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웹젠, 엔씨에 10억 지급하고 게임 배포 중지하라" 판결
저작권 침해 인정 안됐지만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받아들여
기존 리니지 유사 게임 및 신작 출시 영향에 주목

(사진-엔씨소프트)
(사진-엔씨소프트)

[일요경제 민다예 기자] 엔씨소프트(이하 엔씨)가 웹젠을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 중지 등의 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리니지 게임의 시스템과 수익모델을 베껴온 이른바 ‘리니지 라이크’로 불리는 유사 리니지 게임들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22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61부는 지난 18일 엔씨가 웹젠을 상대로 낸 저작권 침해 중지 등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웹젠이 엔씨에 10억원을 지급하라며 “R2M 이름으로 제공되는 게임을 사용하거나 선전·광고·복제·배포·전송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사진-웹젠)
(사진-웹젠)

R2M은 2020년 8월 출시된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다. 엔씨는 해당 게임이 2017년 6월 선보인 ‘리니지M’의 콘텐츠와 시스템을 모방했다며 2021년 6월 소송을 제기했다.

엔씨는 “일부 시스템만 차용한 게 아니라, 게임 속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유기적인 연결 요소까지 따라 했다”고 주장했다.

엔씨는 R2M이 리니지M의 △아인하사드 축복 △무게 시스템 △장비 강화 시스템 △아이템 콜렉션 시스템 △변신 및 마법인형 시스템 △메인 사용자인터페이스(UI) 6가지 표현 요소를 모방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웹젠은 “리니지M과 기반이 된 리니지의 강화 시스템 등은 1987년에 나온 역할수행게임 넷핵(Nethack)의 규칙을 차용한 것으로, 규칙이 유사하다고 이를 저작권 침해라 주장할 수는 없다”고 맞섰다.

우선 재판부는 엔씨의 저작권 침해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리니지M의 시스템에 대해 “존재하던 게임 규칙을 변형하거나 차용한 것으로 창작성을 인정할 수 없고, 부분적으로 독창성과 신규성이 있다 해도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웹젠의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은 인정됐다. 부정경쟁방지법은 ‘타인의 상당한 투자나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 등을 공정한 상거래 관행이나 경쟁질서에 반하는 방법으로 영업을 위해 무단으로 사용해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리니지M이 저작권 보호 대상은 아니지만, 상당한 노력으로 만들어진 성과인 만큼 법률상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이익이라는 결정이다. 재판부는 “웹젠은 엔씨의 종합적인 시스템을 거의 그대로 차용했고, 이는 상거래 관행과 경쟁질서에 반하는 무단 사용으로 엔씨 측이 경제적 이익을 침해당하고 있다”고 밝혔다.

베끼기 관행에 대한 규제 필요성도 언급했다. 재판부는 “웹젠의 행위를 규제하지 않으면 앞으로 게임업계가 굳이 힘들여 새로운 게임 규칙의 조합 등을 고안할 이유가 없어지게 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어 “유사방식의 게임이 다수 출시됐다는 사정만으로 엔씨 시스템이 MMORPG 업계에서 보편화된 공유영역에 속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2021년 7월 사용자환경(UI)을 일부 수정해 부정경쟁행위를 더 이상 하지 않았다는 웹젠의 주장도 "독창적인 고객흡인력이 발생했거나 새로운 흥미가 유발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엔씨 측이 입은 손해는 이번 소송에서 청구한 10억원을 초과하는 게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엔씨는 “기업의 자산인 지적재산을 법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1심의 청구 금액은 일부만 청구한 상태로, 항소심을 통해 청구 범위를 확장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에 맞서 웹젠은 “엔씨가 제기한 청구 중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에 대한 청구만을 인용한 것으로, 부정경쟁행위로 인정한다는 판결에 즉각 항소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판결은 저작권을 둘러싼 게임업계 소송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엔씨는 지난 4월 카카오게임즈와 개발 자회사 엑스엘게임즈가 리니지M의 후속작인 ‘리니지M2’를 표절했다는 소송도 제기했다.

이에 업계에서는 이번 엔씨소프트의 일부 승소로 국내에 다수 출시되고 있는 리니지 라이크 게임들에도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홍원준 엔씨소프트 CFO가 이달 초 2023년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 콜을 통해 "다수 출시되고 있는 리니지라이크 게임이 (자사 게임 매출에)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는 만큼, 리니지라이크 게임 개발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하정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저작권법 위반 여부, 손해배상 규모는 소송의 핵심이 아니다"라며 "엔씨가 청구한 R2M 서비스 종료, 손해배상이 모두 인용된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웹젠이 항소 의지를 밝힌 만큼 R2M의 서비스가 당장 중단되진 않을 것"이라며 "서비스 중단 가능성이 언급된 것만으로 소비 심리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짚었다.

김 연구원은 이번 소송의 결과가 카카오게임즈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엔씨는 카카오게임즈 '아키에이지 워'에 R2M과 같은 이유로 소를 제기한 상황"이라며 "판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아키에이지 워는 흥행 규모가 커 유저 동향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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