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아시아·유럽 해외 행보 ‘속도’
실적 부진·M&A·사법리스크 등 과제도

지난해 12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베트남 하노이 인근 삼성디스플레이 법인(SDV)을 방문해 디스플레이 생산 공장을 점검하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지난해 12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베트남 하노이 인근 삼성디스플레이 법인(SDV)을 방문해 디스플레이 생산 공장을 점검하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일요경제 민다예 기자] 지난해 10월 27일 회장직에 오른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취임 100일'을 맞았다. 별도의 취임식 없이 조용히 취임한 이 회장은 100일간 국내외 현장 경영 행보에 주력하고 있다.

'반도체 한파'에 따른 실적 부진과 ‘사법리스크’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지만,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한 현장 경영에 속도를 내며 '민간 외교관'이자 '삼성 총수'로서 역할에 집중하고 있다.

분주한 해외 현장경영 행보…글로벌 네트워크 빛났다

이 회장은 취임 후 첫 출장지로 중동 아랍에미리트(UAE)를 다녀온 데 이어 동남아시아, 유럽 등을 잇달아 찾으며 해외 경영에 힘을 쏟았다. 취임 기간 100일 중 20일 이상을 해외에서 보냈을 정도다.

회장 취임 후 해외 사업장 첫 방문은 지난해 12월 UAE 바라카 원전 건설 현장을 찾으며 중동 국가들과 교류 확대에 나섰다. 원전 방문에 앞서 삼성물산,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전자 중동 지역 법인장들을 만나 현지 사업을 보고 받은 후 중장기 성장 전략에 대해 함께 논의했다.

이어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베트남 삼성 R&D센터' 준공식에 참석했다. 베트남 삼성 R&D센터는 글로벌 기업이 베트남에 세운 최초의 대규모 종합 연구소다. 이 회장은 약 9일간 베트남뿐 아니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주요 거점을 둘러보는 장기 출장을 소화했다.

신년에도 이 회장의 해외 행보는 계속됐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과 UAE 경제사절단에 동행한데 이어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도 참가했다. UAE에서는 '만수르'로 알려진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하얀 부총리 겸 대통령실 장관과 함께 앉아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돼 눈길을 끌었다.

스위스에서도 이 회장의 글로벌 인맥은 빛을 발했다. 그는 윤 대통령과 함께 한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오찬에 인텔, 퀄컴 등 주요 글로벌 기업 CEO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힘을 썼으며, 윤 대통령에게 이들을 직접 소개하기도 했다.

한국을 찾은 글로벌 주요 인사들의 '면담 1순위'도 이 회장이었다. 지난해 11월 무함마드 빈 살만 UAE 왕세자와의 회동에 이어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 피터 베닝크 ASML CEO, 올리버 집세 BMW CEO 등과도 만남을 가졌다.

해외 파견 임직원부터 워킹맘까지…'수평적 조직문화'·‘소통’ 강화

국내 사업장을 찾아 MZ직원, 워킹맘 등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등 소통 행보도 계속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1일 삼성화재 대전 연수원을 찾아 직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현장 목소리를 청취했다. 그는 회장 취임 후 삼성 반도체 사업장, 삼성SDS, 삼성생명 등을 잇달아 찾아 애로사항을 듣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직원 사기 진작에도 충실했다. 이 회장은 설 명절을 맞아 새해 첫 주 출산한 여성 임직원 64명에게 최신형 공기청정기를, 다문화 가정을 이룬 외국인 직원 180명에게는 에버랜드 연간 이용권 및 기프트카드를 선물했다. 지난해 추석에도 이 회장은 다자녀 가정과 장기 해외 출장 직원 가족에게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삼성전자의 최신 모바일 기기와 굴비 세트를 각각 선물한 바 있다.

수평적 조직문화에도 힘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달부터 그동안 직원 간에만 적용했던 '수평 호칭'의 범위를 경영진과 임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경영진을 포함한 임직원은 앞으로 영어 이름이나 영문명의 이니셜(앞글자), 한글 이름에 '님'을 붙이는 등 상호 수평적 호칭만 사용해야 한다. 경영진이 참석하는 타운홀 미팅이나 간담회, 임원회의 등 공식 행사에서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된다. 임직원들은 자신이 선호하는 호칭을 내부에 공지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수평적 조직 문화를 구축하고 권위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지난 2016년부터 '수평호칭' 제도를 도입했다. 이어 지난해부터는 임직원 간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고, 사내망에서 직원 조회 시 나타나는 직위, 사번 등 표기를 없앴다. 또 상호 높임말 사용을 공식화해 직원들이 서로 직급을 전혀 알지 못하게 했다. 삼성전자는 이어 사내 수평적 호칭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범위를 경영진과 임원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실용주의' 경영철학이 조직문화 전반으로 확산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회장은 '임직원과 회사가 함께 성장하는 조직'을 만드는 데 큰 관심을 두고, 지난해 시행된 미국 실리콘밸리식의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을 지향하는 내용의 새로운 인사제도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종희 DX부문장(부회장)도 지난해 4월 경기 수원 사옥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에서 "부회장님 말고, JH(영문 이니셜)로 불러 달라"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도체 부진·재판 등 과제 산적

글로벌 경기 불황에 따른 실적 악화와 사법리스크 등 개선해야 할 과제도 남아있다.

삼성전자 실적은 지난해 4분기를 기점으로 '반도체 한파' 직격탄을 맞았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지난해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96.9% 줄어든 2700억 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메모리 수요 감소와 제품 가격 하락 등 업황 부진이 실적 발목을 잡았다.

올해 1분기 실적 전망도 밝지 않다. 증권가에서는 삼성전자가 올 1분기 반도체 부문에서 결국 영업적자를 낼 것이라고 보고있다.

유안타증권은 "IT 시장의 전반적인 재고 조정이 본격화되는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 폭은 예상보다 높은 수준일 것이며 파운드리 가동률은 전분기 대비 낮아질 것"이라며 반도체 부문 영업 손실 1조6000억원을 예상했다. 한화투자증권도 메모리 부문 적자 전환 가능성을 내비쳤다.

반도체 부문뿐만 아니라 생활가전, 스마트폰 부문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가전은 7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으며, 스마트폰 판매 역시 부진하다.

수년째 발목을 잡고 있는 '사법리스크'도 부담 요인이다. 취임 100일째를 맞은 이날 이 회장은 '부당합병·회계부정 의혹' 관련 공판에 출석했다. 지난해 10월 회장 취임이 발표된 날에도 이 회장은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았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르면 올 하반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회계부정 재판 1심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노사 관계 재편 역시 눈 여겨 볼 과제다. 삼성 전자계열사 5곳에서 만들어진 9개 노동조합은 전날 기자회견을 갖고 연대 출범을 선언했다. 노조 연대는 "이재용 회장은 무노조 경영을 사과했지만 여전히 사측은 일방적인 교섭 불참을 선언하는 등 불통을 이어가고 있다"며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연대는 "소속이 모두 다른 9개의 노동조합이 함께 모여 연대체를 출범하고, 모두가 겪고 있는 일터 내 안전과 건강 문제를 알리고 회사를 바꿔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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