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일요경제 김사선 기자] 한국은행이 지난 1년 5개월간 이어왔던 기준금리의 인상 행진이 일단 멈췄다. 물가안정보다는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고 긴축기조를 상당기간 이어가면서 추가인상 필요성을 판단해 나갈 필요가있다’라는 문구를 추가해, 인플레이션 불확실성에 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23일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현재 연 3.50%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2021년 8월부터 1년반 가까이 계속돼 온 금리인상 기조에 제동을 건 것이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금리동결을 선택한 배경으로 물가안정보다는 위기로 치닷고 있는 한국경제를 살리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한 것으로 관측했다.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 부진에 소비위축이 겹치면서 경기침체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금리인상을 결정하기에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란 얘기다.

정부도 2월 들어 한국 경제가 둔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처음으로 인정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7일 발표한 최근경제동향(그린북)을 통해 '경기 흐름이 둔화했다’고 진단했다.

한은이 물가 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해야하지만 정부가 한국경제의 침체를 막기 위해 경기 부양에 적극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려버린다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도 금리동결 배경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전분기 대비)은 수출 부진 등에 이미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0.4%)로 돌아섰다.

이번달 20일까지의 수출액(통관 기준 잠정치·335억4천900만달러)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2.3% 적어 이 추세대로라면 이달까지 5개월 연속 감소가 우려된다.

수출 감소, 물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2월 소비자심리지수(CCSI·90.2) 역시 1월(90.7)보다 0.5포인트 떨어졌다.

다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어느 때보다 높은 불확실성을 고려해 금리를 동결했지만 이번 결정이 금리인상 기조가 끝났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물가 상승률이 점차 둔화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연중 목표 수준을 상회하는 오름세가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정책여건 불확실성도 높아 기준금리 현 수준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향후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 속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최종금리 수준, 중국 경기 회복 영향, 부동산 경기, 금융안정 영향, 금리 인상 파급 영향 등 여러 요인들을 면밀점검하는 것이 적절한 시기라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최종금리에 대한 금통위원들의 의견도 3.5% 1명, 3.75% 5명으로 최종금리 레벨 상향조정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금통위원이 1월에 비해 2명 늘어났다.

향후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리자니 경기 침체가 걸리고,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동결하자니 자본 유출이 우려되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한은의 고심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1%대마저 걱정해야 할 정도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금리로 빚을 갚는데 어려움이 커지는 동시에 고물가로 소비심리가 더욱 위축되면서 뚜렷한 비상구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성장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수출까지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당분간 국내 경제를 둘러싼 우려는 점점 깊어져 갈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우려를 반영해 국내외 주요 기관들은 앞다퉈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을 계속 하향 조정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23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로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 11월 발표했던 전망치(1.7%)보다 0.1%포인트(p) 낮은 수준이다.이는 글로벌 경제 둔화, 금리 상승 등의 영향으로 부진한 성장 흐름이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신용평가사 피치(1.9%), 경제협력개발기구(1.8%), 한국개발연구원(1.8%), 국제통화기금(1.7%), 한국경제연구원(1.5%) 등이 일제히 경제 전망을 어둡게 봤다.

특히 1%대 성장률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5.1%),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0.8%),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초기인 2020년(-0.9%) 등을 제외하면 가장 낮은 수준이다.

한은이 고심 끝에 금리를 동결한 만큼 이제부터 정부가 그에 상응하는 해법을 제시물가 안정은 물론 지속되는 경기침체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시급하다.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수출 증대와 과감한 투자를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대책마련과 신속한 시행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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