트의 시세와 전세가율・ 경매낙찰률 정보를 제공한다. 이달 피해가 많은 수도권을 시작으로 오는 7월까지 지방 광역시, 오피스텔로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전세 사기 피해자에 대한 지원도 강화한다. 우선 전세 사기로 불가피하게 거주 주택을 낙찰받은 피해자의 무주택 청약 자격이 인정된다. 그간 전세 사기 피해자는 불가피하게 거주 주택을 낙찰받을 경우 유주택자로 전환돼 청약 당첨 가능성이 낮아지는 불이익이 뒤따랐다. 정부는 공시가격 3억원 이하(지방 1억5000만원)·전용 85㎡ 이하 주택을 낙찰받는 경우 오는 5월부터 무주택자로 간주하기로 했다.

아울러  피해 임차인이 이사할 경우 주택도시기금에서 지원하는 저리 대출 보증금 요건도 기존 2억원에서 3억원으로 완화하고 대출한도도 가구당 1억6000만원에서 2억4000만원으로 확대한다.

대항력 유지 등을 위해 불가피하게 기존 전셋집에 거주하는 임차인은 그간 대출을 연장하며 높은 이자 부담을 감수해야 했다. 정부는 오는 5월 중으로 1~2%대 금리의 대환 대출 상품을 신설해 이들에게 제공할 방침이다.

또한 피해 복구를 위한 원스톱 법률서비스도 지원한다. 국토부와 법무부 합동 '법률지원 TF(테스크포스)'를 통해 체계적인 법률지원 서비스를 제공해 보증금 반환 절차를 단축한다는 방침이다.

전세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와 감정평가사에 대한 처벌 수위도 강화하고, 의심되는 사례에 대해서는 전수 조사를 실시한다.

공인중개사는 사기 가담 시 자격을 박탈하도록 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요건을 확대하고, 중개보조원 채용 상한제 도입도 오는 6월 추진한다. 전세사기에 가담한 감정평가사에 대한 자격 취소 사유도 금고형(집행유예 포함) 2회에서 1회로 강화한다.

시장 교란행위 신고센터는 집값 담합 위주로 관리하고 있으나, 앞으로는 중개사법 위반, 거래신고법 위반 등 전세사기 의심 행위에 대해서도 적극 조치토록 업무 범위를 확대할 계획이다. 컨설팅 업체, 배후 세력 등에 대한 특별단속도 6개월 연장한다.

정부는 단기간 내 주택 다량ㆍ집중 매집, 동시 진행・확정일자 당일 매도 등 전세사기 의심 사례에 대한 기획조사를 실시한다. 의심거래 집중 지역을 우선 조사하되, 그 외 지역과 신규 거래 건도 연중 조사를 실시하고, 의심 사례는 경찰청 등 관계기관에 통보하여 위법 확인 시 엄중 처벌한다는 계획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전세사기는 청년과 신혼부부 같은 사회 초년생이 대응하기 어려운 조직적이고 지능적인 범죄”라면서 “이번 대책을 통해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보증금을 노리는 악질 사기가 뿌리 뽑힐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대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책이 제시된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며 “임차인이라면 일단 실거주 수요라고 봐도 무리가 없으니, 이들에 대한 주거지원과 피해복구를 제도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은 중요하다”고 밝혔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도 “전세사기에 대한 단속과 처벌 등 사후적 조치 외에도 전세사기 예방과 사전적 모니터링 및 피해자 구제 등과 관련된 제도 개선이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HUG 전세금 반환보증의 전세가율을 매매가의 100%에서 90%로 낮춘 것은 '빌라왕'처럼 보증제도를 악용하는 도덕적 해이를 막고, 감정평가를 공시가격과 실거래가격이 없는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활용하도록 한 것은 평가사의 시세 부풀리기 조작을 막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다만 제도개선이 미뤄진 점에 대해서는 아쉬움의 목소리도 나왔다.

함 랩장은 “일부 제도개선은 다가올 봄 이사철 이후에 법이 개선될 예정이거나, 수도권과 지방 또는 주택상품 유형간 시행시기 차이가 있고 나쁜 임대인 명단공개 등은 국회 입법 개정이 불투명한 여지가 있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아파트 전세 시세와 주택 전세가율, 전세보증금반환사고 지역 통계 외에도 임차인의 정보 교섭력을 높일 수 있도록 역전세 지역, 임차권등기명령 지역 등에 대한 추가적 정보 제공과 시장 모니터링이 필요해 보인다"며 "전세 계약 시 관련 특약이 강화되긴 했지만 임차 중인 주택의 경우 임대인 변경 시 임차인에게 계약내용에 대한 안내 고지 의무화, 계약체결 시점에 선순위 임대차정보 제공, 임대인 국세완납증명 확인 등 정보공개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시민사회계에서는 이번 대책과 관련해 불법적인 전세사기에 한정되어 있으며 미흡한 점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이번 대책은 전세사기 피해 예방, 피해지원, 전세사기 단속 및 처벌 강화 등이 종합적으로 검토됐으며, 필수적인 조치”라고 평가하면서도 “대책이 여전히 불법적인 전세사기에 한정되어 있으며 이마저도 미흡한 점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가 보증한도로 밝힌 전세가율 90%는 여전히 높은 수치”라며 “최근 주택 매매시세와 경매 낙찰가 등을 고려해볼 때 임차인이 보증금을 돌려받기 어려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또 “전세사기 예방을 위해서는 공인중개사의 중개대상물 명시·설명의무를 보다 더 강화해야 하고 전세반환보증보험 또는 전세대출보증이 거절되는 경우, 임차인은 임대인에게 손해배상이나 위약금을 지불하지 않고, 이를 사유로 임대차계약을 해제하거나 해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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