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결에 따른 기대 인플레 상승 우려..."금통위 발언은 매파적"
물가 상승ㆍ대외금리차 확대로 한은 고심 깊어져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일요경제 김사선 기자] 최근 가계 부채 및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 등으로 2월 금통위에서 1년 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면서 향후 한국은행의 긴축 행보가 중단될 지 여부에 시장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지난해 4월부터 지난달까지 기준금리가 7차례 연속으로 2.25%포인트(p)나 오른 만큼, 경기침체 등을 감안해 숨고르기에 나설 것으로 관측했다.

21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채권전문가 10명 중 7명은 오는 23일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가 동결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0일부터 15일까지 48개 기관의 채권 보유·운용 관련 종사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66명이 이번 금통위에서 기준금리가 현 수준(3.50%)이 유지, 나머지 34명은 인상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상 전망을 내놓은 응답자 중 33명은 25bp(1bp=0.01%포인트) 올라갈 것으로 봤고, 1명은 50bp 인상을 예상했다.

금투협은 이날 “한국의 가계 부채 및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 등으로 2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예상하는 응답자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애초 지난달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한 후 이달 동결을 예상하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최근 미국의 금리 인상 등 긴축 기조가 기대보다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다시 인상 쪽에 무게를 두는 여론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금투협이 이번 설문으로 산출한 3월 종합 채권시장지표(BSMI·Bond Market Survey Index)는 81.3으로 전월(84.2) 대비 소폭 하락했다. BSMI는 채권시장의 참여자들의 시장 인식에 대한 조사로, 100 이상이면 채권 가격이 상승(금리 하락)할 것으로 기대해 심리가 양호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반대로 100 이하이면 시장 심리 위축을 뜻한다.

금투협은 “연준(연방준비제도)의 연이은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미국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기록해 긴축정책 장기화 우려가 확산되며 3월 채권시장 심리가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금리전망 BSMI도 57.0으로 전월(86.0)보다 악화됐다. 지속적인 금리인상에도 불구, 미국 소비자·생산자 물가 상승률이 시장의 예상을 크게 웃도는 등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느려지자 추가 긴축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물가 BSMI도 91.0으로 전월(95.0)보다 낮아진 반면 환율 BSMI은 81.0으로 전월(63.0)보다 개선됐다. 물가는 국내 1월 소비자물가가 전년동월대비 5.2%의 상승률을 기록하는 등 5%대의 높은 수준이 지속된 영향이다. 환율의 경우 시장 예상치를 미국 물가지표 발표가 잇따르며 미국의 긴축기조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감소, 환율 상승 응답자 비율이 높게 나온 결과다.

대다수 금융전문가들도 현 3.50%의 기준금리가 동결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1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6명의 금통위원들 중 3명은 최종 기준금리에 대해 3.75%라고 언급했지만, 추가 인상을 주장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통위원들도 적극적으로 추가 인상을 지지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도 "미 연준의 긴축 속도 조절과 경기하강 리스크 등을 고려할 때 한국은행은 추가인상 보다는 그간의 누적된 통화긴축 효과를 지켜보면서 인상보다는 동결을 택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내다봤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역시 "2월 금통위에서는 기준금리가 연 3.50%로 동결되고 기준금리 인상을 주장하는 소수의견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기준금리 동결을 전망하는 이유로 "전 세계 다른 나라보다 국내의 성장 부진이 더 빠르기 때문"이라며 "대외적 경기 요인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내수의 하강 속도가 빠른 편"이라고 판단했다.

이어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할 가능성과 소비자들의 심리 부진 등을 고려할 때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하기에는 부담이 있다“며 "부동산이 가계 자산과 부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한다면 물가뿐 아니라 금융 안정을 동시에 고려하는 좀 더 유연한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시장 전문가들은 한은 금통위가 이번 동결이 금리인하의 신호탄이 아니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 매파(통화긴축 선호)적 메시지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번 한은의 금리 동결이 완화적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발언까지 완화적으로 돌아선다면 기대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는 등 물가에 대한 우려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로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대비 5.2% 오르며 지난해 10월 이후 이어지던 하락세가 멈췄다. 전기·가스 수도 요금이 전년 대비 무려 28.3% 상승하면서 물가상승을 이끈 탓이다.

정부도 2월 들어 한국 경제가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인정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7일 발표한 최근경제동향(그린북)을 통해 '경기 흐름이 둔화했다’고 진단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금통위에서 한은 총재는 물가보다는 성장에 보다 중점을 뒀으며 경기에 대한 전망이 더 어두워진 만큼 이번에도 성장을 우려하는 발언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금통위가 물가에 대한 경계감을 높이며 매파적 발언을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미국의 최종 기준금리 수준에 대한 불확실성을 고려할 때 매파적으로 발언하는 것이 시장의 추가 변동성을 높이지 않을 수 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향후 행보에 따라 유동적인 대응을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시장의 앞선 금리인하 기대를 조절하려면 이번 결정에서 매파적인 발언은 필수"라면서 기준금리가 연 3.50%로 동결되는 것과는 별개로 기자회견은 매파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예상치를 웃돌면서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통화긴축 기조를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향후 한은의 금리 결정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기존 전망치보다 높게 나온데다가 오는 24일 발표되는 미국 물가 상승 지표 ‘개인소비지출(PCE)’의 급등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다.

미 노동부에 따르면 미국의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CPI)상승률은 6.4%로 시장 전망치(6.2%)보다 높았다.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딘 상황인 데다 비농업 일자리(51만7000개)가 예상보다 3배 가까이 늘면서 고용시장도 뜨거워졌기 때문에 연준은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낼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현재 4.50~4.75%인 미국의 기준금리가 기존 예상치(5.1%)보다 높아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주요 경제 전문가들도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는 “연준이 가능한 한 빨리 움직여 기준금리 수준을 연 5.375%까지 올려야 한다”며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이 길 것이란 게 내 판단”이라고 말했다.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다음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5%p 금리 인상 가능성이 열려 있다”며 빅스텝(기준금리 0.5%p 인상)까지 가능하다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한은이 동결을 결정한다면 한·미 금리차가 커져 한국경제엔 부담으로 작용한다.

한은이 이달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미 연준이 다음달 있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0.25%p 인상을 결정한다면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격차는 현재 1.25%p를 넘어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역대 최대폭인 1.75%까지 벌어지게 된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미국이 빅스텝까지 단행한다면 기준금리 격차는 최대 2.00%가 될 수도 있다.

한·미 금리 역전 폭이 벌어지면 원화가 약세해 외국인투자자의 자금이 빠져나가고, 수입물가 상승으로 인한 무역적자가 발생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은이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하지만 현재 한국경제의 침체 우려가 커진다는 점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가 경기 부양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려버린다면 실효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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