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길을 묻다-김기덕 변호사>
'문재인 정부의 노동행정 개혁과제와 노동개혁의 방향'

15일 국회에서 '문재인 정부, 노동존중사회를 향한 우선 이행과제'를 주제로 토론회가 열렸다.

[일요경제=심아란 기자] “1987년 6월. 광장과 거리에 나와 구호를 외치며 시위했던 시민들은 호헌 철폐와 직선제를 쟁취했다. 덕분에 정치적 민주주의가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의 기본질서로 확립될 수 있었다. 6월항쟁 직후 7월에서 9월까지 노동자대투쟁이 있었다. 하지만 노동자대투쟁은 노동자권리와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노동체제를 적어도 법률상으로는 실현해내지 못했다.”

김기덕 변호사는 이 같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문재인 정부, 노동존중사회를 향한 우선 이행과제' 토론회의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섰다.

김 변호사는 노동자가 권리와 노동기본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 제약받고 있는 현실을 ‘노동적폐’로 규정하고 이는 문재인 정부가 강조한 ‘적폐청산’의 대상에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국민들이 국가의 주권자로서 촛불집회를 통해 박근혜정권을 심판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선출함으로써 정치적 민주주의를 실현했다고 선언했으나 사실상 노동자에게 정치적 민주주의가 실현됐다고 말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단체행동권 등 노동기본권은 법률상 노동자의 기본권 행사로서 원칙적으로 보장받기는커녕 제한과 금지의 대상으로서 예외적으로 허용돼 법적으로 봉인된 기본권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이에 김 변호사는 ‘노동적폐와 노동행정 개선과제 및 방향’을 주제로 문재인 정부의 노동행정 개혁공약을 살펴보고 노동자 권리와 노동기본권 행사가 보장받는 나라를 만들기 위한 방향을 제시했다.

■ 노동자 권리와 노동기본권을 제약하는 노동적폐- 노동자보호법제 및 노동기본권법제

김 변호사는 노동자 보호법의 현주소를 파악하기 위해 ‘근로시간’ ‘임금제도’ ‘고용’ ‘비정규직법’ ‘취업규칙’ 등의 범주에서 우리 노동자의 현실을 살펴봤다.

김 변호사는 근로시간에 대해 "국가가 법으로 근로시간의 최장 한도를 정함으로써 장시간 근로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근로시간제가 우리 노동자에게는 근로시간 규제로서 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노동부 행정해석, 학설 및 판례 등에서 법정근로시간은 법이 정한 최장의 근로시간이 아닌 법정 외 근로의 수당 지급의 기준이 되는 근로시간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어 김 변호사는 “1953년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이후 현재까지 1주간 68시간까지, 1일 20시간까지 사용자가 마음대로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에 불과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법정근로시간을 1주간 48시간에서 44시간, 40시간으로 단축해온 법을 노동부 행정해석 등에 의해서 철저히 무력화시킴으로써 노동제 없는 나라에서 사용자가 제한 없이 노동자를 사용하도록 보장해온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임금, 평균임금, 통상임금, 퇴직금 등 임금제도 역시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이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게 김 변호사의 판단이다.

다만 기본급, 각종 수당, 상여금 등 사업장에서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지급하는 제반 금품이 임금과 평균임금에 해당하는데 통상임금의 포함 여부에 대해 노동자들의 주장이 계속돼 일정부분 법원의 판례에 의해 그 범위가 확대되기도 했다.

김 변호사는 “노동부 행정해석과 지침은 복리후생명목 금품 등의 임금 해당성을 일관되게 부정해왔고 당연히 통상임금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법을 집행해왔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2013년 12월 대법원은 초과근로의 대가 임금이자 법정수당의 지급기준인 '통상임금'을 소정근로에 대해 지급하기로 정해진 임금 중 일부를 제외하는 일률성, 고정성 등을 판단 기준으로 내세우는 한계를 보였다.

그 결과 법정 외 근로의 대가 임금인 법정수당은 법정근로의 대가로 지급받는 임금을 기준으로 50% 가산된 임금으로 지급받지 못해 초과 근로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법정수당은 초과근로에 대한 규제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어 김 변호사는 최저임금 문제를 들춰냈다.

이와 관련해 “최저임금은 사실상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임금수준을 결정하고 있다”면서 “이를 기준으로 사용자는 사업장 임금수준을 정하고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임금을 인상하고 있는 실정이다”고 진단했다.

김 변호사는 고용에 관해 IMF사태 이후 고용의 유연화와 고용형태의 다양화로 나타났다는 입장이다.

정리해고 등 고용의 유연화와 파견제 및 기간제 등 고용형태의 다양화에 따라 노동법제가 등장했다는 것.

그러나 김 변호사는 "‘정리해고제도’는 근로기준법에 규정되기 전부터 법원 판결에 의해 인정되고 있었고 판례가 판시해온 요건을 입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김영삼정권 시절 1996년 12월 31일 국회에서 정리해고에 관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날치기로 통과됐다. 이후 이른바 ‘노개투’라하는 민주노총 사업장을 중심으로 대규모 총파업투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어 IMF사태까지 몰아닥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에서 정리해고제도는 사용자들이 이 나라 노동자의 고용을 위협하는 흉기로 이용했다고 김 변호사는 주장한다.

특히 "최근에 시행된 정년연장법은 고용의 연장이 아니라 위법할 수 있는 정년제도를 연장하도록 한 법"이라면서 박근혜정권이 이와 연계해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추진한 것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한편 비정규직의 역사는 ‘파견제’에서 출발한다. 1998년 2월에 제정돼 같은 해 7월 시행된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근로자파견사업을 통해 사용자에게 인력을 원활하게 수급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김 변호사는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과 복지증진에 이바지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파견근로자가 정규직에 비해 임금 등에서 다른 취급을 받았으며 사용자들은 파견법을 위반해 불법과 탈법을 저질렀다고 김 변호사는 언급했다.

이후 2006년 노무현정권에서 비정규직법이 입법되고 파견법 개정도 이뤄졌다. 또한 기간제법도 함께 제정됐다.

김 변호사는 “기간제법 등 비정규직법은 사용사유를 제한하지 않은 입법으로 원칙적으로 사용자의 비정규직 사용을 허용하면서 정규직과의 차별금지를 통해 비정규직의 근로조건을 보호하겠다는 취지에서 이뤄졌다”고 봤다.

그러나 김 변호사는 “비정규직의 차별에 관해 국가의 역할은 부족했다”고 비평했다.

이에 대해 “비정규직법의 차별금지를 위한 제도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보호를 위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어렵게 노조를 조직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신청해서 구제받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부연했다.

또한 김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의 작성 및 변경을 사용자가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변경에 있어서만 과반수노조 또는 노동자과반수의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노동자는 근로조건에 관해 사용자와 합의할 수 없고, 사용자가 정한 조건에 그저 따라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음을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그동안 자본과 권력의 노동 '개악'은 대부분 사용자의 취업규칙 작성, 변경의 권한을 통해 추진됐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아울러 “노동자 측이 부당하다고 호소해도 노동부는 묵살했고 노동자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 불이익변경이더라도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인정된다며 노동자 동의 없어도 적법하다고 도입하라고 안내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정권의 일반해고,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 등 이른바 노동개혁이라는 기치 아래 진행했던 일들이 취업규칙 변경을 통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노동기본권법제, 즉 법률에 의해 제한과 금지로 규제받고 있는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행사 특히 ‘쟁의행위’는 해마다 파업시기가 되면 노동부가 불법파업이라고 낙인찍어왔다”며 “철도파업 등 대규모 파업투쟁은 으레 불법이라고 여론의 지탄을 받으며 귀족노조의 막무가내식 투쟁으로 매도되기 일쑤였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지금까지 노동부는 파업하는 노동자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법집행을 한 것이 아니라 파업의 자유로부터 기업 보호가 자신의 역할인 양 노조법을 집행해왔다”고 흠잡았다.

이러한 행태들 때문에 노동자가 요구를 관철하기보다는 해고, 징계 등 불이익을 당해 노조활동이 위축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고 나무랐다.

■ 노동행정 개혁과제와 노동개혁의 방향

김 변호사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과정에서 내세운 ‘노동공약’ 중에 노동행정 개혁공약을 중심으로 분석했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노동 관련 공약으로는 ▲공공부문 중심으로 일자리 81만 개 창출 ▲실노동시간 단축 통한 일자리 나누기 ▲비정규직 격차 해소로 질 나쁜 일자리를 좋은 일자리로 전환 ▲최저임금 1만원 ▲청년이 존중받는 일자리 ▲아이키우기 좋은 대한민국 등이 있다.

김 변호사는 “문 대통령의 노동관련 공약 중에 사용자 자본과 권력에 맞서 노동자권리를 요구하고 투쟁하는 노조 활동 등 노동운동에 관한 공약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노동시간의 문제를 일자리 만들기의 수단으로 보고 있다”고 우려하며 “노동시간 단축은 장시간 노동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그 자체가 노동자권리로서 목적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면, 장차 일자리가 넘쳐나고 인력을 구하기 어렵게 된다면 도로 장시간 노동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고 일침했다.

또한 “공약에서 ‘임금’과 ‘고용’에 관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며 “노동자의 임금권리를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이 많고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제에 관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김 변호사는 문 대통령의 ‘비정규직’ 관련 공약에서는 ‘차별의 해소’가 원칙인 점을 높이 평가했다.

이에 대해 “비정규직의 사용 제한, 차별 금지를 넘어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비정규직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박근혜 정부의 저성과자 해고, 임금피크제 등을 문제 삼으며 "취업규칙변경지침의 폐기 외에 취업규칙제도 일반에 관한 폐기를 노사합의에 의한 것으로 변경하는 법개정을 추천한다”고 했다.

또한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행사를 보장하기 위해 관련 ILO(국제노동기구) 협약을 비준한다면 헌법이 보장한 노동기본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수준까지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끝으로 김 변호사는 “나열식으로 개혁이 필요한 노동적폐에 관해 언급하고 말았다”며 “문제는 개혁과제의 나열이 아니라 어떠한 관점으로 노동적폐를 개혁할 것이냐 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하며 발제를 마쳤다. <길+>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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