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가 있는 시장... "정부 인위적 통제 불가능”
에스크로 도입 관해서는 찬성 vs 반대 엇갈려

위 사진은 기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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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경제 이현주 기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최근 “전세는 수명이 다한 것으로 본다”고 밝히면서 ‘전세폐지론’에 불이 붙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세제도가 서민들의 주거안정에 기여하고 있고 임대차시장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해 통제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지적했다.

23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6일 취임 1주년을 맞아 열린 출입기자단 간담회에서 "전세제도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수명이 다한 게 아닌가 보고 있다"고 밝혔다.

원 장관은 또 “보증금이라는 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임대·매매 가격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관리 시스템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 등이 맞물려야 한다”며 “이 문제를 제대로 판 위에 올려서 큰 그림을 짜보자는 각오”라며 대대적 제도 손질을 암시했다.

이에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은 지난 18일 경상남도 진주 LH 본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전세는 한국 주거사다리의 중요한 지름길이었는데 그 자체가 붕괴된다면 소위 '내 집 마련'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며 "정부가 전세제도를 인위적으로 없애자는 건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밝혔다.

원 장관의 발언 이후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전세제도 폐지론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전세 대출을 손보면 되지 제도 자체를 폐지할 필요가 있나 싶다", "전세제도를 없애면 월세가 급등할 수 있다"와 “전세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있는 제도, 손질이 필요하다” 등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전세제도를 폐지하거나 통제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인 서진형 경인여대 교수는 “전세제도는 민법에 있는 임대차 제도”라며 “국토부 장관이 없앤다고 해서 없앨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준환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시장에서 수요자와 공급자 간 맺은 사적계약을 정부가 통제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수요가 있어 시장에서 작동하고 있는 전세제도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통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며 "전세사기가 문제이니 전세를 없애자는 식의 주장은 과도하게 단순한 접근으로 들린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세제도는 실수요자들이 전세보증금과 자본금으로 거주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대표적인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박합수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 겸임 교수는 “전세는 월세나 자가 보유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쉽게 사라지기 어려운 제도”라고 말했다.

김인만 김인만경제연구소 소장은 "전세제도가 신용을 기반으로 하는 불안정한 제도인 것은 사실이지만 수명을 다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유효한 주거형태"라며 "원 장관의 발언의 맥락은 전세폐지라는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전세 피해 문제를 연구해 근본적으로 바꾸는 법 개정을 하겠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전세제도가 폐지되면 저소득층의 주거비용 상승이라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언급되는 에스크로(Escrow, 제3기관에 전세보증금 예치) 제도 도입에 대해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에스크로는 전세 거래 시 금융회사에 전세보증금을 맡겨 안전 결제를 보장하자는 제도로,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고를 방지하는 데 효과적이다.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제도는 폐지할 수 없지만 보증금을 보호받을 수 있는 에스크로 제도를 도입하면 유지가 가능하다”며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제도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국토연구원도 최근 '전세 레버리지(갭투자) 리스크 추정과 정책대응 방안 연구' 보고서를 통해 "보증금을 신탁기관에서 관리하므로 임차인의 보증금 미반환 위험은 현저히 감소할 수 있으며, 임대인과 임차인 간 정보, 협상, 편익 등의 비대칭적인 구조가 개선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반면 에스크로 제도가 충분한 호응을 얻지 못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보증금을 이미 일종의 무이자 대출로 인식하고 있는 집주인 입장에서는 적잖은 반발이 예상된다. 이 경우 시장에서 자동적으로 반전세, 월세 비중이 높아져 결국 주거비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서 교수는 “집주인들은 전세 보증금을 활용해 이익을 거두는데 제 3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맡긴다면 전세를 두지 않으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에스크로 제도는 굉장히 이상적인 제도”라며 “집주인 입장에선 전세 보증금을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희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임대차 계약 중 전세 비중은 57.27%로 전체 105만9306건 중 60만6686건을 기록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부터 임대차3법으로 불려 온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의 개선을 목표로 한 연구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오는 2024년 1월 나오는 연구 결과를 반영, 종합적인 개선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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