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경제=손정호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최순실 게이트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19일 새벽 4시 50분경 기각됐다. 일부는 안도했고 일부는 허탈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시민들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현재 야당들은 대기업 개혁을 주장하는 것일까. 역기능도 많지만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는데 말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대부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로 운영되는데,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 체제가 인류가 지금까지 고안한 가장 이상적인 제도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자성과 개혁의 목소리가 크게 불거지는 것은 왕정 이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의 가장 큰 맹점으로 꼽히는 상속제 때문일 수도 있다. 물론 상속세 비율을 늘리는 등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이념에 맞는 제도들이 있지만 말이다. 

문제는 상속제를 보완하기 위한 상속세 등이 잘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편법 등을 동원하지 않고 합당한 상속세를 내고 재산과 경영권을 물려주고, 주식회사의 철학에 맞게 지분율과 경영능력에 따라 경영했다면 설득력이 담겼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경영권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았다는 걸 누구나 다 아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볼 점은 그렇다면 이런 약점들을 인정하고서 현재 우리를 대표하는 대기업들의 지배구조가 투명하고 합리적인가다. 현대중공업그룹의 계열사인 하이투자증권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특수관계인 4.8%, 삼성생명 7.8%, 삼성물산 4.2%, 삼성화재 1.3%, 삼성재단 0.1%, 자사주 13.3%, 국민연금 8.7%, 기타 59.8% 등으로 총수일가 지분율이 낮다. 삼성전자는 작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했던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요구를 받아들여 삼성전자를 인적분할한 후 사업사와 지주사로 체제를 변환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지주사 전환과 이후 그룹의 지배구조 투명화에는 그 규모 때문에라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우 현대모비스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로 총수일가가 낮은 지분율로 취약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지주사 전환을 위해서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를 각각 투자부문과 사업부문으로 인적분할한 후 3개의 투자부문을 합병해 현대차그룹홀딩스를 만드는 방법이 시장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이 역시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도 마찬가지다. 국내 대기업 중 가장 많은 순환출자 고리를 보유했던 롯데그룹은 작년 형제간 경영권 다툼 이후 진행된 검찰 조사 전후에 80% 정도의 순환출자 구조를 해결했지만 여전히 순환출자 구조가 남아있다.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사 격인 호텔롯데를 상장해 일본 롯데의 영향력을 줄이고 남은 순환출자 고리를 해결하면서 지주사 등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드는 데 역시 적지 않은 공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SK와 LG, 두산, LS, 코오롱그룹 등은 상대적으로 일찍 지주사 체제로 전환해 지배구조가 건전한 편인 것으로 분류된다. 지주사만 지배하면 나머지 계열사에 대한 지배에 구조상 큰 문제가 없어서 순환출자 등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논란을 만들 가능성이 적다. 

최순실 게이트가 한참 그 내막을 드러내던 작년 10~11월, 대통령과 대기업 재벌총수들의 정경유착 문제를 담은 드라마가 CJ그룹 계열사 CJ E&M의 tvN에서 방영돼 관심을 끈 적이 있다. ‘더 케이투(The K2)’라는 작품으로, 극중 대기업 총수의 외동딸로 장학재단 이사장을 하며 차기 대권이 유력한 국회의원 남편을 위해 불법과 편법을 모두 행하던 최유진(송윤아 역)은 ‘쿠마르 게이트’를 언급한다. ‘쿠마르 게이트’는 중동 석유사업과 관련해 현직 대통령, 10여명의 대기업 회장들이 연관된 사건으로 최유진 씨는 ‘쿠마르 게이트’가 향후 한국 정계의 방향을 뒤바꿔놓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의 인간적 고뇌와 더불어 말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청와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변호사 시절을 다룬 영화 ‘변호인’과 광주혁명을 다룬 ‘화려한 휴가’ 등을 제작했다는 이유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에게 사퇴 압력을 가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었다. ‘더 케이투’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어떤 시그널을 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상상이 충분히 가능했다. 모든 부자가 악하지 않고 모든 약자가 선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 반대도 언제나 가능한 말이다. 모든 부자가 선하지는 않고 모든 약자가 악하지는 않다. 우주에 100%는 없다. 그렇다면 아직 우리에게는 출구에 대한 희망이 남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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