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생명 "유감스럽지만 법원 판단 존중...풋옵션 가격 41만원 정당하다는 의미 아냐"

교보생명 사옥 전경. (사진=교보생명)
교보생명 사옥 전경. (사진=교보생명)

[일요경제 김사선 기자] 교보생명 풋옵션 분쟁과 관련, 투자자 측에 유리하도록 풋옵션 행사 가격을 평가하는 기준일을 적용한 혐의로 기소된 어피니티 컨소시엄과 안진회계법인 임직원들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교보생명은 어피니티컨소시엄과 안진회계법인 관계자들의 형사재판 무죄 판결과 관련 "유감스럽지만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재판부는 3일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어피너티 컨소시엄과 안진회계법인 회계사 5명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2월 교보생명의 풋옵션 가치 평가 과정에서투자자들에게 유리하게 평가 기준일을 적용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던 어피너티 측과 안진회계법인 임직원들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지 1년 만의 일이다.

재판부는 "회계사의 가치 평가 업무에서 어떤 의견을 평가자와 의뢰자 중 누가 먼저 제안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회계사의 전문 판단을 거쳤는지가 중요하다"며 "(가격 결정이) 안진의 전문가적 판단 없이 어피너티 컨소시엄의 일방적 지시로 이뤄졌다고 보기에는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교보생명은 다수의 공모정황과 증거가 있었음에도 이번 재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것에 대해 유감스럽지만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검찰의 상고를 통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한다면 대법원에서는 현명한 판단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이날 어피니티컨소시엄과 안진회계법인 관계자들의 형사재판 무죄 판결과 관련 “부적절한 공모 혐의가 분명히 있음에도 증거가 다소 부족한 것이 반영된 결론”이라면서도 "이번 재판 결과가 어피니티와안진이 공모해 산출한 풋옵션(주식을 특정 가격에 되팔 권리) 행사 가격(주당 41만원)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미 국제상사중재 판정에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41만원에 주식을 매수해줄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라는 것.

이번 재판은 어피니티 임원과 안진 소속 회계사들이 교보생명의풋옵션 행사가격 평가 과정에서 허위보고, 부정청탁 등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를 발견한 검찰의 기소로 이뤄졌다.

교보생명 측은 “이번 형사재판이 회계사법 위반 여부에 국한된 만큼 어피니티와 안진 관계자들이 무죄 선고를 받았더라도, 풋옵션 행사가격의 정당성까지 인정받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 강조했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피고인들이 짜고 풋옵션 가격을 의도적으로 부풀렸다는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지 결코 이들의 결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어피니티와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의 풋옵션 분쟁은 2018년말 어피니티가 보유하고 있는 교보생명 지분 24%를 당초 매입가격(주당 24만5000원, 총1조2000억)의 두 배 가까운 41만원에 신 회장에게 되사가라며 풋옵션을 행사한데서 시작됐다.

당시 교보생명의 IPO 공모 예정가는 주당 18만~21만원(크레디스위스)에서 24만~28만원(NH투자증권) 수준이었는데 어피니티는 이 보다 두 배나 높은 가격을 제시한 것이다.

신 회장은 가격이 터무니없이 높다고 판단해 풋옵션에 응하지 않고 있다. 어피니티가 국제중재 소송을 걸었지만 중재재판부는 “신 회장이 41만원에 되사줄 의무가 없다”며 풋옵션 가격이 무효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그러자 어피니티는 2차 국제중재를 걸었다. 신 회장측은 기업공개(IPO)를 통해 시장에서 합리적인 가치평가를 받아 적정한 풋옵션 가격을 재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보생명은 어피니티와 안진이 서로 짜고 풋옵션 가격을 의도적으로 부풀렸으며 이 과정에서 부적절한 공모를 했다고 고발했다.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관계자들을 공인회계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고 피고인들에게 최대 1년 6개월의 실형을 구형했다.

검찰에 따르면 어피니티와안진은 이메일 등을 통해 가치평가 의뢰 당시부터 평가방법, 평가인자는 물론 주당 최종단가, 수시산정 결과 값까지 공모했다.

또 안진 회계사들은 전문가적인 판단을 거쳐 가격을 정한 것처럼 가치평가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것도 모자라 용역수수료는 물론 법적 분쟁 시 법률비용을 지급받기로 약속 받는 등 부당한 금품을 받은 사실도 밝혀졌다.

김경율 회계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장)는 “재판에서 드러나 어피니티와안진이 주고받은 244차례 이메일 내용은 ‘통상의 의견교환’이라고 주장하지만 용인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며 “전문가 집단에 주어진 자율적 판단의 영역을 스스로 저버리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거두기 힘들다”고 말했다.

교보생명측은 “이번 무죄 판결이 풋옵션 분쟁 핵심 쟁점인 행사가격(41만원)을 정당한 방법으로 도출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아니다”며“풋옵션 행사가격 논란은 형사재판과 별개의 쟁점이며, 안진이 평가한 풋옵션 가격은 이미 2021년 9월 국제 중재판정부(ICC) 결과로 설득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회계법인의 가치평가 업무에 대해 이례적으로 기소한 것은 이번 사건이 총 1조원대 이익을 노린 대형 경제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이 크다고 봤기 때문이다. 1조원(지분 24%) 규모의 주식가치를 2조원대로 부풀려 부당이익을 취하려고 했다는 점에서다.

어피니티가 풋옵션을 행사한 직후 교보생명 지분 5.33%를 보유하고 있는 또 다른 사모펀드 어팔마캐피털도 주당 39만7900원에 풋옵션을 행사했다. 어팔마는 최초에 안진을 평가기관으로 선임했으나 계약상 제3자 제공 문제로 무산되자 삼덕회계법인을 선임, 안진이 작성한 보고서를 그대로 베껴서 표지만 바꿔 제출한 것이 적발됐다. 삼덕 회계사는 기소돼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삼덕 사건 재판부는 “제공받은 결과 값이 과거 10년간 생명보험회사의 주가 추이에서 크게 벗어났음을 물론 다른 회계법인의 가치평가 결과와 현저한 차이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풋옵션 가격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주주간 계약내용 자체도 신 회장에 불리한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다는 게 신회장측의 주장이다.

풋옵션 행사가격의 기준이 되는 공정시장가치(FMV)를 결정하는 방식을 보면, 양측에서 평가하고 제시한 FMV의 차이가 10% 이내이면 두 가격의 평균이 FMV가 된다고 계약에 명시했다. 만약 차이가 10% 이상일 경우 어피니티가 제시한 3곳의 평가기관 중에서 한 곳을 신 회장이 선택해 그 기관이 평가한 가격이 최종 FMV가 된다. 결국 신 회장이 어떤 가격을 써 내더라도 어피니티가 원하는 수준의 가격에 수렴할 수밖에 없는 계약 구조라는게 교보생명의 주장이다.

특히 신 회장 입장에서는 풋옵션은 행사 당시 시장에서 통용되는 가격으로 매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피니티처럼 시장가치의 두 배에 이르는 풋옵션 가격을 FMV이라고 주장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결국 신 회장 측은 법무법인의 자문에 따라 풋옵션 가격 제시에 나서지 않은 것이다.

주주간 분쟁에 교보생명이 나선 까닭은

교보생명은 주주간 분쟁에 회사(교보생명)가 개입하고 대주주(신창재회장)를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는 어피니티의 입장에 대해서도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반박했다.

오랜 기간 주주간 분쟁으로 IPO 차질 등 회사의 피해를 막기 위한 적극적 방어 행위 차원의 경영 판단에 따른 것이란 입장이다.

실제로 주주간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교보생명은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고 2만여 임직원 및 설계사, 400만 고객들도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입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오히려 회사의 피해가 막대한 상황에서 어피니티 주장대로 손을 놓고 있는 것이야 말로 배임이나 책임회피 문제로 불거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관련 사안은 법률대리인과 회계법인을 통해 내부통제 및 법률검토를 거쳐 정당하게 진행된 사안이다.

어피니티측은 2018년 말에 제시한 풋옵션 가격 41만원을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그동안 생명보험 시장이 급격히 위축된데다 코로나19, 글로벌 긴축과 경기침체 등의 여파로 삼성생명 한화생명미래에셋생명 등 상장 생보사의 주가는 4년 전에 비해 최대 40% 이상 하락한 상황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생명 한화생명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을 기준으로 교보생명의 현재 주가를 추정하면 15만~18만원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김재현 상명대 글로벌경영학부 교수는 “어피니티가 투자수익 극대화를 위해 무리하게 풋옵션 가격을 제시했다가 신 회장의 반발을 불러오고 결국에 법적인 분쟁에 휘말려 자금회수 기회를 놓쳐버리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어피니티는 신 회장을 압박해 현재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에 팔려는 전략을 쓰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풋옵션 분쟁해결과 관련, 국제중재 재판부의 판정에 따라 풋옵션 가격 41만원은 이미 설득력을 상실한 만큼 시장에서 합리적인 방식으로 가격을 재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교보생명은 IPO를 통해 시장에서 합당한 가치 평가를 받은 후 적정 풋옵션 가격을 산정하고 상호간에 원만한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교보생명 관계자는 “어피니티 측의 법적분쟁 유발로 가장 객관적인 풋옵션 가격을 평가받을 수 있는 IPO 기회가 지연된 만큼 이제라도 주요 주주의 역할에 맞게 적극 협조해 주기를 바란다”며 “회사는 이번 판결과 무관하게 금융지주사 전환, IPO 등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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