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여전히 높고 불확실...긴축기조 유지하면서 대내외 정책 여건 점검
'금리 추가인상 필요성' 삭제…통화정책 변화 예고
이창용 한은 총재 "6개월 이상 기준금리 인하 쉽지 않을 것"
시장 "금리인하 시점 빠르면 7월 예상"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올해 첫 통화정책방향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1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올해 첫 통화정책방향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한국은행)

[일요경제 김사선 기자] 한국은행이 8회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올해 첫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0%로 동결했다. 이번 금리 동결은 지난해 2·4·5·7·8·10·11월에 이은 8회 연속 동결이다. 한은 금통위는 지난 2021년 8월 연 0.50%였던 기준금리를 지난해 1월까지 3%p 인상한 이후 지난해 2월부터 금리를 동결 중이다.

소비자 물가가 3%대를 유지하는 가운데 중동 정세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경기 부진 예측 속에 급증한 가계부채와 부동산 PF 등 금융 리스크 확대를 우려해 결정한 것이란 분석이다. 또 미국의 통화정책 불확실성도 금리 동결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이 국내 물가가 여전히 높다는 판단과 함께 통화 긴축 기조를 장기간 이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해 나가겠다'는 문구는 삭제했다.

한국은행은 이날 통화정책방향문에서 "물가상승률이 기조적인 둔화 흐름을 지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전망의 불확실성도 큰 상황이다"라고 진단하면서 “긴축기조를 유지하면서 대내외 정책 여건을 점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대외경제 여건에 대해서는 "세계경제는 주요국의 통화긴축 기조 지속 등의 영향으로 성장, 인플레이션의 둔화 흐름이 이어졌다"며 "다만 주요국의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며, 목표치로 안정되기까지 상당기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제금융시장의 경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 전환 기대 등으로 국채금리가 하락했고, 미국 달러화는 소폭 약세였다. 한은은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은 앞으로 국제유가, 글로벌 인플레이션 흐름, 주요국의 통화정책 운용·파급효과, 지정학적 리스크의 전개양상 등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국내경제는 수출을 중심으로 완만한 개선 흐름을 이어갔다고 한은은 진단했다. 구체적으로 "고용은 실업률이 일시적 요인에 영향을 받아 높아졌지만, 견조한 취업자수 증가세가 이어지는 등 전반적으로 양호한 상황"이라며 "앞으로 국내경제는 소비와 건설투자의 회복세가 더디겠지만, 수출 증가세는 지속되면서 개선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했다.

한은은 이와 함께 금년 성장률은 지난해 11월 전망치 2.1%에 대체로 부합할 것이라고 내다봤으며 향후 성장경로는 국내외 통화긴축 기조 지속의 파급영향, IT경기의 개선 정도 등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물가는 둔화 흐름이 관측되고 있지만 그 속도는 완만해질 전망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석유류 가격의 하락 등으로 12월 중 3.2%로 낮아졌고 근원인플레이션율(식료품·에너지 제외 지수)과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율도 각각 2.8%, 3.2%로 둔화됐다.

한은은 이같은 흐름이 계속되겠으나, 누적된 비용압력 여파로 속도는 완만해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당분간 3% 내외에서 등락하다가 점차 낮아질 것"이라며 "연간 상승률은 지난해 11월 전망치 2.6%에 대체로 부합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아울러 물가경로는 국제유가·농산물가격 움직임, 국내외 경기 흐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금융·외환시장에서 장기 국고채 금리는 국내외 통화정책 기조 전환 기대 등으로 하락했고, 원·달러 환율은 비교적 좁은 범위에서 등락했다. 한은은 "가계대출은 주택관련대출의 증가세가 이어졌으나, 기타대출이 감소하면서 증가규모가 큰 폭 축소됐다"라며 "주택가격은 수도권, 지방 모두 하락 전환했으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과 관련한 리스크는 증대됐다"고 전했다.

한은은 앞으로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동시에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 △금융안정과 성장 측면의 리스크 △가계부채 증가 추이 △주요국의 퉁화 정책 운용 △리스크의 전개양상 등도 면밀하게 점검하겠다고 강조했다.

기준금리 인하와 관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이날 오전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현재 기준에서는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금통위원들은 현시점에서 금리 인하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라 생각한다"며 "상황을 보면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가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보다는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하는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함으로써 물가 안정을 이뤄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시장에서는 이번 기준금리 동결과 추가 인상 필요성 문구 삭제로 사실상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 종료된 것으로 보고 인하 시점에 관심을 두고 있다.

다만 이창용 한은 총재가 6개월 이상 기준금리 인하가 쉽지 않을 것이란 발언으로 일각에서 제기돼온 2분기 인하설은 힘을 잃게 됐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상반기까지는 현재 기준금리를 유지하다가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서면 한은도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관측하면서 빠르면 7월로 예상하고 있다.

이남강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준이 1월 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6월에 첫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에 따라 한은의 인하 시점도 7월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7월 첫 인하를 점치며 "소비가 하반기로 갈수록 부진할 가능성이 큰 데다, 이때쯤 서비스 중심으로 물가 상승률 하락도 뚜렷해지면서 한은의 정책 대응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연말까지 금리가 0.25%p씩 모두 두차례에 걸쳐 0.50%p 인하할 것으로 예상했다.

안예하 키움증권 선임연구원도 "내수 부진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에 따른 유동성 우려를 고려해 한은이 하반기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며 "미국 연준의 6월 인하를 전제로 한은의 7월 인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7·8·11월 세 차례, 총 0.75% 인하를 전망했다.

저작권자 © 일요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