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물가 인상 자제 압박에 식품업체 가격 동결
‘소줏값 6000원’…국세청, 주류업계 실태조사 착수

정부의 물가 인상 자제 압박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 릴레이에는 일단 제동이 걸린 분위기다. 사진은 대형마트에 진열된 고추장. (사진=연합뉴스)
정부의 물가 인상 자제 압박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 릴레이에는 일단 제동이 걸린 분위기다. 사진은 대형마트에 진열된 고추장. (사진=연합뉴스)

[일요경제 김사선 기자] 식품업계가 원자재 가격 급등을 이유로 가격인상에 나서면서 서민가계가 고통을 받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생활물가를 잡기위해 총력전에 나서고 있다.

3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28일 '물가안정 간담회'를 열고 식품업계의 가격 줄인상 및 담합 움직임에 대해 강력 경고하며 물가 안정을 위해 가격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는 가격인상을 방치할 경우 가뜩이나 난방비 폭탄으로 악화된 민심이 정부로 향할까 우려돼 선제적 대응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요청이 강제적인 압박이라는 비판과 함께 하반기 공공요금에 이어 생필품까지 한꺼번에 인상될 경우 서민들이 고물가로 인한 고통도 커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 압박에 식품업계는 즉각 반응했다. CJ제일제당은 이달 1일부터 올리기로 한 조미료 등 제품 17종의 가격을 동결하기로 했다.

앞서 CJ제일제당은 고추장과 다시다 10종의 출고 가격을 최대 11% 올리기로 했다. 대형마트에서는 지난달 중순부터 가격 인상이 적용됐고, 편의점에서는 이달 1일부터 가격이 조정될 예정이었다.

냉장 간편식품 중에서는 가쓰오우동과 얼큰우동, 찹쌀떡국떡 등 7종의 판매 가격이 평균 9.5% 오를 예정이었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원가 및 비용 부담은 여전하지만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소비자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편의점 판매 제품의 가격을 인상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이번 가격 인상 철회와 관련해 정부의 가격 인상 자제 요청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풀무원과 하이트진로는 지난달 28일 예정된 제품 출고가 인상계획을 철회키로 했다. 식품업계에 따르면 풀무원은 이달 초 인상이 예정됐던 ‘풀무원샘물’과 ‘풀무원샘물 워터루틴’의 제품 인상 방안을 전격 철회했다.

풀무원은 “지난 22일부로 출고가 5% 가격 인상 공문을 발송했으나 27일부로 이를 철회하기로 했다”며 “고물가 시대를 맞아 소비자들의 가계부담을 덜어주고자 내부적으로 이 같은 결정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이트진로도 정부 협조 요청을 수용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이트진로는 “가격 인상 요인은 존재하고 있으나 지금의 경제 상황에서 소비자와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덜어드리고자 결정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최근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주류업계의 소주 가격 인상 움직임에 대한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주류업계의 소줏값 줄인상에 직접적으로 제동을 건 동시에 자정 노력을 요청했다.

실태조사에선 소줏값 인상 요인을 비롯해 주류업계 가격 인상 동향, 주류사의 이익 규모 및 경쟁도 등을 면밀히 살펴볼 계획이다. 주류 생산부터 유통 전반에 걸쳐 형성된 독과점 구조가 주류가격 인상을 부추기는 요소인지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민생 물가를 살피려는 정부 움직임은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됐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물가 안정을 위한 고강도 대응을 요청했다.

이후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세금이 조금 올랐다고 주류 가격을 그만큼 혹은 그보다 더 올려야 하는지에 대해 업계와 이야기를 할 것”이라며 사실상 소줏값 인상을 저지했다. 이어 “(소주 등) 국민이 정말 가까이 즐기는 그런 품목에 대해서는 (가격 인상 철회 등) 업계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주류업체를 대상으로 민생 분야의 담합 행위에 초점을 두고 조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농림축산식품부는 식품업계 대상의 간담회를 열고 가격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까지 고추장, 조미료, 아이스크림, 과자, 생수, 햄버거, 피자, 냉면, 소주, 맥주 등 식품 물가가 짧은 주기로 인상되면서 서민들의 가계살림은 쪼그라들고 있다.

실제로 올해 1월 ‘경제고통지수(Economic Misery Index)’가 1999년 이후부터 같은 달과 비교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지표는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반영해 산출한다. 수치가 높다는 것은 그만큼 국민의 생활이 나빠졌다는 이야기다. 물론 1월은 대체적으로 경제지수가 나쁜 시기다. 하지만 올해는 물가상승과 겹치며 상황이 더 나빠졌다.

지난달 우리나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2%로, 5% 이상 고물가가 3분기 연속 이어지고 있다. 실업률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보다 조금 내렸지만, 아직은 3.6% 대다.

통계청이 2월 초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0.11 (2020=100)로 1년 전보다 5.2%나 상승했다.

정부의 물가 인상 자제 압박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 릴레이에는 일단 제동이 걸린 분위기다. 하지만 정부의 압박에 울며겨자먹기로 인상을 철회한 식품업계가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자체적으로 흡수하기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원자재 값 급등으로 제품 가격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라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정부의 요구에 따라 부담을 떠안고 가야 하는 식품업체들도 더 이상 인상을 미룰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정책에 굴복해 어쩔수 없이 동참한 가격 동결로 소비자는 지금 당장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반기 전기ㆍ가스ㆍ교통 등 공공요금과 맞물려 생필품 가격이 한꺼번에 오른다면 서민들의 가계부담은 훨씬 클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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