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길을 묻다-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민주적 노정/노사관계 개선방향과 과제'

충남 아산의 자동차 공조장치 제조업체인 갑을오토텍은 노사 갈등으로 지난 2016년 7월 26일 직장 폐쇄를 단행했다. 이후 김승노 갑을오토텍 대표와 이지헌 갑을오토텍 지회장이 이달 16일 만나 노사 간에 조건 없이 공장을 정상 가동하기로 약속함에 따라 직장폐쇄 331일 만에 직원들이 출근을 시작했다. .사진은 2016년 직장폐쇄 당시 사측이 공장을 점거 중인 노조를 몰아내고 경비용역을 배치한 장면이다.

[일요경제=심아란 기자]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정책을 성공적으로 이행하려면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회 토론회에서 제기됐다.

이와 함께 노사정 모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 하고 노동자의 경영참여, 노동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의 보호 방안 등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

지난 15일 ‘문재인 정부, 노동존중사회를 향한 우선 이행과제’ 토론회의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적 노정/노사관계 개선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다양한 해결책을 제안했다.

이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지능정보화 사회의 도래와 일자리 감소는 이미 컴퓨터 정보기술혁명을 통해 자동화를 가속화시켰던 3차 산업혁명으로도 상당한 일자리 손실과 소득격차 확대를 경험한 바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우리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노동문제에 대해 “46차 세계경제포럼(WEF)에 따르면 2020년까지 전 세계에서 약 700만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고 대신 200만개의 일자리만 창출돼 고용불안과 실업이 더욱 악화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런 가운데 이 교수는 “한국사회에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 문제가 악화되고 새로운 형태의 모호한 고용관계가 확대되는 것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외환위기 이후 단순히 정규·비정규직을 넘어서 다양한 임금·비임금 노동이 한국사회 노동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런 고용관계는 기존의 노동법이나 노동조합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는 상당수의 플랫폼 노동자가 포함된다”고 지적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조직률 비교>, 이주희 교수 제공.

한국에서 기존의 법 제도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절대다수이므로 변화된 노동시장의 현실을 규제할 수 있는 새로운 노사관계 패러다임의 확립이 시급하다는 게 이 교수의 견해다.

이 교수에 따르면 비정규직의 경우 절대다수인 97.4%가 조직화돼 있지 못하고 단체협약의 적용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특히 300인 이상 사업체 노조 조직률 62.9%, 30인 미만 사업체 조직률 0.1%로 기업규모별 조직률 격차가 극심하다는 것.

이주희 교수 제공

이 교수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ILO 핵심협약 비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ILO협약 비준 현황은 지난해 말 기준 총 29개 협약이 비준된 상황이다. 기본협약 8개 중 4개, 거버넌스협약 4개 중 3개, 전문협약 177개 중 22개 등이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기준 ILO회원국 187개국의 평균 비준 협약 수는 47개이며 OECD 회원국(35개국)의 평균 비준협약 수는 61개에 달한다.

이에 이 교수는 우리나라가 가장 우선적으로 비준해야 할 ILO 협약 내용 및 관련 노동기본권 개선 사항에 대해 의견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기본 협약인 제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과 제98호 '단결권, 단체교섭권 원칙 적용에 관한 협약'은 최우선적으로 비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다음 제151호 ‘공공부문 단결권 보호 및 고용조건 결정 절차에 대한 협약’, 제154호 ‘단체교섭 촉진에 관한 협약’을 함께 비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이와 더불어 공무원·교원·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 공무원 노조·전교조의 법적 지위 인정, 원청 기업에게 집단적 노사관계에서의 공동사용자 책임 인정 등의 조치를 함께 취할 것을 주문했다.

동시에 이 교수는 ILO 기본협약 중 비준하지 않은 협약을 도입할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가 비준하지 않은 기본협약인 제29호는 강제근로를 금지하면서 의무적인 군복무, 시민의 의무수행, 교도소 내 강제근로, 비상시의 강제근로, 소규모 공동체에서의 강제근로 등은 예외로 인정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제105호에서는 정치·경제적 명분·노동규율에 대한 수단·파업참여에 대한 제재 및 각종 차별대우의 수단 등으로 강제노동이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담고 있는데 이 역시 현재 비준하지 않고 있는 기본협약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이 교수는 “해당 협약들을 비준하지 않은 이유는 공익근무요원, 정치범에 대한 강제노역 징역형 등 우리나라의 경우 실질적인 강제노동이 실시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위 협약의 비준과 함께 협약에 저촉되는 법 제도를 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사노동자 등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 보호할 수 있는 협약들에 대한 조사 및 비준의 필요성과 기업의 노조에 대한 손해배상 및 가압류 청구, 쟁의행위에 대한 민·형사 책임제도 개선 등도 함께 언급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처벌 강화 및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핵심 노동개혁 과제를 일자리의 양을 늘리고 질을 제고하면서 노사관계 제도를 선진화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추경 예산을 확보해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산별 단체교섭 및 산업·업종별 사회적 대화를 일자리 창출 정책과 병행해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산별교섭을 위한 제도개선 과제로 ‘복수노조 및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의 문제점 해결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 교수는 노조 쇠퇴 현상과 ‘노노갈등’이 악화되고 있는 요인으로 ▲교섭대표가 되지 못한 소수노조의 단체교섭권 제약 ▲교섭대표노조의 조합원 과반수 유지 실패로 인한 교섭권 무력화 ▲사업장 단위로 강제된 교섭창구 단일화로 인한 초기업 교섭의 약화 ▲공정대표의무의 제도적 문제 등을 꼽았다.

따라서 소수 노동조합의 보호와 산별 노동조합 조직화를 활성화하려면 현행 교섭창구단일화 제도의 전면적 개편이 필요하다는 게 이 교수의 입장이다.

또한 이 교수는 산별 교섭의 효력확장은 고용조건상 형평성도 제고할 수 있고 하청기업 노동자의 임금 및 근로조건 개선과 관련해 원청 사용자에게 교섭의무를 부여하는 것과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교수는 산별교섭 촉진을 위해 ▲교섭구조의 분권화 ▲교섭 주기 연장 허용 ▲산별교섭과 지부교섭 간 교섭 사안의 유연한 분리 ▲산업별 임금현황(임금공시제)와 함께 모든 산별 단체협약의 내용은 국가 DB를 통해 전 국민에게 공개 등의 방법을 제안했다.

이를 바탕으로 산별교섭의 모범 사례를 확립해 확산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

이 교수는 “기업 조직에서도 동형화와 모방을 통해 주요 제도의 이식과 수용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서 “문재인 정부에서는 노사정 합의에 기초한 협력적 노사관계 모델을 정립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이 교수는 사회적 대화와 경영참여, 미조직 노동자 보호방안의 필요성도 함께 언급했다.

이 교수는 “국가 수준 노사정 합의주의의 가장 큰 의의는 노사 모두 개별적인 이익 추구에 근거한 각자의 전략 내용을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다시 한 번 재고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사회적 대화의 선결 요건으로 ‘조정력을 갖춘 교섭구조’ ‘산업별 교섭구조’ 등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이는 단기간에 확보하기 어려운 만큼 실현가능성이 큰 중위 수준에서의 사회적 대화 또는 산업·업종·지역별 노사정 협의체 운영을 활성화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또한 노동자의 경영참여에 대해서는 “공공기관과 공기업 및 정부와 조달계약을 맺는 대규모 기업을 위주로 노동자 대표의 이사회 참여를 보장해 점차 사부문의 기업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정부 및 노동조합 모두 여성·청년·서비스업 종사자·특수고용직 등 기존에 조직화되지 못한 인구집단, 산업, 그리고 다양한 비정규직 종사자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화 지원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교수는 “정부는 법 제도를 개선하고 노조법상 노동자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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